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 맛이 텁텁해질 정도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냐면, 여느 때처럼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녹초가 되어 돌아왔던 날이었습니다.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 현관문을 열면 집안은 이미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불 꺼진 부엌 식탁 위에는 식어버린 찌개 냄비와 랩을 씌워둔 밥공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요. 씻는 둥 마는 둥 샤워기 찬물만 대충 끼얹고 나와 냉장고 문부터 열었습니다. 시원한 탄산이라도 목구멍에 들이붓지 않으면 도무지 이 묵직한 피로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캔맥주 하나를 따서 거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고, 무심코 TV를 켰다가 화면에 떠 있던 영화 '더 문'을 틀었습니다. 내일 또 새벽같이 나가야 하니, 딱 반 캔 마실 동안만 멍하니 시간이나 때우다 잘 생각이었습니다.
캔맥주 들고 소파에 누웠다가
처음에는 그저 흔한 SF 눈요기나 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컴퓨터 그래픽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왔나 구경꾼 심정으로 가볍게 보려 했지요. 우주선 파편이 튀고 화면 가득 화려한 볼거리가 지나갈 때만 해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건성으로 캔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탐사선에 홀로 고립된 대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부터 묘하게 리모컨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저 멀리 달 뒤편에 덩그러니 처박힌 우주선 꼴이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조종석에서 붉은 경보등이 번쩍이는데, 문득 제가 매일 드나드는 가공실 한구석이 겹쳐 보였습니다. 산소 게이지 수치가 뚝뚝 떨어지는 빨간 경고창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목 안쪽이 턱 막혀왔습니다. 우주선 내부 압력이 빠져나가는 그 숫자가, 매달 25일만 되면 통장에서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는 카드값 같기도 하고, 날이 갈수록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처럼 보였습니다. 거기에 비만 오면 삐걱거리는 제 닳아빠진 허리 상태까지 겹쳐지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가상의 우주 재난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생계의 압박감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원하게 넘어가야 할 맥주 맛이 모래를 씹은 것처럼 까칠해지더군요. 뒤통수를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쇠를 깎는 건지, 쇠가 날 깎는 건지
이번 주만 해도 주 4회 넘게 잔업을 이어갔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제 일상에서 칼퇴근이라는 단어 자체가 완전히 지워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래처 납기일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가공 공차는 100분의 1밀리미터 단위로 맞춰야 하니 하루 종일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습니다. 모니터 앞에서는 CAM 프로그램을 잡느라 눈알이 빠질 것 같고, 현장으로 뛰어가면 칩이 사방으로 튀고 절삭유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기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소리를 온종일 듣다 보면 문득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쇠를 깎고 있는 건지, 아니면 쇠가 내 몸뚱어리와 남은 수명을 야금야금 깎아 먹고 있는 건지 분간조차 안 갑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영혼까지 쥐어짜듯 갈아 넣어 잔업을 해도 통장에 찍히는 수당은 고작 80만 원에서 100만 원 남짓입니다. 며칠 전 나온 급여 명세서를 들여다보며 헛웃음만 흘렸습니다. 속이 휑하니 뚫린 것처럼 허탈하더군요. 내 한 달 치 저녁 시간, 아이들이 자라는 얼굴 한 번 더 볼 기회, 그리고 닳아 빠진 허리 뼈마디 값을 저울질한 결과가 고작 요 종이 한 장에 적힌 몇십만 원인가 싶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대원이 혼자 남아 끙끙 앓으며 매뉴얼을 뒤적이는 처절한 뒷모습을 보는데, 잔업대 앞에 홀로 서 있던 제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헛숨이 나왔습니다.
한겨울 밤 11시, 텅 빈 국도의 달 표면
공장 불이 다 꺼지고 나면 대개 밤 11시가 훌쩍 넘습니다. 차 시동을 걸고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단 외곽 국도로 빠져나올 때의 그 적막함은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한겨울에는 히터를 최대로 틀어놓아도 송풍구에서 미지근한 바람만 맴돌 뿐, 차 안은 냉동실이나 다름없고 하얗게 입김이 뿜어져 나옵니다. 피곤에 찌든 날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나 디제이의 웃음소리조차 귀에 거슬려서 꺼버리게 됩니다. 바깥 가로등 불빛만 띄엄띄엄 스쳐 지나가는 깜깜한 아스팔트 길을 달리다 보면, 마치 대기가 전혀 없는 삭막한 달 표면 위를 혼자 덜덜거리며 구르는 탐사 로버가 된 기분이 듭니다. 회사에서는 15년 차 고참 기술자랍시고 후배들 공정 봐주고 불량 나면 책임져야 하는 관리자 역할을 합니다. 집에 오면 생활비 벌어다 줘야 하는 든든한 가장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지요. 하지만 일터를 벗어나 혼자 차 안에 갇혀 있는 30분 남짓의 시간만큼은, 그저 칠흑 같은 우주 한복판에 혼자 튕겨져 나간 나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신호 대기에 걸려 깜빡이는 비상등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외로움 비슷한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그러다 간신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끕니다. 덜덜거리던 디젤 엔진 소리가 뚝 멎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아, 오늘도 사투 끝에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구나' 하는 서글픈 안도감이 듭니다.
그래도 핸들을 못 놓는 이유
영화 속 주인공이 시커먼 우주 진공 속에 홀로 버려져 구조선만 애타게 기다리던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참 오래 남았습니다. 엔딩 크레딧 자막이 까만 화면 위로 하염없이 올라가는데도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한참 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매일 겪는 이 고단함과 막막함을 세상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서러움이 불쑥 올라왔던 탓입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엎어두었던 휴대폰 진동이 약하게 울렸습니다. 야식 챙겨 먹고 얼른 자라는 잔소리 대신, 집사람이 늦은 시간에 보낸 짧은 메시지였습니다. 집사람 '이번 달도 고생 많았어 여보' 카톡 한 줄에 허탈함이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달 표면에 고립되었던 탐사 대원도 결국 지구에서 날아온 통신 신호 하나를 붙들고 악착같이 버텨냈던 것처럼, 저 역시 이 투박한 한마디에 다시 숨통이 트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떠야 하고, 뻑뻑한 눈을 비비며 또다시 기름 냄새 가득한 공장으로 차를 몰아야겠지요. 그래도 내 궤도를 지켜봐 주는 이 작은 지구별 가족들이 있기에, 저는 내일도 아무렇지 않게 작업복 지퍼를 올리고 출근 가방을 챙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