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화면이 꺼지자마자 낡은 소파에 기대어 천장만 멍하니 올려다보았습니다. 입꼬리에서는 설익은 헛웃음이 툭 새어 나왔는데, 이상하게 얹힌 밥알마냥 가슴 한가운데는 묵직한 돌덩이를 얹어둔 것처럼 뻐근하더군요. 방금 아내와 함께 불을 끄고 본 영화 애비규환의 잔상이 모니터 잔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야간 잔업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거실에는 아내가 마른 수건을 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으로 무릎을 쓸어내리다가, 불 꺼진 방에서 쌕쌕거리며 자고 있는 아이들의 방 문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애비규환 보고 난 밤, 소파에서 천장만 올려다봤다
소파에 등을 푹 묻고 누워 형광등 꺼진 천장을 바라보는데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피식 터져 나온 헛웃음 뒤로 서늘한 무게감이 턱 밑까지 차올랐습니다. 아내는 말없이 건조대에서 마른 수건을 걷어 차곡차곡 개키고 있었고,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휑한 거실에 유난히 크게 울렸습니다. 주름진 아내의 손마디를 가만히 쳐다보는데 왠지 모르게 목구멍 뒤쪽이 뻑뻑해졌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현장에서 묻혀온 기름 찌꺼기와 피로를 털어내려 베란다 문을 열고 담배부터 한 대 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끝자락을 보고 난 뒤에는 담배 한 개비 태울 생각조차 말끔히 가시더군요. 속에서 치받쳐 오르는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소리를 죽인 채 아이들 방으로 조용히 걸어갔습니다. 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가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녀석들의 발을 조심스레 덮어주었습니다. 땀에 젖은 이마를 손가락 끝으로 쓸어넘기고, 흐트러진 이불자락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 뒤돌아 나왔습니다. 영화 속 토일이라는 스물두 살 먹은 아가씨가 배가 부른 채로 친아버지를 찾아 헤매고, 그 곁에서 당황해하며 우왕좌왕하던 남자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핏줄이라는 이름 하나 붙잡고 길을 나선 딸아이의 그 당돌하면서도 위태로운 걸음걸이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나 홀로 세상과 부딪힐 우리 애들 뒷모습과 겹쳐 보여 목구멍 뒤가 뻐근해져 헛기침만 두어 번 뱉었습니다.
CNC 15년, 공장 바닥의 진짜 풍경
제가 매일 마주하는 일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0.005밀리미터 공차를 다투는 곳입니다. 도면을 받아 들고 CAD/CAM 화면에 공구 경로를 띄워놓고 가공 코드를 짤 때면, 모니터에 머리를 박은 채 온종일 온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합니다. 공구 날 하나가 조금만 마모되거나 절삭유 농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몇백만 원짜리 알루미늄 블록이 단숨에 고철 폐기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대 초반 기름 찌든 바닥에 막내로 들어가 쇳가루를 뒤집어쓰던 시절부터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기계 절삭음의 육중한 굉음은 이제 제 일상의 가장 익숙한 배경음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손톱 밑에 파고든 검은 쇳가루와 칩에 긁혀 붉은 줄이 그어진 손등은 성할 날이 없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쪼르르 달려오던 아이들이 "아빠 몸에서 쇠 냄새나!" 하며 코를 쥐고 도망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욕실에 들어가 손톱 솔로 피가 배어 나올 만큼 박박 문질러 씻어내도, 살갗 깊숙이 박힌 절삭유 특유의 냄새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더군요. 그럴 때면 문밖에서 배시시 웃는 아이들을 보며 멋쩍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씁쓸하게 헛기침만 삼키곤 했습니다. 엔드밀이 회전하며 불꽃과 절삭유를 사방으로 뿜어내는 가공 챔버 안의 서슬 퍼런 풍경이나, 빡빡한 납기 일정을 맞추지 못할까 봐 가슴 졸이며 기계 옆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진짜 공장 바닥의 팍팍함은 굳이 아이들에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아비가 하루하루 버텨내는 그 치열한 생존의 자리는, 그저 깨끗하게 세탁된 작업복 냄새 뒤로 묵묵히 숨겨두는 것이 온당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빠 최고다" 한마디와 태효의 무기력한 어깨
주말에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빼뚤 쓴 편지에 "우리 아빠 최고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투박한 글씨 한 줄을 마주하면 15년 동안 쇳가루와 기름밥을 먹으며 손가락이 터져나간 굳은살투성이 손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제가 지난 세월 동안 기계 앞에서 버텨온 유일한 훈장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 배 속 아이의 아빠인 호훈이를 잃어버리고, 친아버지를 찾겠다고 대구까지 내려간 토일이의 행적을 보면서 문득 서글픈 물음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손가락이 찢겨가며 밤낮없이 일해 번 돈으로 학원비를 대주고 밥을 먹여 키운 이 세월이, 나중에 아이들이 훌쩍 자랐을 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두려워졌습니다. 훌쩍 길쭉해진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눈가가 뻑뻑해져 괜히 눈을 세게 깜빡였고, 녀석들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언젠가는 제 손을 털어내고 훌쩍 떠나버리겠지 싶었습니다. 극 중에서 토일이를 길러준 새아버지 태효가 겉으로는 헛기침을 하며 쿨한 척 넘기려다, 결국 서운함과 무력감에 혼자 쓴물을 삼키는 표정을 지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십수 년을 친자식 이상으로 정성을 다해 키워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 아이 마음속 가장 깊은 방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문밖에서 서성이는 그 뒷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지금은 가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하고 있지만, 정작 훗날 아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하는 허깨비 같은 존재로 밀려나지는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그토록 애를 썼음에도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고개를 떨구던 태효의 무기력한 어깨가 꼭 내 미래 같아서 가슴이 시릴 정도였습니다.
그 두려움을 털어내려 찬물 한 컵 들이켜고 나니 복잡하던 속이 비로소 가라앉았습니다. 자식이 품을 떠나겠다고 하면 제 몫의 삶을 살아가게 묵묵히 길을 터주는 것 또한 아비의 몫이겠지요. 내일 아침에도 알람이 울리면 군말 없이 일어나 기름 찌든 작업복 챙겨 입고 공장 문을 열러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