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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언니 후기, 잔업 앞둔 야간에 리모컨 세 번 쥔 피로감

by 풍성함 2026. 10. 4.

 

언니 영화 공식 포스터

새벽 두 시를 넘긴 시각에 내일 아침 일찍 잡힌 잔업을 앞두고 TV를 켰다가, 그냥 전원 끄고 자자 싶었습니다. 낮 동안 정밀 부품 치수 맞추느라 모니터 화면 속 가공 경로 선들을 수천 번 쳐다봤더니 눈알이 뻑뻑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소수점 세 자리 공차 맞추는 작업을 종일 붙잡고 씨름하다 퇴근하면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악당들 시원하게 쓸어버리는 액션이나 한 편 보려고 결제 버튼을 눌렀습니다. 내일도 기계 앞에 서서 칩 튀는 거 지켜봐야 하는 일정인데, 괜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영화 시작하고 십 분도 안 돼서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피곤에 절어 있는 몸으로 소파 구석에 비스듬히 누워 화면을 보는데,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속이 답답하게 얹히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 기계 회전수 잘못 먹여서 날 끝이 깨져 나갈 때 나는 쇳소리처럼,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신경을 긁는 묘한 불쾌감이 방 안에 가득 찼습니다. 내일 당장 아침 납기 맞춰야 하는 주문 건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와중에, 화면 안에서는 도저히 곱게 봐줄 수 없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언니 영화 후기, 새벽 잔업 앞두고 리모컨 세 번 쥐었다

영화가 돌아가는 동안 리모컨을 집어 들고 전원 버튼에 엄지손가락을 올린 게 딱 세 번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 초반에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 은혜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여 몹쓸 짓을 당하는 낌새가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작업할 때도 가공 조건이 어긋나면 장비가 망가지기 전에 바로 비상정지 스위치를 누릅니다. 그 초반 장면을 보면서 제 손이 반사적으로 리모컨을 찾았습니다. 약자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그 고통받는 순간을 굳이 그렇게 질질 끌며 보여줄 이유가 있나 싶어 짜증이 확 솟구쳤습니다. 두 번째로 리모컨을 쥔 건 실종된 동생을 찾아 헤매던 언니 인애가 경찰서를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아이 둘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내 가족이 사라졌는데 문전박대당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민원인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규정 타령이나 늘어놓는 공권력의 태도는 현실보다 더 뻔뻔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치수 불량 난 걸 뻔히 알면서도 납품처에 대충 넘기려는 무책임한 하청업체를 볼 때 느끼는 울화통이 그대로 밀려왔습니다. 진짜 여기서 끄고 자야 내일 일할 때 실수 안 하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세 번째는 이시영 배우가 연기하는 인애가 새빨간 원피스에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각목과 렌치를 휘두르는 모습이 잡힐 때였습니다. 액션의 합을 맞추고 몸을 던지는 배우의 고생은 눈에 훤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앵글이 잡는 시선은 지극히 엉뚱한 곳을 훑고 있었습니다. 짧은 치마를 펄럭이며 싸우는 모습을 집요하게 아래에서 위로 훑는 카메라를 보는데 헛웃음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복수를 하겠다는 인물에게 저런 불편한 옷을 입혀놓고, 그걸 또 눈요깃거리처럼 전시하는 연출 의도가 빤히 보여서 리모컨을 쥐어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끝내 끄지 못한 건 오직 하나, 지독하게 서글픈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지옥 같은 바닥을 뒹굴며 온몸에 피멍이 든 언니가 마지막에 제 동생을 살려서 품에 안는 꼴은 내 두 눈으로 기어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 피로는 이미 확정된 상태였지만, 여기서 꺼버리면 밤새 찝찝한 잔상에 시달려 잠을 더 설칠 것 같아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이시영 액션, 그런데 감독 태도가 문제였다

현장에서 쇳밥 먹으며 도면 보고 기계 만진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도면을 딱 보면 이 설계자가 현장 가공자를 배려해서 치수를 넣었는지, 아니면 지 편한 대로 숫자만 대충 던져놨는지 단박에 보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5년 동안 현장에서 온갖 인간 군상 겪어본 제 눈에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태도는 도무지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우는 갈비뼈가 나가도록 몸을 던져서 주먹을 꽂아 넣고 있는데, 메가폰을 쥔 연출자는 정작 그 고통과 복수를 다루는 방식에 아무런 고민이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남의 집 막힌 하수구 구멍을 강제로 들여다보게 만든 것 같은 지저분한 피로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세상의 더럽고 어두운 면을 다룰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룰 때는 최소한의 윤리적인 거리감이나 약자에 대한 부채감이 있어야 맞습니다. 이 영화는 지적장애인이라는 가장 취약한 존재가 겪는 수모를 관객에게 자극적인 미끼로 툭툭 던져놓고, 그 위에 여성 원톱 액션이라는 포장지만 번지르르하게 씌워 놓았습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그 서글픈 분노였습니다. 영화 속 세상에는 동생 은혜를 착취하고 뜯어먹는 악마들만 득실거릴 뿐, 제대로 된 어른 하나 없었고 제 역할을 하는 경찰도 없었습니다. 학교 선생이라는 작자부터 카센터 사장, 동네 편의점 늙은이, 지역 유지까지 하나같이 입에 담지 못할 파렴치한 짓에 가담하고 방관했습니다. 저도 집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는 가장이고 밖에서는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아저씨지만, 화면 속 어른들의 민낯을 보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치가 떨렸습니다. 이시영 배우가 몸 사리지 않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안쓰러웠습니다. 대역 없이 고난도 격투를 소화하고 관절기를 꺾는 움직임은 분명 한국 액션 영화에서 보기 드문 밀도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 훌륭한 날붙이를 쥐여주고는 고작 엉뚱한 오물을 치우는 데 허비하게 만든 꼴이었습니다. 알맹이 설계는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가공 기술자 혼자 밤샘 잔업 해서 억지로 형상만 깎아낸 불량 부품을 받아든 기분이었습니다.

 

언니 영화 엔딩, 이긴 싸움 아닌 숨만 붙은 패배

마침내 모든 여정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새까매진 TV 화면에 멍하니 비친 제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새벽 세 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고, 화면 속 제 눈은 충혈되어 퀭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나쁜 놈들을 모조리 때려잡고 동생을 오토바이에 태워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속에는 그 어떤 통쾌함도 남지 않았습니다. 체증이 쑥 내려가는 카타르시스는커녕 모래를 한 움큼 씹어 삼킨 것처럼 입안이 꺼끌꺼끌했습니다. 이건 인애가 이긴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처참한 패배였습니다. 온몸이 찢기고 영혼까지 짓밟힌 두 자매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막막함부터 앞섰습니다. 복수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들이 돌아가야 할 현실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부서진 마음을 치료해 줄 복지 시스템도,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이웃도 없는 황무지로 다시 내던져진 꼴이었습니다. 세상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지독하게 춥고 가혹한지, 굳이 이런 방식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작업복 입고 출근해서 기름 냄새 맡으며 한 푼 두 푼 버는 이유도 결국 내 새끼들, 내 가족 이런 험한 세상 풍파 안 맞게 울타리 쳐주려는 것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울타리가 한 번 무너지면 약자들이 어디까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지 잔인할 정도로 무성의하게 보여주기만 했습니다.

 

누가 저한테 이 영화 볼만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절대 추천 못 합니다. 새벽 잔업을 앞두고 몸이 천근만근인 상태에서 이런 헛헛한 불쾌감을 굳이 돈 주고 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나 한숨 더 자거나 다른 통쾌한 액션 영화 찾아보라고 잘라 말할 겁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일도 칼같이 기계 치수를 맞추고 정직하게 버텨내야 하는 현실 가장들에게, 이런 무책임한 영화는 피로만 더 얹어줄 뿐입니다. 이제 서너 시간 뒤면 알람이 울릴 테니, 차가운 물로 세수나 한번 하고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 내일 하루를 버텨낼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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