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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리화가, 쇳가루 묻히던 15년 차 가공쟁이의 눈에 밟힌 독기

by 풍성함 2026. 10. 2.

도리화가 영화 공식 포스터

채선이가 흙탕물에 처박히며 소리를 내지르던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아서 봤습니다. 거실 불 다 끄고 소파에 반쯤 누워 멍하니 채널을 넘기던 중이었는데, 허리가 절로 꼿꼿하게 펴지더군요. 낮 동안 내내 신경을 갉아먹던 납기 일정이나 절삭유 냄새도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습니다. 추석 연휴 끝자락이라 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었고, 아이들과 아내는 안방에서 깊게 잠들어 숨소리만 작게 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머리는 피곤해 터질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잠은 안 오고, 허공을 쳐다보며 리모컨 버튼만 무심하게 딸깍거렸지요. 그렇게 우연히 걸려든 화면 속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목을 쥐어짜는 여자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서늘한 눈을 마주한 순간 잠기운이 단번에 달아났습니다.

 

도리화가, 추석 새벽 두 시에 우연히 만난 영화

명절 연휴 내내 밀린 잔업 걱정에 온전히 쉬지도 못했습니다. 현장 머시닝센터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베개에 머리를 대도 머릿속엔 온통 3D 형상 모델링과 공구 궤적 잔상만 떠돌던 참이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 거실로 나와 마주한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 이야기라길래 그저 뻔한 옛날이야기겠거니 하고 화면을 건성으로 흘려보냈습니다. 금기니 뭐니 하며 여자는 소리를 배울 수 없다는 시절의 벽도 현대 직장인 시선에서는 그저 흘러간 역사 속 구닥다리 설정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채선이가 스승 신재효 문하로 들어가 악착같이 입을 벌리고 소리를 토해내는 과정이 나오면서 호흡이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예쁜 배우가 한복 곱게 차려입고 노래자랑 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소리가 안 나와서 피를 토하고, 비바람 치는 산속과 진흙탕 바닥을 구르며 자기 한계를 맨몸으로 깨부수는 장면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몸부림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찌르르 울리면서 시선을 화면에서 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까만 화면 위로 조용히 올라가는데도 손에 쥔 리모컨을 누를 생각조차 못 한 채 멍하니 굳어 있었습니다. 적막한 거실 안에서 들리는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이 제가 여전히 2020년대를 살아가는 기름밥 기술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영화 속 소리꾼, 스물일곱 공장 신입과 겹쳤다

화면 속에서 목이 다 쉬어 터진 채 소리를 쥐어짜는 채선이를 보는데, 목구멍이 턱 막히고 뒷덜미가 뻐근하게 굳어왔습니다. 벼랑 끝에 서서 이거 아니면 나는 죽는다 하고 자기 목숨줄을 깎아 먹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배워서 제 것으로 만들어보겠다고 바닥을 기어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그 지독한 독기였습니다. 그 얼굴을 보는데 스물일곱 살 겨울, 처음 공장 바닥에 발을 디뎠던 제 막내 시절이 눈앞에 겹쳐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CAD/CAM 프로그램이고 뭐고 없었고, 그저 얼어붙은 바닥에서 걸레 들고 칩 치우며 눈칫밥 먹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선반 척에 소재 물리다가 0.01밀리 공차를 못 맞춰서 부품을 깎아 먹고 사수한테 온갖 쌍욕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이크로미터를 쥔 손이 덜덜 떨리던 그 차가운 감각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시절 사수들은 지금처럼 친절하게 매뉴얼을 보여주며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기술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거라며 매정하게 등만 돌렸지요. 그래서 매일 잔업이 끝나고 다들 퇴근한 야간에 몰래 불 꺼진 공장에 혼자 남아 버려진 쇳덩이를 물려놓고 손을 바들바들 떨며 치수를 재보곤 했습니다. 남의 기술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저렇게 피비린내 나는 짓이었지 싶어 턱밑까지 뜨거운 게 치밀어 올랐습니다. 영화 속에서 피를 토하며 목을 틔우던 그 소리꾼 처자의 모습은, 칼바람 부는 공장 한구석에서 쇳밥 먹어가며 기술 하나 제대로 익혀보겠다고 이를 악물던 제 젊은 날의 모습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쇳가루 손, 냉수 한 컵, 그리고 묵직한 자부심

영화가 다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가 냉수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식탁 유리에 비친 제 양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날카로운 쇳조각과 칩에 긁혀 성한 날이 없는 손등과 지문 사이에 박혀 빠지지도 않는 시커먼 기름때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이제는 현장 바닥에서 구르기보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서브마이크론 단위를 계산하고 가공 툴패스를 뽑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렇더라도 제 몸의 근본은 여전히 저 거친 쇳가루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손등의 흉터들이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스물일곱 막내 시절의 서러움과 그때의 혹독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도 도망 안 치고 용케 버텼구나 싶어 안도감도 들고, 한편으론 씁쓸하면서도 속에서 묵직한 오기 같은 게 올라오더군요. 밥벌이의 숭고함이라는 거창한 말은 잘 모릅니다. 단지 그 시절 포기하고 현장을 뛰쳐나갔더라면 지금의 나와 내 처자식을 책임지는 이 기술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005밀리의 오차와 싸우는 지금의 정밀함도 결국 그 피 말리던 바닥 생활의 버팀목 위에서 세워진 결과물이었습니다.

 

공장 동생한테 추천했더니, '잔업하는 기분 들어서 혼났다'

며칠 뒤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배우며 끙끙 앓고 있는 후배 녀석을 데리고 공장 앞 삼겹살집으로 갔습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채워주며 지나가는 말로 도리화가 봤냐고 툭 던져보았습니다. 주말에 시간 나면 한 번 챙겨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며칠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커피 한 캔을 들고 오더니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더군요. 수지 얼굴이나 보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다가, 퇴근하고 쉬는 날에도 공장에서 잔업하는 기분이 들어서 혼났다고 헛웃음을 쳤습니다. 화면 속에서 혼나고 깨지며 버티는 꼴이 평소 공장에서 구박받던 자기 모습 같아서 도저히 편하게 볼 수가 없었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영화를 두고 흥행이 어땠네, 역사 고증이 어땠네 하며 저마다 평점을 매기며 쉽게 지나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닥에서 눈칫밥 먹으며 손에 굳은살 박여본 사람한테는 그 악바리 근성이 남일 같지 않게 박힙니다. 밑바닥에서 기술 하나 배우겠다고 남몰래 피눈물 흘려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그저 화면 속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저는 출근하자마자 도면을 펴고 쇳덩이를 깎기 위해 공작기계 문을 열 것입니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몫의 삶을 깎아내며 자리를 지키는 모든 기술자들의 고단한 하루가 부디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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