영화128 공드리의 솔루션북, 엉터리 공책조차 없는 40대 가장의 새벽 “내 인생엔 저런 엉터리 솔루션북조차 없구나.” 새벽 1시, 불 꺼진 거실 소파 구석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리모컨을 쥔 손가락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툭 떨어질 뻔했지요. 낮 동안 모니터 화면 속에서 3D 모델링 와이어프레임과 씨름하느라 벌게진 눈이 TV 화면의 흰 자막 때문에 뻑뻑하게 아파왔습니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 녀석은 제멋대로 편집실을 뛰쳐나가고, 자기만의 이상한 공책에다 말도 안 되는 지침들을 적어가며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더군요. 그 철딱서니 없는 고집과 헛발질을 지켜보는데 묘하게 속이 답답해졌습니다. 저 친구는 제 마음대로 판을 엎어버릴 예술가라는 핑계라도 있고, 저런 엉터리 수첩이라도 손에 쥐고 흔들어대지요. 그런데 정작 마흔 줄에 접어든 제 손에는 매달 날아.. 2026. 9. 15.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야간 잔업 끝난 거실에서 마주친 밀실의 공포 캔맥주가 차가운 게 아니라 꼭 기계 바닥에 고인 절삭유처럼 끈적하게 느껴지더군요. 시계를 보니 밤 9시 40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종일 알루미늄 블록을 깎아내고 도면 수치를 맞추느라 눈알이 뻑뻑했습니다. 겉옷을 대충 벗어 걸어두고 신발장을 돌아보니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첫째와 유치원생 둘째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고, 아내도 아이들을 재우다 지쳐 안방 불을 꺼둔 상태였습니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냉장고 구석에서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하게 남은 발포주 한 캔을 꺼냈습니다. 식탁 의자를 끌면 끼익 소리가 날까 봐 그냥 거실 소파 귀퉁이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지요. 리모컨을 쥐고 TV 볼륨을 숫자 1까지 바짝 낮춘 뒤 무료 영화 채널을 습관처럼 돌렸습니다. 화면에 낯익은 활자가 스.. 2026. 9. 14.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마흔 넘은 기술자 눈엔 화폭 뒤 쪼들린 살림만 보였다 김치 젓가락으로 툭 찢다 말고 헛웃음을 픽 웃더라. 전날 밤 야근 마치고 들어와서 대충 씻고 캔맥주 하나 까놓고 멍하니 넷플릭스를 뒤적였던 게 발단이었다. 메인 화면에 떡하니 걸린 포스터 하나가 눈길을 붙잡았다. 20대 때 비디오 테이프로 빌려봤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였다. 알코올 기운에 홀린 듯 다시 틀어봤고, 다음 날 늦은 아침으로 양은냄비에 라면 끓여 상에 올리며 집사람한테 무심코 그 얘기를 툭 꺼낸 순간이었다. 공장에서 일주일 내내 CAD/CAM 화면 뚫어져라 보며 소수점 세 자리 공차 맞추고, 기계 돌아가는 쇳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주말엔 머릿속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그런 상태로 새벽 한 시에 들이켠 밍밍한 맥주 한 캔과 17세기 네덜란드 아틀리에 풍경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영 뜬금없는 조합이.. 2026. 9. 13. 영화 트위스터스 결말 후기: 괴물 같은 폭풍 너머, 새벽에 지켜낸 아이 방 한 칸 온종일 공장 안에서 쇳가루 냄새 맡으며 기계 소음에 시달리다 돌아온 늦은 밤, 거실 불을 끄고 홀로 멍하니 TV를 켰다. 가족들은 다 잠든 시간이라 숨죽이고 리모컨을 쥐었는데 화면에서 거대한 토네이도가 마을을 집어삼키는 광경이 펼쳐졌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튀고 쇠붙이가 종잇장처럼 뜯겨 날아가는 굉음을 듣는 순간, 낮 동안 현장에서 팽팽하게 쥐고 있던 긴장감이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루 종일 0.001mm 오차를 잡겠다고 가공기 모니터와 쇳덩이만 노려보며 버틴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는데, 화면 속의 저 거센 바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머릿속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영화 《트위스터스》를 OTT 목록에서 찾아 틀었던 건 대단한 위로를 받자고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야근 후 묵직해진 어깨를.. 2026. 9. 12. 스트레인저스: 챕터 1 줄거리 리뷰: 집이라는 안식처를 무너뜨린 맹목적 폭력의 공포 화면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불길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두운 복도 끝 현관문을 대여섯 번씩 흘끔거리며 쳐다보았습니다. 온 가족이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든 새벽 2시, 거실의 불을 모조리 꺼두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홀로 OTT 스트리밍으로 영화 《스트레인저스: 챕터 1》을 틀었던 날 밤이었습니다. 현대식 지식산업센터 작업장에서 온종일 0.001mm의 가공 공차를 다투며 신경을 칼날처럼 곤두세우고 일했던 터라, 복잡한 머릿속을 차갑게 식힐 요량으로 고른 공포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 낡은 나무 문을 툭툭 두드리는 불길한 파열음이 울릴 때마다, 그 서늘하고 음산한 공기가 거실 바닥을 타고 발목으로 고스란히 밀려들어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레니 할린 감독이 200.. 2026. 9. 11. 이매지너리 결말 후기: 스마트폰 화면 뒤에 방치했던 내 아이의 외로운 틈새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불이 켜진 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집으로 돌아와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온습도가 완벽하게 통제된 지식산업센터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도면과 모니터의 치수만을 쫓다가 늦은 밤 퇴근길에 올랐고, 늘 그랬듯 불 꺼진 거실을 지나 조용히 아이 방 문을 열어보았을 때였습니다. 세상모르게 이불을 끌어안은 채 색색 숨을 쉬며 잠든 아이의 작고 여린 뺨을 내려다보는데, 영화 속에서 마주했던 그 낡은 갈색 곰 인형의 기괴하고 음산한 침묵이 불현듯 겹쳐 떠오르며 등골을 타고 서늘한 공포가 왈칵 밀려왔습니다. 이매지너리, 영화가 끝나고 불 꺼진 방에서 덜컥 겁이 난 이유 제프 와드로 감독이 연출하고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 《이매지너리》의 뼈대는 초등학생 아.. 2026. 9. 10. 이전 1 2 3 4 5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