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구멍에 기름때 낀 쇠조각 하나가 턱 걸려 있는 것처럼 찝찝하고 독한 뒷맛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야근 마치고 집에 오면 씻고 바로 기절하듯 잠드는 게 일상인데,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재생 버튼을 누른 게 화근이었습니다. 절삭유 냄새에 찌든 작업복을 세탁기에 던져놓고 캔맥주 하나 비우면서 편하게 볼 요량이었는데,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생각보다 훨씬 지독하더군요. 피곤에 찌든 눈으로 대충 넘길 수 있는 내용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네온사인 번쩍거리는 낡은 헬스장 구석과 황량한 사막 도로가 이어지더니, 인물들이 브레이크 고장 난 덤프트럭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내달리더군요. 그냥 멍하니 넋 놓고 쉬려던 40대 가장의 퇴근길 밤을 아주 제대로 헤집어 놓았습니다.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이들 장난감을 발로 툭 밀어 치우고 불을 껐는데도 가슴 언저리가 뻐근한 게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첫인상, 망치로 얻어맞은 뒷맛
머릿속이 무거운 쇠망치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띵했습니다. 체육관 매니저로 웅크려 살던 루와 보디빌더를 꿈꾸며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던 재키가 눈이 맞는 순간부터 화면 전체에 피비린내와 땀 냄새가 진동하더군요. 허름한 체육관 구석에서 바벨 부딪히는 쇳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이어지더니, 재키가 팔뚝에 불법 약물을 찔러 넣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예 공기 자체가 탁해졌습니다. 목구멍에 기름때 낀 쇠조각 하나가 턱 걸려 있는 것처럼 찝찝하고 독한 뒷맛이 목덜미를 계속 잡았습니다. 보디빌딩 대회를 향한 집착이 광기로 번지고, 루의 악랄한 범죄자 아버지와 얽힌 폭력의 고리가 터져 나오는데 이건 도무지 안전장치라는 게 없더군요. 보통 영화들은 사건이 터지면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잔머리를 굴리는데, 이 인간들은 공정이 한번 꼬이기 시작하니까 아예 기계를 통째로 때려 부술 기세로 폭주했습니다. 피와 뼈가 튀고 총성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짓는 눈빛은 제정신 박힌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 폭력을 일삼던 형부를 향해 재키가 주먹을 휘두르고 살인이 벌어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숨 쉴 틈 없는 진흙탕이었습니다. 뒤처리를 한답시고 시신을 차에 싣고 사막 한가운데 협곡으로 끌고 가 불태우는 대목에서는 헛웃음마저 나오더군요. 해결하려고 손을 댈수록 기름 묻은 장갑으로 정밀 부품을 만져 얼룩만 더 크게 번져가는 꼴이었습니다. 시뻘건 조명 잔상이 눈꺼풀 뒤에 계속 어른거려서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80년대 특유의 촌스럽고 축축한 붉은 톤과 음산한 신시사이저 음악이 망막에 그대로 타투처럼 박혀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온종일 CAD/CAM 와이어프레임 선만 들여다보느라 눈이 피로에 절어 있었는데, 그 붉은빛이 뇌세포 구석구석을 쿡쿡 쑤셔대며 잠을 완전히 쫓아내 버렸습니다.
이 망할 영화, 새벽 3시까지 잠을 통째로 날림
새벽 3시가 넘도록 두세 시간 동안 눈도 제대로 못 붙이고 이불 속에서 뒤척였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는 유난히 크게 귓전을 때리고, 베개에 머리를 파묻어도 영화 속에서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던 근육과 총성이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피곤해서 눈알은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뻑뻑한데 뇌만 혼자 쌩쌩하게 공회전하는 그 끔찍한 감각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공장으로 출근해야 하는데 머릿속 잔상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머시닝센터 앞에서 마이크로미터 들고 소수점 둘째 자리 0.01mm 공차를 맞춰야 하는 정밀 임가공 기술자에게 수면 부족은 치명타입니다. 까딱 졸기라도 하면 공구가 모재를 치고 들어가서 수백만 원짜리 금형 블록이 단숨에 고철 덩어리가 됩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현실의 무게가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당장 이번 달 나갈 아파트 대출 원리금에 큰아이 학원비 결제일이 코앞인데, 잠을 설쳐서 내일 일당을 날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더군요.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인생을 통째로 내던지는데, 저는 단돈 몇십만 원 오차에도 가슴을 졸여야 하는 가장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이 망할 영화 때문에 오늘 잠은 다 잤네 싶어 천장을 보고 헛웃음이 픽 나왔습니다. 내일 당장 납기 맞춰서 쳐내야 할 알루미늄 블록이 산더미인데, 왜 야심한 밤에 생판 남의 나라 파멸극을 보면서 뇌를 볶아대고 있는지 제 자신이 참 한심하더군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퀭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공장에서 틱 소리, 공구 코팅 긁히고 커피 믹스 세 봉지
아침에 겨우 기어 나와 기계 원점 잡고 공구 세팅을 하는데 손끝 감각이 평소와 다르게 영 둔했습니다. 조그 휠을 조심스럽게 돌려 세팅 게이지 눈금을 맞춰야 하는데, 멍한 정신에 다이얼을 한 칸 더 돌렸다가 공구 끝이 모재 표면에 팍 닿으며 둔탁한 '틱' 소리가 공장 바닥에 울렸습니다. 그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쫙 흐르면서 뇌세포가 순식간에 번쩍 깨어나더군요. 옆 라인에서 페이스밀 치던 후배 녀석이 놀라서 쳐다보는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0.01mm 오차로 몇백만 원짜리 금형 블록을 폐기 처분하고 하루 일당은커녕 월급에서 시말서 쓰고 물어낼 뻔한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15년을 굴러먹으면서 이따위 기초적인 세팅 실수를 할 뻔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영화 속 루와 재키가 감정에 휘둘려 선 하나 잘못 넘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이 파멸로 굴러떨어지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통제력을 잃어버린 폭주가 어떤 결말을 낳는지 새벽 내내 봐놓고도, 정작 제 작업대 위에서 똑같이 통제력을 놓칠 뻔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지요.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게 도망칠 사막도 없고, 망가진 기계와 깨진 공구 대금은 고스란히 제 몫의 빚으로 남을 뿐입니다. 엔드밀 팁을 풀어 루페로 꼼꼼하게 들여다보니 다행히 공구 코팅만 살짝 긁힌 채 멈춰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십년감수했다는 마음에 장비 도어를 닫고 심호흡을 길게 내뱉은 뒤 탕비실로 곧장 걸어갔습니다. 종이컵에 노란색 커피 믹스 세 봉지를 한 번에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반만 부어 진하게 저어 마시며 겨우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습니다. 달고 씁쓸한 카페인이 들어가니 그제야 머릿속의 찌꺼기들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보길 잘했다, 쇠파이프로 감각을 깨운 예방주사
퇴근길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으니 그래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더군요. 지독하게 피곤했고 공장에서 아찔한 사고를 칠 뻔도 했지만, 머릿속에서 오랜만에 강한 자극이 요동친 건 사실이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쇳가루 냄새와 기계 소음에 파묻혀 무뎌져 가던 일상에 묵직한 쇠파이프 하나가 날아와 꽂힌 꼴이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현실적인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서 거의 환각에 가까운 초현실적인 에너지로 내달립니다. 체육관과 모텔을 뒹굴며 피폐해진 두 주인공이 거대한 폭력의 상징 같은 아버지를 응징하는 방식은 상식적인 법과 질서의 테두리를 완전히 부숴버리더군요.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가보겠다는 그 지독한 고집과 에너지가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매일 통장 잔고와 공정 납기만 계산하느라 굳어버린 감각을 쇠파이프로 냅다 후려쳐서 깨워놓은 느낌이었습니다. 타협도 없고 출구도 없이 자신들의 욕망과 생존을 향해 미련할 정도로 끝까지 내달리는 인간 군상을 보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같은 가장들에게는 꽤나 불온하면서도 날 선 자극이었습니다.
아주 독하고 비싼 값을 치른 예방주사 한 대 맞은 셈 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무기력하게 가라앉아 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 이번 일진 사나웠던 하루도 수업료 치고는 감수할 만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 숙제나 봐주고 일찍 누워야겠습니다. 내일은 기계 앞에서 딴생각 말고 평소처럼 차분하게 공차 잡고 제 몫의 하루를 단단하게 쳐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