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근을 마치고 녹초가 된 토요일 밤, 맥주 한 캔 까놓고 시원한 중세 기사 액션이나 볼까 싶어 영화를 틀었다가 온몸이 굳어지며 손에 쥐고 있던 맥주 캔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낮 동안 가공 센터 베드 위에 부품 물려놓고 100분의 1밀리미터 공차 맞추느라 온종일 마이크로미터를 돌렸습니다. 납기일은 코앞이고 가공 툴은 마모되어 치수가 튈까 봐 도면만 뚫어져라 쳐다봤더니, 퇴근할 무렵에는 목덜미가 뻐근하고 눈앞에 CAD 선 잔상만 어른거리더군요. 주말 잔업 뛰고 들어와 씻고 나오니 집안은 고요했습니다. 아이들은 방에서 곤히 자고 있고, 집사람도 피곤했는지 일찍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습니다. 거실에 홀로 앉아 땀 식히며 머리나 비울 생각으로 넷플릭스를 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1. 라스트 듀얼, 맥주 캔을 내려놓게 된 토요일 밤
처음에는 그저 흔한 칼부림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영지 다툼을 벌이고 명예를 지킨다며 칼을 휘두르는, 그런 단순한 시대극인 줄 알고 목구멍으로 차가운 맥주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칼과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는 공장에서 엔드밀이 쇠를 깎아낼 때 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꽤 닮아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반복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남편 장의 시선, 가해자 르 그리 시선, 그리고 아내 마르그리트의 시선이 차례대로 펼쳐졌습니다. 장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저 가문을 지키고 억울한 아내를 위해 목숨 걸고 나선 당당한 기사이자 책임감 있는 가장의 모습이었습니다. 불합리한 주군 밑에서 치이고 실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도, 집안의 명예 하나 지키겠다고 이 악물고 버티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르그리트의 시선이 시작되는 순간 쥐고 있던 캔을 도저히 입으로 가져갈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웅장한 정의는 아내를 향한 보호가 아니라, 그저 자기 소유물에 대한 훼손을 참지 못해 터뜨린 졸렬한 자존심 싸움에 불과했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자기가 당한 억울함과 체면을 세우는 데만 급급했지, 정작 지옥 같은 일을 겪은 아내의 공포나 고통에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에서 짓던 표정들이 영화 속 남편의 얼굴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낮에 기계 소음에 시달리며 납기 맞추느라 예민해진 신경을 그대로 안고 퇴근해,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퉁명스럽게 굴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바닥에 내려놓은 맥주 캔 겉면에 맺힌 물방울이 식탁 위로 뚝뚝 떨어지는데, 그걸 닦아낼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습니다.
2. 결투장 걷는 두 사내, 불 앞에 선 마르그리트
결투 장면은 참혹했습니다. 두 사내가 육중한 철갑옷을 챙겨 입고 흙먼지 날리는 결투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던 마르그리트는 높은 단상 위에 묶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결투에서 지면 신의 뜻에 따라 거짓말을 한 죄인이 되어 산 채로 불타 죽어야 한다는 끔찍한 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갑옷을 입은 남자들은 살기 위해, 혹은 자존심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의 살점을 뜯어낼 듯이 칼을 휘둘렀습니다. 창이 부러지고 말이 쓰러지며 쇠붙이가 부딪쳐 불꽃이 튀는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화면을 보는 내내 결투하는 기사들의 무용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채 발밑에 쌓인 장작더미를 내려다보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여자의 표정만 보였습니다. 남자들은 결투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비장한지, 이 명예가 얼마나 대단한지 도취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결투의 대가를 온전히 짊어지고 목숨을 저당 잡힌 사람은 아무런 칼도 쥐지 못한 마르그리트였습니다. 남편이 이기면 정숙한 아내로 남는 것이고, 남편이 지면 불길 속에서 타죽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였습니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지킨답시고 밖에서 부리는 고집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회사에서 관리자나 거래처와 단가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도면 수정 건으로 고함이라도 치고 온 날이면 집에 와서 유난히 목에 힘을 주곤 했습니다. 내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투정이었습니다. 영화 속 마르그리트가 겪는 참담한 고립감 앞에서, 제가 내세우던 고단함의 무게가 부끄러워졌습니다.
3. 안방 문 앞에서 — '나는 어떤 남편이었나'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티비 화면이 까맣게 꺼진 뒤에도 한참을 소파에 굳은 듯 앉아 있었습니다. 거실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유독 크게 들렸습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안방 문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문을 아주 살짝 밀어 열어보았습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규칙적으로 숨을 쉬는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이불을 턱 밑까지 덮고 잠든 아내의 얼굴을 멍하니 내려다보았습니다. 매달 빠져나가는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에, 큰아이 수학 학원비와 둘째 미술 학원비 영수증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아내의 지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저 사람한테 어떤 남편이었나 묻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잔업하고 주말 특근 뛰며 돈 벌어다 주니 내 도리는 다하고 산다고 혼자 위안 삼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정밀 부품 깎을 때는 0.005밀리미터 틀어지는 것도 기겁을 하며 보정값을 넣으면서, 15년 동안 곁에 있던 사람의 마음이 어디서 닳아가고 있는지 오차 한번 제대로 점검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기계가 말썽을 부려 불량이 나면 밤을 새워서라도 원인을 잡으려 매달렸습니다. 아내가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지쳐 힘든 기색을 비칠 때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말문을 닫고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주말 특근으로 뻐근했던 어깨 결림보다 마음속에 얹힌 부끄러움이 훨씬 더 무겁게 내려앉는 밤이었습니다.
4. 콩나물국 한 그릇, 기술자의 옹졸한 사죄
짧은 쪽잠을 자고 일요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온몸이 쑤셨지만 자리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용히 주방으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검은 봉지에 담겨 있던 콩나물 한 봉지를 꺼내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손끝에 기름때가 아직 덜 빠진 거친 손으로 노란 대가리를 골라내고 찬물에 여러 번 헹궈냈습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멸치 대여섯 마리를 던져 넣어 국물을 냈습니다. 평소에는 라면 하나도 제대로 안 끓여 먹던 놈이 도마 위에 파를 썰어 올리며 칼질을 하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맑은 국물에 콩나물을 털어 넣고 소금 한 숟가락으로 간을 맞췄습니다.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동안 개수대에 쌓여 있던 전날 그릇들을 꺼내 세제를 묻혀 닦아냈습니다. 설거지를 뽀득뽀득 끝내고 마른행주로 싱크대 주변 물기까지 깨끗하게 훔쳐냈습니다. 늦은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방에서 나온 아내가 주방을 보고는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아내에게 대단한 말을 건네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밥 먹으라고, 국 끓여놨으니 어서 앉으라는 퉁명스러운 소리밖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무뚝뚝한 기술자가 아내에게 건넬 수 있었던 가장 밑바닥 수준의 작고 옹졸한 사죄였습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다시 작업복을 꿰어 입고 공장으로 출근해 쇳밥을 먹으며 살아가겠지만, 이제는 퇴근길 현관문을 열 때 문고리를 잡고 숨을 한 번 고르게 될 것 같습니다. 기계 부품 깎는 정성의 반의반만이라도, 곁에서 묵묵히 제 모난 성격을 견뎌주는 아내의 하루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남편이 되어야겠다고 가만히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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