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128 내 아내가 숨기고 있는 것, 15년 차 기름밥 먹는 가장의 시선 거실 불 끄고 넷플릭스 보다 쓱 보게 됐는데 후반부에 턱 걸렸습니다. 납기일 빡빡하게 걸린 알루미늄 블록 캠(CAM) 작업 다 쳐내고, 밤 열한 시 넘어서 집에 들어온 날이었습니다. 애들은 이미 지쳐서 잠들었고, 집사람도 안방에서 곯아떨어진 시간에 혼자 캔맥주 하나 따서 틀어둔 영화였습니다. 원래 이런 스릴러 풍 제목은 피곤할 때 잘 안 봅니다. 가공 공차 맞추느라 온종일 모니터에 눈 박고 선반 돌아가는 소리 듣다 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거든요. 그냥 멍하니 화면만 보려고 켰던 건데, 이야기 후반부로 가면서 묘하게 시선이 화면에 묶여버렸습니다. 내 아내가 숨기고 있는 것, 후반부에서 턱 걸린 장면극 중반까지는 솔직히 졸면서 봤는데, 그 특정 장면에서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극 중에서 아내가.. 2026. 9. 21. 영화 진주의 진주, 낡은 공구통 열다 멈칫한 15년 차 기술자 조급했던 마음에 작지만 단단한 쉼표 하나 찍힌 기분이 들었습니다. 온종일 CAM 소프트웨어 화면에 코를 박고 공구 경로를 쪼개다 돌아온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여운 하나가 독립영화 한 편에서 불쑥 튀어나왔네요. 씻고 나와 식탁에 앉으니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애들은 벌써 방에 들어가 잠들었고, 싱크대 옆에는 마르지 않은 젖병 대신 큰놈 학원 교재가 무겁게 얹혀 있었습니다. 시원한 냉수 한 잔 들이켜며 휴대폰 리모컨을 쥐었는데, 눈앞에 여전히 가공 경로 선이 잔상처럼 둥둥 떠다녔습니다. 소수점 셋째 자리 공차를 맞추느라 잔뜩 곤두서 있던 신경이 가라앉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벽만 쳐다봤습니다. 피로가 덜컥 내려앉는 밤이었습니다. 기술자가 독립영화에 끌린 날OTT 화면에서 영화 목록을 넘기다.. 2026. 9. 20. 영화 더 문, 잔업 끝에 마주한 우주와 40대 가장의 무게 맥주 맛이 텁텁해질 정도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냐면, 여느 때처럼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녹초가 되어 돌아왔던 날이었습니다.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 현관문을 열면 집안은 이미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불 꺼진 부엌 식탁 위에는 식어버린 찌개 냄비와 랩을 씌워둔 밥공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요. 씻는 둥 마는 둥 샤워기 찬물만 대충 끼얹고 나와 냉장고 문부터 열었습니다. 시원한 탄산이라도 목구멍에 들이붓지 않으면 도무지 이 묵직한 피로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캔맥주 하나를 따서 거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고, 무심코 TV를 켰다가 화면에 떠 있던 영화 '더 문'을 틀었습니다. 내일 또 새벽같이 나가야 하니, 딱 반 캔 마실 동안만 멍하니 시간이나.. 2026. 9. 19. 라이프 오브 파이와 40대 가장, 호랑이를 숨겨야 집에 들어간다 새벽 1시 반, 충혈되어 붉은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영화 속 파이의 벵골 호랑이가 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근에 찌들어 돌아와 식구들 깰까 봐 조심조심 씻고 나선 참이었습니다. 거울 속에 서 있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두 아이 아빠 얼굴이라기보다는 어디서 한바탕 물고 뜯고 싸우다 온 험악한 놈이 서 있었습니다. 화면 속 파이는 조각배 위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랑 둘이 갇혀 망망대해를 떠돕니다. 한눈팔면 그대로 물려 죽는 판이니 살겠다고 매 순간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버팁니다. 그 처절한 꼴을 보는데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나 역시 이 팍팍한 바깥세상에서 처자식 굶기지 않겠다고 온갖 독기랑 악을 품은 채 하루하루 버티고 있기.. 2026. 9. 18. 부탁 하나만 들어줘 본 뒤 떠오른 불필요한 호의와 사람 보는 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집사람이 리모컨을 낚아채서 셋톱박스 홈화면으로 팍 넘겨버렸습니다. 화면이 꺼멓게 꺼지기도 전에 리모컨 플라스틱 모서리가 거실 테이블에 탁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요. 두 시간 내내 스크린을 채우던 화려한 원색의 옷감들과 번지르르한 뉴욕 상류층 말투들이 그 소리 한 방에 거실 공기에서 싹 날아갔습니다. 남들은 스릴러 반전이 기가 막히네, 여자 둘이 서로를 뜯어먹는 심리전이 매섭네 떠들어댑니다. 제 눈에는 그저 내일 가공해야 할 알루미늄 블록 수량과 도면 치수 생각만 머릿속을 꽉 채웠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씩 모니터에 머리 박고 0.01밀리미터 공차 맞추느라 눈알이 뻑뻑한 마당에, 저렇게 밑천도 없이 남의 호의 껍데기만 살살 긁어먹으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 2026. 9. 17. 영화 치어리딩 클럽, 퇴근길 4천 원짜리 깡통에 담긴 가장의 마음 집사람이 "웬 할머니들이 치어리딩 옷을 입고 있어? 주책이다, 딴 거 보자" 이랬는데, 결국 둘이서 캔맥주 하나 비울 때까지 끝까지 다 봤습니다. 평일 내내 도면 치수 맞추고 현장 기계 소음에 시달리다 금요일 밤에 겨우 한숨 돌리던 참이었습니다. 씻고 나와서 멍하니 TV를 켜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고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걸린 게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거실 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아 마른 멸치 몇 마리에 고추장 찍어 먹으며 캔맥주를 나눠 마셨습니다. 겉보기엔 그냥 흔한 미국식 코미디 같았고, 은퇴자 마을에 모인 노인들이 춤추는 이야기라길래 솔직히 저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채널을 돌리려던 집사람 손이 어느 순간 멈췄고, 저 역시 손에 쥔 맥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 2026. 9. 16. 이전 1 2 3 4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