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 불 끄고 넷플릭스 보다 쓱 보게 됐는데 후반부에 턱 걸렸습니다. 납기일 빡빡하게 걸린 알루미늄 블록 캠(CAM) 작업 다 쳐내고, 밤 열한 시 넘어서 집에 들어온 날이었습니다. 애들은 이미 지쳐서 잠들었고, 집사람도 안방에서 곯아떨어진 시간에 혼자 캔맥주 하나 따서 틀어둔 영화였습니다. 원래 이런 스릴러 풍 제목은 피곤할 때 잘 안 봅니다. 가공 공차 맞추느라 온종일 모니터에 눈 박고 선반 돌아가는 소리 듣다 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거든요. 그냥 멍하니 화면만 보려고 켰던 건데, 이야기 후반부로 가면서 묘하게 시선이 화면에 묶여버렸습니다.
내 아내가 숨기고 있는 것, 후반부에서 턱 걸린 장면
극 중반까지는 솔직히 졸면서 봤는데, 그 특정 장면에서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극 중에서 아내가 말 못 할 비밀을 품고 남편 앞에서 표정을 굳히며 버티는 순간이 나옵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길래 저러나 싶어 의심이 턱밑까지 차오를 만한 상황이지요. 그런데 제 눈에는 그게 다른 데 마음을 둔 수상한 눈빛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하루 종일 치수 100분의 1밀리미터 어긋날까 봐 온신경 곤두세우고 일하다가, 집에 와서 완전히 녹초가 된 사람 특유의 그 굳은 표정이 먼저 겹쳐 보였습니다. 뭔가를 치밀하게 숨기려는 사람의 독기가 아니라, 그냥 하루치 에너지가 바닥나서 굳어버린 얼굴이었습니다. 말 못 한 고단함이 쌓이면 그게 또 다른 형태의 '숨기는 것'이 되더군요. 사람 속이라는 게 참 그렇습니다. 밖에서 치이고 깨진 걸 집에 있는 배우자한테 일일이 털어놓지 못할 때가 많지요. 짐을 덜어주려다 보니 말을 아끼게 되고, 그게 쌓이다 보면 어느새 단단한 벽처럼 굳어버립니다. 제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공정 꼬여서 엔드밀 날 부러지고 납기 못 맞출 뻔한 날, 퇴근해서 아내 얼굴 보고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밑도 끝도 없이 하소연하지 않게 됩니다. 상대방도 종일 직장에서, 또 집안일로 진 빠졌을 텐데 내 피로 찌꺼기까지 얹어주기 싫어서 입을 닫지요. 영화 속 그 여자도 털어놓지 못한 하루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 그저 묵묵히 버티고 서 있었던 것뿐이었습니다. 의심의 렌즈를 끼고 보면 온통 수상한 비밀투성이지만, 생활인의 눈으로 보면 그저 방전 직전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한참 동안 화면만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맞벌이 부부, 보리차 한 컵으로 보내는 신호
맞벌이 둘 다 녹초가 되면 말 한마디 길게 섞을 기운도 없습니다. 저희 부부도 평일 저녁이면 거실에서 마주쳐도 눈인사만 겨우 나누고 각자 할 일 하기 바쁩니다. 피곤이 목 끝까지 차오르면 사소한 질문 하나도 시비처럼 들릴 때가 있지요. "오늘 몇 시에 끝났어?"라는 평범한 말조차 "왜 이렇게 늦었어?"로 들리는 날이 있습니다. 공장에서 쇠 깎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진 채 퇴근하면, 집에 와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듣고 그저 가만히 있고 싶어집니다. 집사람도 하루 종일 모니터랑 씨름하고 왔을 테니 사정은 똑같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말 대신 보리차 한 컵 따르고, 고무장갑 끼고 먼저 싱크대 손 넣었습니다. 굳이 "피곤하지? 내가 설거지할게" 같은 생색내는 말도 얹지 않습니다. 그냥 식탁 위에 시원한 보리차 한 잔 밀어두고, 개수대에 쌓인 냄비랑 밥그릇부터 수세미로 문지르기 시작합니다. 달그락 소리만 나고 등 돌리고 서 있다가 팽팽한 긴장이 슬며시 가라앉더라 싶었습니다. 등 뒤로 거실 바닥을 터덜터덜 걸어오는 집사람 발소리가 들립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데, 물 흐르는 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공기가 조금씩 물러지는 게 등에 닿아옵니다. 거창한 위로나 긴 대화가 관계를 푸는 게 아니라는 걸 살면서 배웁니다. 쇠를 깎을 때도 열이 너무 받으면 절삭유를 듬뿍 뿌려 열부터 식혀야 칼날이 안 상하는 법이지요. 사람 사이도 똑같습니다. 피로로 잔뜩 달아오른 날에는 말 한마디보다 물 한 잔, 설거지 한 판이 가장 정확한 냉각수가 되어줍니다.
10년 넘은 흠집투성이 유리컵과 조용히 항복하는 얼굴
식탁에 물컵을 놓아두면, 집사람이 의자를 빼고 앉으며 한숨을 푹 내쉽니다. 굳어있던 턱 끝이랑 미간 주름이 스르륵 풀리더군요. 종일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 있던 어깨가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게 옆눈으로도 보입니다. 그 표정을 보면 참 짠합니다. '나 오늘 너무 방전됐어' 하고 조용히 항복하는 얼굴이거든요. 밖에서는 실수 안 하려고, 아쉬운 소리 안 들으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가장 안전한 자기 집구석에 와서야 비로소 무장을 해제하는 그 얼굴입니다. 그때 건넨 컵이 신혼 때 마트 묶음으로 집어온 컵인데, 벌써 10년 넘었습니다. 어디 하나 깨진 데는 없지만, 매일 쓰고 씻기다 보니 유리 표면에 자잘한 잔스크래치가 허얗게 앉아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버릴까 하다가도 손에 익어서 찬장 맨 앞자리에 늘 나와 있는 물건입니다. 흠집투성이 컵이 부딪히며 살아온 우리 부부랑 닮아서 말없이 건넬 때 마음이 먼저 놓였습니다. 애들 둘 키우고, 대출금 갚아가며 서로 치열하게 부딪치고 긁히면서 여기까지 왔지요. 모난 구석 다 깎여 나가고 표면은 거칠어졌어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제 몫을 하고 있는 그 컵이 꼭 우리 사는 꼴 같았습니다. 영화 속 남편이 아내의 비밀을 파헤치겠다고 캐묻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만약 그 남편이 따져 묻는 대신, 저렇게 낡은 컵에 물 한 잔 채워 불쑥 내밀었으면 어땠을까 싶더군요. 사람 마음을 여는 건 날카로운 추궁이 아니라, 그냥 버텨온 세월을 알아봐 주는 무심한 배려 하나면 족한데 말입니다.
침묵을 의심 대신 무게로 읽게 된 뒤
영화 보고 나서 집사람 침묵을 '하루치 무게에 짓눌려 숨 고르는 중'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집사람이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내가 뭐 잘못했나', '기분 나쁜 일 있나' 싶어 혼자 조바심을 내거나 덩달아 퉁명스러워지곤 했습니다. 기술직이라 그런지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 탓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정 프로그램 짤 때도 공차가 지나치게 빡빡하면 기계에 무리가 가듯, 사람 사이에도 숨 쉴 빈틈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아내가 말을 안 하는 건 저한테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저 온종일 짊어지고 온 하루의 무게를 혼자 묵묵히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해서였던 셈이지요. 이제 말없이 외투 받아 걸고 보리차 밀어놓고 자리 비켜주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무언가를 캐묻거나 억지로 밝은 척 분위기를 띄우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저 저 사람은 지금 숨을 고르는 중이구나 생각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애들 이불이나 덮어주고 조용히 제 할 일을 찾아 움직입니다.
내일도 아침 일찍 지하철에 몸 싣고 공장 들어가서 도면 검토하고 기계 돌려야 하는 빠듯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삐걱거리는 하루 끝에서 서로의 침묵을 품어줄 줄 알게 되었으니, 또 묵묵히 기계 앞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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