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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다크니스 솔직 후기: 굳어버린 스팍의 턱 끝과 가장 치열했던 책임의 무게

by 풍성함 2026. 9. 5.

스타트렉 다크니스 영화 공식 포스터

“겉은 단단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 상태가 너무나 낯이 익어서 다음 장면을 재생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두 번째로 다시 보던 날 밤에 마주한 뜻밖의 순간이었습니다. 거실의 모든 불을 꺼놓고 텔레비전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하고 푸르스름한 불빛만이 멍하니 방 안을 비추고 있었는데, 리모컨을 쥐고 있던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도무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화면을 그대로 일시정지 상태로 멈춰 세워둔 채, 나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 차가운 정적 속에 홀로 가만히 갇혀 있었습니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이 연출한 2013년 작, SF 블록버스터의 외피 속에 숨겨진 지독하게 아픈 인간 군상의 내면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 세 번을 다시 보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초등학생 아이가 보아도 단숨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정통 우주 모험 활극입니다. 스타플릿 최첨단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장인 '제임스 T. 커크'(크리스 파인 분)는 규칙보다는 본능을 믿고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부터 앞서는 혈기 왕성한 인물입니다. 반면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일등항해사이자 부선장인 '스팍'(재커리 퀸토 분)은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법, 매뉴얼만을 철저하게 따르는 이성주의자입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이 두 인물이 한 팀이 되어, 우주 연방의 평화를 단숨에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초인 악당 '존 해리슨', 즉 '칸'(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의 음모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이야기의 커다란 기둥을 이룹니다. 거대한 함선들이 우주 공간에서 부딪치며 불꽃을 튀기고 푸른 광선포를 주고받는 광경만 지켜보아도 두 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볼 때마다 전혀 다른 결의 영화로 다가왔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관람했을 때는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압도적인 스케일의 워프 항해 연출과 칸이라는 매력적인 빌런의 서늘한 카리스마에 정신없이 넋을 놓고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로 다시 이 영화를 꺼내 보았을 때는 우주선이 파괴되고 허공으로 튕겨 나가는 화려한 시각효과 대신, 전혀 다른 곳에 시선이 멈추어 섰습니다. 바로 방사능 누출로 죽음의 공간이 되어버린 워프 코어 격리실, 그 두꺼운 방탄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손바닥을 맞대던 커크와 스팍의 얼굴이었습니다. 함선의 침몰을 막고 동료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치명적인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는 방 안으로 주저 없이 걸어 들어간 함장 커크, 그리고 평소에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이성의 가면이 산산조각 나며 유리벽 너머로 오열하던 스팍의 표정을 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한 떨림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눈부신 우주 블록버스터라는 화려한 껍데기를 한 겹 벗겨내고 나자, 그 밑바닥에는 내가 속한 일터와 내 곁의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가를 집요하게 묻는 묵직한 드라마가 숨어 있었습니다.

 

스팍의 굳어버린 턱 끝, 처음엔 얄밉고 두 번째엔 가슴이 아팠다

 

작품 속 스팍이라는 인물은 처음 마주했을 때 참 답답하고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얄미운 원칙주의자로만 보였습니다. 영화 도입부, 니비루 행성의 화산 폭발을 막으려다 고립된 스팍을 구하기 위해 커크는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엔터프라이즈호를 원주민들에게 노출하며 그의 목숨을 살려냅니다. 하지만 스팍은 고마워하기는커녕, 규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상관에게 한 치의 숨김없이 공식 보고서로 제출해 커크를 함장 자리에서 파면당하게 만듭니다. 자기 목숨을 살려준 친구의 등에 비수를 꽂는 것처럼 행동하며 오직 원칙과 절차만 되뇌는 그의 태도는 솔직히 분통이 터질 정도로 얄밉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스팍의 그 딱딱한 표정은 전혀 다른 언어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감정이 거세된 차가운 기계나 사이보그가 아니었습니다. 인간 어머니의 따뜻한 감정과 벌컨족 아버지의 엄격한 이성이 절반씩 섞인 혼혈로서, 자기 안에서 통제할 수 없이 요동치는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감당하기 벅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이성과 논리라는 단단한 갑옷 뒤로 숨어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펄펄 끓는 용암 속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담담하게 눈을 감았던 것조차 실은 태연해서가 아니라, 차오르는 원초적인 공포를 밖으로 터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삼켜낸 지독한 자기 절제였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자, 그 무표정한 얼굴이 한없이 처연하고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영화 초반, 파이크 제독의 집무실에서 커크와 스팍이 마주 서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감정적 결을 보여주는 압권입니다. 배신감에 휩싸여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쏘아붙이는 커크 앞에서, 스팍은 특유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딱딱하게 대답합니다. 처음엔 그저 융통성 없는 고집으로만 보였던 그 장면에서, 두 번째 보았을 땐 스팍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턱 끝이 바짝 굳어있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친구를 끌어내리려는 악의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원칙이라는 단단한 성벽 뒤로 자신을 꽁꽁 동여매지 않으면, 자기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친구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고마움과 죄책감이 일시에 터져 나와 자신이 무너져버릴까 봐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돌부처처럼 굳어있지만 속으로는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 위태로운 상태를 알아챈 순간, 나는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채 한동안 어두운 방 안에서 멍하니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납기 직전의 밤샘, 차가운 캔커피를 쥐고 버텨냈던 그날의 기억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하얗게 굳어버린 스팍의 턱 끝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내가 몸담고 있는 일터에서 겪었던 지독했던 하루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겹쳐 떠올랐습니다. 가공 납기 기한이 턱밑까지 차올랐던 어느 늦은 밤, 가공 기계 안에서 공구가 부러지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정밀 금형 표면을 길게 긁고 지나가는 대형 사고가 터졌습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한 땀 한 땀 가공해 온 모든 공정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 위기였습니다. 뒤에서는 기계를 조작하던 후배 직원이 사색이 된 얼굴로 손을 덜덜 떨고 있었고, 굉음을 듣고 달려온 공장 책임자는 당장 내일 아침 출하를 어떻게 맞출 거냐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현장을 쏘아붙였습니다. 속에서는 피가 바짝 마르고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아서, '아, 여기서 내 현장 인생도 다 끝장이 나는구나' 하는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거나 당황해 주저앉는다면, 이미 얼어붙은 현장 전체가 수습 불가능한 패닉에 빠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나는 억지로 턱 근육에 힘을 주고 표정을 굳힌 채, 평소보다 훨씬 더 딱딱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괜찮아, 소재 여유 치수 아직 남아 있으니까 다시 원점 잡고 수정 패스 새로 짜면 돼. 일단 기계 멈추고 공구 파손 상태부터 확인해." 등줄기에서는 차가운 식은땀이 속옷을 다 적실 정도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장 단단한 바위처럼 굳은 채 매뉴얼을 읊어댔습니다. 그날 화면 속 스팍의 굳은 턱 끝을 마주하는 순간, 기계 앞에 서서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버텨내던 내 모습이 거울처럼 겹쳐 보여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매달렸습니다. 땀으로 끈적이는 마우스에 힘을 쥐어가며 가공 경로를 소수점 단위로 깎아내고, 새벽 내내 차가운 기계 옆을 지키며 쇳가루 날리는 절삭 소리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동쪽 창문 너머로 희뿌연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떨리는 손으로 계측기를 들고 최종 치수를 찍어보았을 때 기적처럼 공차 범위 안에 딱 맞아떨어지는 숫자를 확인했습니다.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탁 풀리며 기름때 묻은 공장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밤새 뜬눈으로 가슴을 졸이던 후배가 눈가가 벌게진 채 뛰어와 "선배님, 진짜 살았습니다" 하며 편의점 캔커피 하나를 불쑥 건넸습니다. “차가운 캔을 손에 쥐고, 안 무너지고 끝내 버텨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새벽의 차가운 캔커피를 가슴 깊이 떠올린 뒤부터, 나는 스팍의 그 감정 없고 굳어버린 표정을 다시는 냉정하거나 얄밉다고 평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짊어진 일터의 무게와 사람들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온몸으로 틀어막고 버텨내던 한 인간의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화려한 우주 전쟁의 소음 너머로, 각자의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며 버텨내는 모든 이들에게 나직하고 깊은 위로를 건네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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