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덜컥거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심장을 쿵쿵 쳤습니다. 야간 가공 일정이 밀려 밤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공장 셔터를 내렸습니다. 깎아내야 할 서스(SUS) 소재 가공 블록들은 납기를 코앞에 두고 있었고, 머시닝 센터 안에서 절삭유를 뒤집어쓰며 하루 종일 기계와 씨름을 했습니다. 집에 들어와 대충 몸을 씻고 밥솥에 남은 찬밥 한 덩이를 물에 말아 삼켰지요. 아내와 두 아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집 안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낮은 기계음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피곤해서 눕자마자 기절할 줄 알았는데, 낮에 맞춘 공차 치수와 다음 주 결제일 계산이 머릿속에서 엉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모니터 잔상에 눈이 뻑뻑했지만 뭐라도 보면서 멍을 때리고 싶었습니다. 거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불을 모두 끈 뒤,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고 5천 원짜리 VOD를 결제해 틀었습니다. 제목은 '캐리어를 끄는 소녀'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저 피로를 잊어보려 가볍게 눌렀던 그 재생 버튼이, 그날 밤 잠 못 드는 기술직 가장의 숨을 턱 끝까지 몰아세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새벽 1시 반, 5천 원짜리 결제 버튼을 누르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어두컴컴한 보도블록 위를 굴러가는 작은 플라스틱 바퀴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의 파인 틈새와 튀어나온 보도블록 턱을 지날 때마다 캐리어는 덜컹거리며 위태롭게 흔들렸습니다. 소리가 참 질기고도 시끄러웠습니다. 새벽 1시 반, 가족들이 깰까 봐 숨죽인 방 안에서 그 거친 마찰음은 유독 날카롭게 고막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바퀴 축에서 나는 소리를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직업병이 도졌습니다. 제대로 된 베어링도 들어있지 않고 얇은 플라스틱 핀 하나로 버티는 싸구려 바퀴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축이 열을 받아 뒤틀리거나 깨져 나갈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현장에서 기계를 돌리다 보면 부품이 한계 하중을 넘어서기 직전에 내는 특유의 쇠 긁히는 비명이 있습니다. 영화 속 바퀴 소리가 딱 그 꼴이었습니다. 더 기가 찼던 건 그 위태로운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이었습니다. 손마디가 채 굵어지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손이었습니다. 제 키의 반만 한 낡은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아이는 밤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가방 바퀴가 턱에 걸려 헛돌 때마다 아이의 얇은 어깨가 사정없이 아래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 반동이 고스란히 손목과 팔꿈치 관절로 전해지는 게 화면 너머로도 훤히 보였습니다. 어른 한 사람의 인생도 제대로 감당하기 버거운 짐작 무게였습니다. 옷 몇 가지와 생필품이 마구 쑤셔 박혀 지퍼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가방이었습니다. 저걸 왜 저 조그만 아이가 혼자 끌고 있는지, 어른들은 다 어디로 도망치고 저 새벽길에 홀로 내몰렸는지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긁히고 깎여나가는 플라스틱 바퀴 소리만 집요하게 이어폰 속으로 쏟아부을 뿐이었습니다.
열다섯 살짜리가 울지도 않는다는 것
열다섯 살짜리가 울지도 않고 꾹 다문 입술로 앞만 보고 걷는 게 더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차라리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라도 하면 덜 독해 보였을 겁니다. 짐가방이 계단 모서리에 걸려 정강이를 찧어도, 아이는 입술을 피가 맺히도록 짓씹으며 그저 가방을 들어 올려 다시 끌었습니다.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는 그 굳은 얼굴이 너무나 지독했습니다. 대체 얼마나 모진 꼴을 겪었으면 울음조차 삼키는 법부터 배웠을까 싶었습니다. 공장에서 쇳덩이를 깎다 보면, 열처리가 잘못되어 겉만 단단하고 속은 바짝 굳어버린 불량 소재들을 보게 됩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작은 충격 하나에 쩍 하고 두 동강이 나버리지요. 화면 속 아이의 메마른 표정이 딱 그랬습니다. 속은 이미 다 부서져 가루가 되었는데, 버티려고 억지로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참나, 공장 쇳밥 15년에 눈물샘은 진작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차마 똑바로 보기 힘들었습니다. 기계에 손가락이 짓눌려 꿰맬 때도 소리 한번 안 질렀고, 납기 못 맞춘다고 원청 업체 관리자에게 삿대질당할 때도 묵묵히 고개 숙이며 버텼던 저였습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무덤덤해졌다고 자부했는데, 화면 속 아이가 편의점 폐기 삼각김밥을 삼키며 목이 메어 헛기침하는 장면에서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노릇입니다. 같은 시간, 우리 애들은 방 안 침대에서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습니다.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와, 화면 속 아이가 새벽길 아스팔트 바닥을 긁으며 걷는 소리가 귓속에서 지독하게 겹쳤습니다. 만약 내가 잘못되면, 내 손이 기계에 물려 들어가 일을 못 하게 되거나 우리 집 공정이 멈춰 서면 어쩌나 하는 현실적인 공포가 뼈마디를 파고들었습니다. 저 무거운 짐을 내 아이들이 짊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멎었던 숨이 터져 나온 순간
영화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화면을 끄고 까치발을 들고 애들 자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어둠 속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둘째 녀석은 여느 때처럼 이불을 발차기로 저 멀리 걷어찬 채 대(大)자로 뻗어 자고 있었습니다. 녀석의 앙증맞은 발을 가만히 쥐어 이불 속으로 밀어 넣는데, 손바닥에 닿는 발바닥의 보드랍고 따뜻한 온기에 그제야 멎었던 숨이 푹 터져 나왔습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그 작은 온기가 참 무거웠습니다. 기름때와 쇠가루가 박혀 거칠어진 제 손으로 아이의 통통한 볼을 조심스레 스쳐 보았습니다. 내 새끼들 손에 저런 무거운 가방 쥐어주는 일은 절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에 굳은살 박인 손을 꽉 쥐었습니다. 통장 잔고가 얼마가 남았든, 이번 달 대출 이자가 얼마나 올랐든, 이 온기만큼은 내가 피를 토해서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주방으로 나와 싱크대 수도를 틀고 찬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식탁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뒤, 작업복 주머니에서 기름 냄새 밴 손때 묻은 작업 수첩을 꺼내 펼쳤습니다. 내일 가공해야 할 방산 부품 공차 목록과 납기 일정, 그리고 거래처 어음 결제일을 볼펜 끝으로 꾹꾹 눌러 짚었습니다. 소수점 세 자리까지 정밀하게 맞춰야 하는 공정표의 치수들을 하나하나 검토했습니다. 수첩을 넘기는 손끝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습니다. 헐렁거리던 나사가 제자리를 찾아 꽉 조여지듯, 잡념으로 어지럽던 머릿속이 차갑고 단단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새벽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가슴속에 쇳덩이 하나가 중심을 딱 잡고 들어앉은 기분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나면 또다시 굉음이 울리는 공장 바닥으로 나가야 합니다. 현관 앞에 놓인 낡은 안전화의 지퍼를 올리고 끈을 단단히 고쳐 맸습니다. 내가 버텨내야 내 아이들이 무거운 짐 없이 가볍게 세상을 걸어갈 수 있기에, 오늘 아침에도 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기계 전원을 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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