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어두컴컴한 지하 터널을 맹렬한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전동차 유리창 너머로 퀭하게 풀려버린 동공과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 나조차 낯설 만큼 시커멓고 지친 얼굴 하나가 우두커니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기름때 묻은 무거운 작업복을 가방 구석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터덜터덜 올라탄 막차 안에서 마주한 그 모습은, 하루 종일 날카로운 쇳가루와 씨름하다 영혼까지 탈탈 털려버린 영락없는 패잔병의 몰골이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던 그 지독한 밤, 남동협 감독이 연출하고 이성민, 이희준이 주연을 맡은 코믹 호러 영화 〈핸섬가이즈〉는 굳어버린 내 얼굴 근육을 무장 해제시키며 예상치 못한 눈물겨운 위로를 건네주었습니다.
공 하루, 0.02mm 오차에 서너 시간이 통째로 날아간 날
그날은 아침 첫 기계를 가동할 때부터 공장 안의 모든 공기가 불길할 정도로 꼬여 들어간 날이었습니다. 정밀 가공 작업을 하던 중에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얇은 고작 0.02mm 공차가 자꾸만 미세하게 틀어지면서, 오전 내내 땀 흘려 정성스레 깎아둔 고가의 금속 부품 서너 개를 그대로 불량 폐기통에 내던져야 했습니다. 공차를 다시 잡고 절삭 공구를 새것으로 교체하느라 기계 원점을 처음부터 다시 세팅하는 데만 꼬박 서너 시간이 허공으로 통째 날아가 버렸습니다.내가 맡은 공정 하나가 꽉 막혀버리자 뒤에서 부품을 넘겨받아 조립해야 하는 후속 생산 라인들까지 줄줄이 스톱되었고, 작업 반장과 거래처에서는 도대체 언제 물건이 나오냐며 쉴 새 없이 독촉 전화를 걸어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쏟아지는 날카로운 짜증과 한숨 소리에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습니다.결국 저녁 식사 시간도 거른 채 밤늦게까지 기계 소음 속에서 악착같이 잔업을 돌려 가까스로 목표 수량을 맞췄지만, 공장 셔터를 내리고 불을 끈 시간은 이미 밤 10시 반을 훌쩍 넘겨 있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역까지 걸어가 막차를 타고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밤 11시 반이었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가니, 식탁 위에 아내가 비닐 랩으로 정성스럽게 덮어둔 식은 밥상이 덩그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하철 차창에 비쳤던 그 험상궂고 팍팍한 내 몰골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내가 저렇게 무섭고 메마른 모습으로 비치겠구나' 싶은 생각에 자괴감이 밀려왔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공허함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헛헛했습니다.
싱크대 앞 식은 밥, 아내의 쪽지 한 줄이 건넨 체온
온몸의 뼈마디가 쑤셔오고 손아귀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차마 그 밥을 목구멍으로 넘길 기운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피로가 혓바닥 끝까지 차올라 차라리 물 한 잔만 들이켜고 바로 방바닥에 쓰러져 자고 싶다는 생각에 몸을 돌리려던 찰나, 투명한 랩 위에 얌전하게 붙어 있는 노란색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늦게까지 고생 많았어요. 국만 살짝 데워 먹어요.'삐뚤빼뚤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묻어나는 아내의 글씨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꽉 닫혀 있던 목구멍 안쪽이 턱 하고 메여왔습니다. 내가 밖에서 하루 종일 시끄러운 쇳소리를 견디며 기름밥을 먹고 버틴 이유가 결국은 이 소박한 밥상 하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몸이 피곤하다고 이걸 내팽개쳐 버리면 오늘 하루를 악착같이 버텨낸 내 삶이 너무 서글퍼질 것만 같았습니다.모두가 깊이 잠든 캄캄한 부엌에서 국그릇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버튼을 눌렀습니다. 웅― 하는 기계음이 적막한 집안에 낮게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싱크대 모서리를 꽉 붙잡은 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따뜻해진 국그릇을 꺼내 들고 식탁 의자에 앉을 기운조차 없어 싱크대 앞에 그대로 선 채로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밥알은 이미 차갑게 식어 뻣뻣했고 첫 숟가락을 넘길 때는 목이 메어 큼큼거리며 헛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아삭한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묵묵하게 씹어 삼켰습니다. 차가운 밥알을 천천히 씹어 넘길수록 텅 비어 차갑게 식어있던 가슴속이 희미한 온기로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영화 핸섬가이즈, '지가 들어갔는디요'에 쿠션을 부여잡고 터진 웃음
밥그릇을 대충 물에 헹궈 싱크대에 엎어두고 거실 소파에 털썩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배는 채웠지만 머릿속은 온종일 귓전을 때리던 기계 소리와 풀리지 않던 치수 계산 때문에 여전히 납덩이처럼 무겁고 멍했습니다. 이대로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니 하루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게 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뭐라도 머리를 비워낼 거리를 찾다가 리모컨을 쥐고 영화 〈핸섬가이즈〉를 재생했습니다.캐나다의 슬랩스틱 호러 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을 한국적 정서로 영리하게 리메이크한 이 영화의 뼈대는, 초등학생 아이라도 단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황당하고 거침없이 유쾌합니다. 험악하고 험상궂은 인상 때문에 어딜 가나 흉악범으로 오해를 받는 두 목수 콤비,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 분)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 분)가 오랫동안 꿈꿔온 유럽풍 산골 드림하우스를 장만해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험악한 겉모습에 지레 겁을 먹은 대학생들이 혼자 착각하고 도망치다가 제 발에 걸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죽어나가는 예측 불가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쉴 새 없이 펼쳐집니다. 이성민과 이희준 두 배우가 숯검정 같은 시커먼 얼굴에 험악한 흉터를 달고 나와서는, 세상 누구보다 순박하고 억울한 눈망울로 집을 고치려 애쓰는 모습에 내 마음의 빗장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결정타는 마당에서 나무를 갈아치우던 목재 파쇄기 장면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무서워 도망치던 학생 하나가 혼자 허둥대다 거대한 파쇄기 속으로 거꾸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 그 피 튀기는 유혈 사태 속에서 배우 이성민이 온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채 멍하고 억울한 눈빛으로 "아니, 지가 들어갔는디요..." 하고 나직하게 읊조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뻔뻔하면서도 기가 막히게 순진무구한 표정을 마주한 찰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푸흡!" 하고 웃음보가 사정없이 터져버렸습니다.한밤중에 잠든 식구들이 깰까 봐 황급히 소파 쿠션에 얼굴을 푹 파묻고 어깨를 심하게 들썩이며 소리 죽여 낄낄거렸습니다. 멈출 수 없는 웃음에 눈가에 눈물까지 찔끔 고였는데, 신기하게도 온종일 0.02mm 오차에 곤두서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턱관절과 미간의 주름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풀려나갔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까만 화면 위로 다 올라갈 때까지 혼자 소파에 뒹굴며 끅끅대고 웃다 보니, 온종일 나를 짓누르던 피로와 묵은 잡념들이 거센 물줄기에 씻겨 내려가듯 깨끗하게 씻겨 나갔습니다.
한밤중 거실 구석에서 혼자 쿠션을 부여잡고 숨이 넘어갈 듯 웃고 있는 내 꼴이 참 가관이면서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거친 편견과 억울한 오해 속에서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던 영화 속 순박한 형제들의 얼굴 위로, 거칠고 팍팍한 산업 현장에서 묵묵히 하루를 버텨낸 내 고단한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엉킨 실타래 같던 하루의 무게를 이 실없는 웃음 한 조각으로 깨끗이 털어내고 나니, 내일 또다시 기계 앞에 당당히 마주 설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비로소 마음 밑바닥에서 차올랐습니다. 영화 〈핸섬가이즈〉는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지친 일상의 숨통을 틔워주는, 고단한 생활인들을 위한 가장 유쾌한 해독제 같은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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