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이 꺼지자 상영관을 채우고 있던 들뜬 명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싹 가라앉았습니다.” 1편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2015년의 여름 이후 무려 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마침내 속편이 스크린에 걸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추석 연휴 첫날 아침 극장으로 혼자 달려갔습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찾아오는 친척들을 맞이하며 정신없이 흘러갈 연휴 일정의 문을 열기 전,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해 마련한 짧고 소중한 숨구멍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안하무인 재벌 3세를 시원한 돌려차기 한 방으로 응징하며 온 국민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었던 서도철 형사를 다시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객석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상영관의 불이 완전히 꺼지고 거친 오프닝 시퀀스가 화면 가득 펼쳐지는 순간 마주한 공기는, 내가 기대했던 유쾌하고 가벼운 명절 축제와는 전혀 다른 지독하게 차갑고 묵직한 서늘함이었습니다. 류승완 감독이 9년의 담금질 끝에 내놓은 영화 베테랑2는 그렇게 시작부터 관객의 방심을 매섭게 찔러왔습니다.
베테랑2, 추석 연휴 첫날 극장으로 혼자 달려간 이유
영화 베테랑2의 핵심 줄거리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설명해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면서도 날카롭습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풀려난 악인들만 골라내어 똑같은 방식으로 잔인하게 처단하는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마가 세상에 나타납니다. 억울한 피해자들의 눈물을 법이 닦아주지 못하자, 분노한 대중은 사적 제재를 가하는 이 살인마에게 상서로운 전설의 동물인 ‘해치’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열광합니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다음에 죽여야 할 악인을 투표로 뽑는 기괴한 광기까지 번져나갑니다. 이 혼란스러운 아수라장 속에서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과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이 해치를 쫓기 위해 밤낮없이 아스팔트 바닥을 구르는 것이 이야기의 커다란 기둥입니다. 내가 9년 만의 속편 소식을 듣자마자 추석 연휴 첫날 아침부터 부리나케 극장으로 달려갔던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절박했습니다. 매일 일터에서 쇳가루를 마시며 기계 소음에 시달리고, 턱밑까지 차오른 납기 일정에 쫓기며 머릿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던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편처럼 팝콘을 한 움큼 털어 넣으며 악당의 턱주가리를 날리는 호쾌한 액션 한 방에 가슴속에 묵은 체증과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길 기대했습니다. 극장 로비에 가득 찬 가족들과 연인들의 들뜬 웃음소리를 들으며 상영관으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내 가슴은 축제를 기다리는 소년처럼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음습하고 무거운 공기는, 이것이 1편의 유쾌한 오락 액션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낯설고 서늘한 이야기임을 단번에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서도철, 천하무적인 줄 알았는데 마주한 중년 가장의 피로
내가 이번 영화를 보면서 가장 깊은 충격을 받고 가슴이 아려왔던 지점은, 주인공 서도철이 더 이상 1편처럼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오뚝이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는 '천하무적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스크린 속에서 9년의 풍파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서도철 형사의 얼굴에는 온통 지쳐 보이는 40대, 50대 중년의 피로와 서글픔이 덕지덕지 묻어나 있었습니다. 범인을 쫓아 계단을 뛰어 올라갈 때마다 턱 끝까지 차올라 거칠게 헐떡이는 숨소리, 온몸에 시퍼렇게 든 피멍과 코를 찌르는 파스 냄새, 그리고 집에서는 학교 폭력 사건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얽혀 속을 썩이는 사춘기 아들 때문에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 그 위태로운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시대 중년 가장의 얼굴이었습니다. 영화 속 세상은 이미 법과 정의의 경계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디스토피아였습니다. 흉악범을 대신 처단해 주는 살인마 해치를 향해 군중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배설하는 사이버 렉카들은 조회수를 빨아먹기 위해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들이붓습니다. 그 광기의 한복판에서 피투성이가 된 서도철은 목에 시퍼런 핏대를 세우며 절규합니다. "사람 죽인 놈은 그냥 살인자일 뿐이야! 살인에 좋은 살인이 어디 있고 나쁜 살인이 어디 있어!" 하지만 그 필사적인 외침은 대중의 거대한 분노와 도파민의 파도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외롭게 흩어질 뿐이었습니다. 나는 1편의 통쾌한 권선징악 사이다 활극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가, 뜻밖에도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깨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 묵묵히 버텨내는 한 가장의 서글픈 뒷모습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밖에서는 온갖 비난과 억울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머리를 조아리고, 안으로는 무너져 내리는 가정을 어떻게든 지탱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서도철의 축 처진 어깨는, 매일 산업 현장에서 쇳가루를 뒤집어쓰며 가족들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나의 일상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보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짓눌려왔습니다.
팝콘 쥐던 손을 허공에 멈추게 만든 남산 계단의 폭력
물론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어둡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반부 강력2팀 형사들이 불법 도박장을 털기 위해 어설픈 위장 수사를 펼치며 우당탕탕 부딪힐 때만 해도 객석 여기저기서는 "푸하하" 하는 유쾌한 웃음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서도철이 범인을 쫓다가 몸을 날려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지거나, 동료 형사들과 좁은 잠복 차량 안에서 불어 터진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티격태격 정겨운 농담을 주고받을 때는 관객들도 '그럼 그렇지, 이게 바로 우리가 사랑했던 베테랑이지' 하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따스했던 온기는 정의감 넘치는 신입 경찰 '박선우'(정해인 분)가 막내 형사로 합류하고, 그의 서늘한 진짜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칼로 자른 듯 뚝 끊겨 버렸습니다. 비 내리는 남산 비탈길의 축축한 돌계단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추격전과 옥상 난간에서의 육탄전은, 지금까지 한국 액션 영화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날것 그대로의 둔탁하고 살벌한 타격감을 보여주었습니다. 뼈와 살이 진흙탕 속에서 거칠게 부딪히고 돌계단 모서리에 안면이 그대로 찍히는 끔찍한 파열음이 극장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입으로 가져가려던 팝콘 손을 허공에 그대로 멈춘 채 얼어붙었습니다. 무엇보다 섬뜩했던 것은 박선우를 연기한 배우 정해인의 눈빛이었습니다. 티 없이 맑고 반듯한 청년 경찰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눈동자에는 일말의 감정이나 온기도 없이 광기 어린 확신에 차서 상대방의 목을 꺾고 숨통을 조여갈 때의 그 기괴함은 관객의 숨통까지 옥죄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르는 잔혹한 살인이 절대적인 정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서늘한 확신을 마주하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는 나도 모르게 "헉" 하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웃음기 하나 없이 서늘하게 얼어붙은 극장 안의 공기 속에서, 나는 손바닥에 땀을 쥔 채 그 폭력의 묵직한 무게에 압도되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스크린을 응시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주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통쾌한 액션을 즐기며 낄낄거릴 생각으로 이 영화를 고르려 한다면 나는 조용히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영화 베테랑2는 관객에게 가벼운 도파민 대신, 묵직하고 쓰라린 윤리적 질문과 중년의 무게를 덜컥 안겨주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불합리함과 비정한 모순에 치이면서도, 소중한 내 가족의 작은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뼈마디가 쑤시도록 고단한 하루를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중년의 생활인이라면, 상처투성이 얼굴로 아들을 안아주던 서도철의 거친 손에서 가슴 깊은 곳의 뜨거운 위로와 깊은 한숨을 함께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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