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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형제입니다, 정밀 가공 15년 차 가장이 삼킨 눈물

by 풍성함 2026. 10. 14.

 

우리는 형제입니다 영화 공식 포스터

캄캄한 거실에서 빈 캔맥주 껍데기를 우그러뜨리며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을 겨우 삼켰습니다. 토요일 특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온종일 CAM 프로그램 모니터의 푸른 잔상에 시달려 눈알이 뻑뻑했고, 코끝에는 절삭유 냄새가 여태 가시지 않았습니다. 현관문 도어록 소리를 죽여가며 살금살금 들어서니 안방에서는 아내와 두 아이가 깊게 잠들어 숨소리만 고르게 들려왔습니다. 씻고 나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긴장이 탁 풀리면서 온몸의 뼈마디가 뻐근하게 가라앉더군요. 주말 밤에 머리나 식힐 요량으로 OTT 목록을 뒤적거리다가 무심코 재생 버튼을 누른 영화가 바로 2014년에 개봉했던 장진 감독, 조진웅·김성균 주연의 '우리는 형제입니다'였습니다. 그냥 피식거리며 웃다 잘 생각이었는데, 이 영화가 제 토요일 밤을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토요일 밤, 혼자 튼 영화

처음에는 그냥 흔한 코미디인 줄 알았습니다. 서른 살 넘어서 만난 형제가 한 명은 미국 입양아 출신의 목사(조진웅)이고 다른 한 명은 무속인(김성균)이라니, 설정부터가 기가 막혀서 캔맥주를 홀짝이며 큭큭 웃어댔습니다. 극과 극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말끝마다 으르렁거리는 꼴이 우습기도 했고, 주간 내내 납기 맞추느라 곤두섰던 신경이 모처럼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웃음기가 싹 가시더군요. 방송국에서 수십 년 만에 겨우 만난 두 아들을 눈앞에 두고, 정작 치매를 앓는 어머니(김영애)가 휴게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어머니를 찾겠다고 온 동네를 헤매는 형제의 뒷모습을 보는데 불현듯 명치가 쿵 내려앉았습니다. 웃기려고 깔아놓은 상황들 밑바닥에 깔린 결핍과 서러움이 불쑥 튀어나와 멱살을 잡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 불 끄고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사탕 껍질을 꺼내 바스락거리며 만지작거리던 그 손 장면에서, 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 투박하고 닳고 닳은 손이 영락없는 우리 어머니 손이었습니다. 캄캄한 거실에서 캔맥주 껍데기를 손바닥 안에 넣고 우그러뜨리며 터져 나오려는 울컥함을 목구멍 안쪽으로 억지로 억눌렀습니다. 밤 11시 반,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TV 화면이 검게 꺼졌는데도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소파에 기대앉아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았습니다. 곤히 자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적막 속에서, 한동안 그 묵직한 여운에 짓눌려 멍하니 굳어 있었습니다.

 

새벽 1시, 공장 목장갑과 어머니 손

그 장면을 보고 나니 며칠 전 잔업을 뛰던 야간 공장 풍경이 머릿속에 겹쳐졌습니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머시닝센터 수십 대가 쇠를 깎아내는 굉음 속에서 가공 완료 신호음이 울렸을 때였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바이스에서 풀어내고 기름에 찌든 목장갑을 멍하니 내려다보는데, 생뚱맞게도 어머니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납기일이 코앞에 닥치면 밥 챙겨 먹을 정신머리도 없습니다. 소수점 두 자리 공차가 틀어지면 수백만 원짜리 소재를 통째로 폐기해야 하니, 온신경을 곤두세운 채 자판기 믹스커피 두 잔으로 쓰린 속을 대충 달래며 밤을 새우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일하다가 장갑을 벗어보면 손등은 기름때로 거뭇하고 손가락 관절은 퉁퉁 부어 있습니다. 그 거친 손마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머니 손과 어쩌면 이렇게 판박이인가 싶습니다. 자식새끼들 먹이고 입히겠다고 시장 바닥에서 찬물에 배추 씻고 생선 토막 치며 굳어진 어머니 손이나, 식구들 건사하겠다고 15년 동안 쇠가루 뒤집어쓰며 단련된 내 손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태만 다를 뿐 둘 다 식구들 굶기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버텨낸 흔적이었습니다. 이제 어머니 손등은 살점이 다 빠져서 마른 종잇장처럼 얇아졌고, 거뭇한 검버섯만 어지럽게 내려앉았습니다. 반면에 제 손바닥에는 공구와 버니어캘리퍼스를 쥐며 박힌 15년 치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혀 있습니다. 그 얇디얇아진 어머니 손이 세월을 건너 제 두 손으로 고스란히 옮겨와 박힌 것만 같아, 공장 한구석에서 장갑을 벗어 쥔 채 한참 동안 멍을 때렸습니다.

 

추석 마지막 방문, 엘리베이터 문 닫힐 때

돌이켜보니 지난 추석 연휴에 찾아뵌 것이 어머니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겨우 한 달 남짓 지난 일인데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그날도 낡은 아파트 복도에 들어서니,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어머니가 문소리를 용케 듣고 현관 밖까지 맨발로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다. 현관문 앞에서 엉거주춤 서서 반기시던 그 작은 체구가 마음에 콱 박혔습니다. 점심을 차려주시는데 밥공기에 쌀밥을 꾹꾹 눌러 담아 고봉으로 얹어 내미셨습니다. "쇠도 깎으려면 힘써야 하니 많이 먹어라, 밥심으로 버티는 거다." 그 말씀을 몇 번이고 되뇌며 반찬을 숟가락 위에 얹어주시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기름밥 먹는 아들이 늘 안쓰러우셨는지, 마흔이 넘은 자식 밥그릇에 고기반찬을 밀어 넣어주시는 손길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았습니다. 어느덧 일흔넷이 되신 어머니는 젊은 시절보다 키가 한 뼘은 족히 작아지셨고 걸음걸이도 눈에 띄게 느려지셨습니다. 20대 때 제가 공장 막내로 들어가서 기름 냄새 풀풀 풍기며 퇴근하던 시절만 해도, 어머니는 양손에 무거운 장바구니를 척척 들고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내리시던 억척스러운 분이셨습니다. 그 당당하던 장사꾼 어머니가 언제 이렇게 작아지셨는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집을 나서며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복도에 서서 손을 흔드시던 주름진 손마디가 아직도 눈에 밟힙니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 시동을 걸고 공단을 향해 빠져나오는 내내, 조수석의 아내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한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며 가슴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밤 11시 반 전화, '다친 데는 없고?'

영화를 다 보고 거실 시계를 올려다보니 밤 열한 시 반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어머니가 이미 주무실 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뭐에 홀린 사람처럼 핸드폰을 집어 들고 단축 번호를 꾹 눌렀습니다. 신호음이 서너 번 울리더니 낮게 잠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자다 깨신 게 분명한 목소리였습니다. "어머니,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해요.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제가 덤덤하게 말을 건네자, 어머니는 대뜸 다급한 목소리로 물으셨습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공장에 무슨 일 있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늦은 밤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행여 야간작업 하다가 기계에 손이라도 끼었을까 봐, 자식 사고 났을까 봐 덜컥 가슴부터 내려앉으신 겁니다. 그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목구멍이 꽉 막혀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더 말을 섞었다가는 바보처럼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에요 어머니, 아무 일 없어요.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어요. 얼른 주무세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저 멀리 희미하게 불이 켜진 시화공단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도면 검토하고, 공구 세팅하고, 소수점 공차와 납기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 보면 몇 주가 휙 지나가 버립니다. 늘 바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살다가, 영화 보고 나서야 가슴을 칩니다.

 

내일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어머니한테 다시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제대로 여쭤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이번 주말에는 아무리 급한 특근 일정이 잡히더라도 공정 스케줄을 어떻게든 앞당겨 조율해 놓고, 아이들 손을 잡고 어머니 집으로 찾아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마주 보고 먹어야겠습니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챙긴다면서, 정작 나를 길러낸 가장 큰 버팀목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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