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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매지너리 결말 후기: 스마트폰 화면 뒤에 방치했던 내 아이의 외로운 틈새

by 풍성함 2026. 9. 10.

이매지너리 영화 공식 포스터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불이 켜진 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집으로 돌아와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온습도가 완벽하게 통제된 지식산업센터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도면과 모니터의 치수만을 쫓다가 늦은 밤 퇴근길에 올랐고, 늘 그랬듯 불 꺼진 거실을 지나 조용히 아이 방 문을 열어보았을 때였습니다. 세상모르게 이불을 끌어안은 채 색색 숨을 쉬며 잠든 아이의 작고 여린 뺨을 내려다보는데, 영화 속에서 마주했던 그 낡은 갈색 곰 인형의 기괴하고 음산한 침묵이 불현듯 겹쳐 떠오르며 등골을 타고 서늘한 공포가 왈칵 밀려왔습니다.

 

이매지너리, 영화가 끝나고 불 꺼진 방에서 덜컥 겁이 난 이유

 

제프 와드로 감독이 연출하고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 《이매지너리》의 뼈대는 초등학생 아이라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직관적이고 고전적인 잔혹 동화의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주인공 제시카가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남아 있는 옛집으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오고, 어린 막내딸 앨리스는 지하실 깊숙한 먼지 더미 속에서 버려진 낡은 테디베어 인형 '촌시'를 우연히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상상 속 친구(Imaginary Friend)와의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소꿉장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촌시가 나랑 비밀 놀이를 하고 싶어 해"라며 앨리스가 공책에 삐뚤빼뚤 적어 내려가는 놀이 목록은 계단 난간에서 뛰어내리기나 손바닥을 날카로운 것에 다치게 하기처럼 점점 위험천만하고 섬뜩한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알고 보니 그 낡은 곰 인형 촌시는 평범한 장난감이 아니라, 어른들의 무신경한 방치 속에서 아이가 속으로 삼켜야만 했던 외로움과 결핍된 마음의 균열을 갉아먹으며 몸집을 불리는 악령이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와 불 꺼진 방에서 자는 내 아이의 얼굴을 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도 이제 딱 열 살 안팎, 초등학교에 입학해 제법 의젓한 태를 내며 부모의 손길을 덜 타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겉으로는 숙제도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해내고 투정도 부리지 않아 다 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이 무렵의 아이들은 말로 미처 다 털어놓지 못하는 사소한 서운함이나 결핍이 마음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이기 가장 쉬운 위태로운 시기입니다. 밖에서 정밀 기계를 다루며 늘 피로에 찌들어 있는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제 안의 막막한 외로움과 섭섭함을 문 뒤편에 꼭꼭 숨겨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덜컥 두려워졌습니다. 앨리스가 굳게 닫힌 방문 뒤에서 차가운 곰 인형을 유일한 도피처 삼아 가슴에 품었던 것처럼, 내 아이의 마음속에도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깊고 어두운 틈새가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죄책감이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자전거를 잡아주며 스마트폰 화면만 쓸어내리던 그날의 풍경

 

영화 속에서 앨리스가 아무도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자, 차가운 곰 인형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어두운 방구석에 홀로 웅크려 있던 그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을 때 몇 달 전 동네 놀이터에서 홀로 페달을 밟고 있던 내 아이의 뒷모습이 거울처럼 겹쳐 보여 가슴이 시큰하게 저려왔습니다. 아이가 보조바퀴를 떼고 두 바퀴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이었습니다. 모처럼 일터를 벗어나 쉬는 주말이라며 큰마음을 먹고 함께 밖으로 나갔지만, 정작 나는 아이 곁에 온전히 머물러주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뒤에서 아빠가 안장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지 거듭 확인하느라 자꾸만 고개를 뒤로 돌리며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손은 작업복 주머니 속에서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꺼내 지식산업센터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작업 공지들을 확인하느라 바빴고, 머릿속으로는 다음 주에 깎아내야 할 금형 부품의 납기 스케줄과 공차 수치를 계산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이의 자전거 손잡이 언저리를 건성으로 붙잡고 있었을 뿐, 내 영혼과 시선은 온통 차가운 일터의 네모난 화면 속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 나 절대 안 놓을 거지? 지금 뒤에서 꽉 잡고 있는 거 맞지?" 페달을 밟느라 긴장으로 잔뜩 굳어버린 어깨를 하고, 행여나 넘어질까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의 목소리는 절박하리만큼 간절했습니다. 그 순간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자전거 중심을 잡는 기술적인 요령이 아니라, '아빠가 내 등 뒤를 온몸으로 지켜주고 있다'는 변함없는 확신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애타는 시선을 끝내 정면으로 마주해주지 못했습니다.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액정을 무심히 슥슥 쓸어내리며 "그럼, 아빠가 뒤에서 다 보고 있으니까 딴생각 말고 앞이나 똑바로 봐" 하고 건성으로 말을 툭 내던져버렸습니다. 아이는 내 그 무책임한 대답 한마디만 철석같이 믿은 채,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날 아이가 뒤돌아보며 보냈던 그 불안하고 여린 눈빛을, 아이의 그 소중한 신뢰를 차가운 허공에 무방비하게 팽개쳐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 속 앨리스의 상처 입은 눈망울을 마주하고서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아빠의 자리를 일상에서 지워버리기 시작했던 날들

 

그 놀이터 자전거 일 이후로 일어났던 서늘한 변화들을 곱씹어보면, 지금도 뒤통수를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한 현기증이 듭니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늦은 밤 퇴근하고 들어온 나를 향해 "아빠, 이것 좀 봐봐"라거나 "나랑 조금만 놀아줘"라며 옷자락을 잡아끄는 일을 거짓말처럼 뚝 멈추었습니다. 거실 한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블록을 맞추며 웅얼거릴 뿐, 내가 방으로 다가가 "오늘 학교에서 뭐 하고 놀았어?"라고 먼저 말을 건네도 손에 쥔 장난감에서 눈길 한번 떼지 않은 채 "그냥요. 혼자 놀았어요" 하고 무미건조하게 답할 뿐이었습니다. 떼를 쓰거나 서운하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마치 처음부터 이 집에 아빠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제 일상에서 내 자리를 슬그머니 비워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대를 품었다가 다시 실망하는 상처가 두려워,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자기만의 고립된 방어막 속으로 숨어버린 아이의 그 담담한 침묵은 그 어떤 매서운 원망보다 아프게 내 심장을 찔렀습니다. 0.001mm의 가공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정밀한 첨단 작업실에서 한 치의 결함도 없는 제품을 만들어낸다고 자부해 왔지만, 정작 내 집 안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의 마음이 바스러지고 틈이 벌어지는 것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길로 나는 퇴근길 아파트 현관문을 열기 전에 스마트폰을 무조건 무음으로 돌려 가방 가장 깊숙한 바닥에 처박아 두는 철칙을 세웠습니다. 기계 소음과 납기 압박은 일터의 문 안에 온전히 두고 올 뿐, 차가운 금속의 고민을 결코 가족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가 거실 바닥에서 혼자 블록을 쌓고 있으면 멀리서 이름을 부르는 대신 조용히 다가가 그 곁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무얼 만들어보라며 섣부른 훈수를 두거나 억지로 대화를 유도하지 않고,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블록을 하나씩 집어 올려 조심스레 맞추는 그 작은 손끝을 그저 말없이 가만히 바라봐 주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이도 아빠의 시선이 낯설고 어색한지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며칠이 지나자 손에 쥐고 있던 알록달록한 블록 하나를 불쑥 내밀며 "아빠, 이거 무슨 모양 같아 보여?" 하고 툭 물꼬를 터왔습니다. 그 작고 평범한 질문 한마디가 가슴을 쿵 하고 울렸습니다. 완전히 굳게 닫히기 직전이었던 아이의 마음 문을 겨우 다시 두드릴 소중한 기회를 되찾은 것만 같아, 속으로 뜨거운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영화 《이매지너리》는 단순한 오컬트 공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아이의 외로움을 방치한 어른들의 무관심이 어떻게 괴물을 키워내는가를 서늘하게 고발하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일터의 무게와 생계라는 핑계 뒤에 숨어, 정작 가장 지켜내야 할 아이의 영혼을 외풍 속에 홀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내 손가락 끝의 시선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혹시 차가운 스마트폰 액정 속에 파묻혀 아이의 애타는 눈빛을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처럼 뒤늦은 후회 끝에 차가운 침묵의 벽을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고백을 남깁니다. 이제는 매일 저녁 차가운 기계 액정 대신, 아이의 맑고 여린 눈동자 속으로 내 모든 온기와 시선을 온전히 쏟아붓는 진짜 아빠로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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