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 꺼진 거실을 둘러볼 때는 내 가족의 소중함과 가장이라는 무게감이 뼈마디에 묵직하게 얹히더군요. 영화 성난황소를 보고 나서 생긴 일입니다. 현장에서 잔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밤 열한 시가 훌쩍 넘습니다. 씻고 나와서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보온병 물 한 잔을 마시는데 문득 헛헛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모니터 들여다보며 CAD 캠 프로그램 좌표를 찍고, 0.01밀리미터 공차가 어긋날까 봐 긴장했던 근육들이 한꺼번에 풀리는 시간이지요. 아이들 방 문틈으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고, 아내는 고단했는지 안방 불을 진작에 끄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소파 모퉁이에 털썩 걸터앉아 리모컨을 쥐고 OTT 화면을 넘기다가 눈에 들어온 게 마동석 주연의 성난황소였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통쾌하게 때려부수는 액션이나 보면서 멍해진 머릿속을 식혀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액션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난 뒤의 기분은 통쾌함보다는 이상하리만치 서늘한 현실의 무게 쪽으로 기울어 버렸습니다.
성난황소 후기, 통쾌한데 왜 가슴이 서늘했나
영화는 주먹 하나로 뒷골목을 평정했던 주인공 동철이 손을 씻고 수산시장에서 건어물 유통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문을 엽니다. 아내 지수를 끔찍이 아끼며 성실하게 살아보려 하지만, 세상살이는 늘 마음처럼 풀리지 않지요. 지인의 말만 믿고 무리하게 킹크랩 수입에 돈을 쏟아붓고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집니다. 거기에 아내마저 납치당하자 참아왔던 괴물 같은 본능을 터뜨리며 악당들을 처단해 나갑니다. 마동석 씨가 주먹을 휘두르며 문짝을 부수고 악당들을 내던질 때는 속이 후련했습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뻥 뚫리면서 속이 다 시원하더군요. 기계 가공 현장에서 온종일 납기 맞추느라 기름 냄새 맡아가며 쌓였던 잡념들이 단번에 털려나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주먹 한 방에 악인들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분명 오락 영화로서 만점에 가까운 시원함을 주더군요. 그런데 제 시선은 동철의 화려한 주먹이 아니라 그 주먹질 밑바닥에 깔린 생계의 공포에 자꾸만 머물렀습니다. 통쾌하면서도 서늘하게 저려오는 기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건어물 배달 트럭을 몰며 하루하루 아등바등 버티다가, 이번 한 판만 잘 터지면 아내 고생 덜어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는 그 얼굴이 남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철이 악당 기태를 쫓아가 뼈를 부러뜨릴 때마다 저는 그 완력에 감탄하기보다 식은땀이 먼저 흘렀습니다. 만약 내게 저런 극단적인 비극이 닥쳤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싶었지요. 마동석처럼 문짝을 뜯어낼 완력도, 깡패 소굴을 박살 낼 배짱도 없는 40대 가장인 저로서는 그저 주저앉아 통장 잔고나 쥐어짜며 자책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 불 꺼진 거실을 둘러보며 가장의 무게감이 뼈마디에 얹혔던 것은 바로 그런 무력감 탓이었습니다.
가장의 조급증, 4년치 3천만 원을 날릴 뻔했다
영화 속 동철이 킹크랩 계약서에 홀린 듯 도장을 찍으려 하던 대목에서는 제 30대 초반 시절이 떠올라 손바닥에 땀이 찼습니다. 저 역시 가장이라는 조급증에 눈이 멀어 4년 동안 모은 피 같은 3천만 원을 통째로 날릴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혼 초부터 4년치 잔업 수당과 주말특근 수당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종잣돈이었습니다. 현장 막내 티를 막 벗고 기계를 잡기 시작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겨울에는 기름 먹은 절삭유가 얼어붙어 발가락에 감각이 없을 때도 덜덜 떨며 기계 문을 열고 닫았습니다. 여름이면 습기와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공장 안에서 땀에 푹 전 작업복을 비틀어 짜가며 하루 열두 시간씩 교대 근무를 버텨냈지요. 그렇게 모은 3천만 원은 제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젊은 날의 체력과 바꾼 살점 같은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전세 대출금 이자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턱밑까지 차올랐습니다. 꼬박꼬박 월급 받아 아끼는 것만으로는 평생 집 한 채 온전히 마련하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가 생겼습니다. 그때 지인 하나가 확실한 지방 상가 지분 투자처가 있다며 저를 유혹했습니다. 6개월만 묻어두면 원금에 두 배 가까운 수익을 얹어 준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뻔한 기획부동산 사기였지만 그때는 눈에 콩깍지가 씌었더군요.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끝까지 늘리고 꽁꽁 숨겨둔 비상금까지 싹 긁어모아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내 손으로 기계 공차 맞추듯 냉정하게 따져보지 못하고, 한 방에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보겠다는 탐욕과 조급증에 완전히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믹스커피 한 잔, 아내 브레이크가 벼랑 끝에서 낚아챘다
도장을 찍기로 약속한 날 바로 전날 밤이었습니다. 잠이 도무지 오지 않아 부엌으로 나와 믹스커피 두 잔을 타놓고 아내를 식탁으로 불렀습니다. 손을 덜덜 떨며 숨겨왔던 투자 이야기와 대출 계획을 털어놓았습니다. 내 딴에는 여보를 호강시켜 주려고, 우리 애들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그런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애썼던 것이지요. 제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물끄러미 제 얼굴을 쳐다보더군요.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를 줄 알았는데 아내는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짧게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밥을 굶어, 아니면 애들 입힐 옷이 없어?" 그 말이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먹먹하게 박혀왔습니다. 아내는 식탁 맞은편에서 다 식어버린 믹스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덧붙였습니다. 땀 흘려서 정직하게 버는 돈 아니면 우리는 단 만 원도 가질 자격이 없고, 그런 요행으로 번 돈은 결국 가정을 깨뜨릴 뿐이라고요. 뼈 빠지게 고생해서 모은 돈을 왜 남의 입에 한 번에 털어 넣으려 하느냐며 제 거친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등에 맺혔던 땀이 차갑게 식어 내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투자를 없던 일로 하겠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업은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 되었고 지인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제가 똑똑해서 위험을 피해 간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절벽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던 제게 아내의 차분한 한마디가 브레이크가 되어 주었던 덕분이었습니다.
동철 식탁 장면, 죄인처럼 앉던 내 모습이 겹쳤다
성난황소에서 가장 뼈아프게 와닿았던 순간은 거친 액션 장면들이 아니었습니다. 사고를 치고 들어와 어두침침한 부엌 식탁에 아내와 마주 앉아 있던 동철의 모습이었습니다. 지수 앞에서는 큰소리도 못 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치만 살피며 죄인처럼 굳어 있던 그 표정이 예전의 저와 너무나도 똑같았습니다. 가장이라는 자리가 참 묘합니다. 가족을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앞세우지만, 돌이켜보면 제 조급함과 못난 자존심을 채우려다 오히려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을 뻔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영화 속 동철의 그 묵직한 주먹질 뒤편에는, 가장 노릇 제대로 못 하고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지독한 죄책감이 깔려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으깨버릴 듯 날리는 펀치 하나하나가 실은 자기 자신을 향한 자책처럼 보여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영화는 통쾌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고 잃어버렸던 일상도 되찾지만, 현실은 그렇게 마동석의 주먹처럼 단칼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작업복을 걸치고 공장 문을 열어야 하며, 다달이 찍히는 관리비 고지서와 아이들 학원비 명세서를 마주해야 합니다. 현실의 가장들에게는 깡패를 때려눕힐 힘은 없어도 매일 묵묵히 기계 앞에 서서 제자리를 지켜내는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내가 똑똑해서 발을 뺀 게 아니라, 아내의 차분한 브레이크가 우리 집안을 벼랑 끝에서 낚아채 준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뜬구름 잡는 일확천금 대신, 내일 아침 출근길에 쥐어질 0.005밀리미터 공차의 가공 도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며 살아갑니다. 밤새 무탈하게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여며주고 나니, 내일도 공장 기계 소음 속에서 묵묵히 버텨낼 힘이 조금은 생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