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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활남 더 레드 후기 끝없는 잔업과 마흔 가장의 피로감

by 풍성함 2026. 9. 29.

부활남 더 레드 영화 공식 포스터

“진짜 더럽게 질기네.” 엔딩 크레딧이 까만 화면 위로 건조하게 올라갈 때, 거실 소파에 반쯤 쓰러져 있던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소리였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어 녹초가 된 몸으로 틀었던 영화 ‘부활남: 더 레드’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직후였습니다. 낮 내내 100분의 2밀리미터 공차 맞춘다고 CAM 모니터 화면과 머시닝센터 창틀을 번갈아 노려봤더니 눈알이 뻑뻑하더라고요. 툴패스 잔상이 망막에 그대로 박힌 채 기름 냄새 밴 점퍼만 간신히 벗어던지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온몸의 마디가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시간이었고, 머리를 비우려고 튼 화면 속 주인공은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도 징글징글하게 다시 일어섰습니다.

 

부활남 더 레드 후기, 크레딧에서 나온 한마디

크레딧 올라갈 때 "진짜 더럽게 질기네"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화면 속 석환은 칼을 맞고 건물에서 떨어져 숨이 끊어져도, 딱 사흘 뒤면 멀쩡한 살갗으로 눈을 뜨더군요. 주먹이 오가고 쇠파이프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한데, 제 눈에는 그 액션의 타격감보다 놈이 다시 숨을 헐떡이며 기어 일어나는 지긋지긋한 반복만 보였습니다. 저러다 사람 진짜 골병들 텐데 싶었지요. 죽은 놈은 72시간 누워있을 핑계라도 있습니다. 적어도 그 사흘 동안은 사채업자의 빚 독촉도 없고, 쪼아대는 사람도 없으며, 세상의 어떤 골치 아픈 일도 멈춥니다. 관 속이든 차가운 시체안치실이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완벽하게 전원을 꺼둘 수 있는 합법적인 휴업 시간인 셈입니다. 제 피로에는 유통기한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현장 바닥에서 칩을 쓸어 담던 이십 대 막내 시절이나, 도면 펴놓고 납기 일정 맞추느라 머리를 쥐어짜는 마흔 줄의 지금이나 사정은 똑같더군요. 기계는 사람 사정 봐가며 돌아가지 않고, 거래처 발주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집니다. 어제 깎아놓은 부품 치수가 안 맞아 스크랩이라도 나면, 제 몫의 피로는 고스란히 야간 잔업으로 얹어집니다. 툴이 부러지든 프로그램이 꼬이든 기어코 기계를 다시 돌려 납품 상자를 채워야 합니다. 영화 속 석환의 사흘이 현실의 제게는 딱 하룻밤 눈 붙이는 대여섯 시간뿐이지요. 그마저도 자는 내내 윙윙거리는 스핀들 소리와 빨간색 에러 알람 화면이 꿈자리를 어지럽힙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판타지 히어로를 보면서 부러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는 게 참 씁쓸하더라고요. 나한테도 단 며칠만 아무 생각 없이 완벽하게 로그아웃할 시간이 주어지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마흔 가장의 부활, 샤워실 20분

당장 다음 날 아침 7시 알람 끌 3분의 여유도 없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벽시계를 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가는데,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번쩍 떠야 한다는 압박감이 목덜미를 짓누르더군요. 씻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뻗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현장에서 묻혀온 미세한 쇠먼지와 절삭유 냄새를 자는 아이들 방에 묻힐 수는 없었습니다. 힘든 티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게 요새 제 일상입니다. 아내 앞에서는 피곤한 기색을 줄여야 하고, 방문을 열면 곤히 자고 있는 두 아이의 얼굴이 보입니다. 매달 통장에서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학원비와 대출 원리금 고지서를 생각하면, 피곤하다고 입 밖으로 내뱉는 투정은 사치이자 민폐가 됩니다. 공장에서도 공정 한번 틀어지면 책임자로서 표정 관리부터 해야 하니 말을 아끼게 되더라고요. 욕실은 하루 중 유일하게 가장도, 아빠도, 현장 책임자도 아닌 공간입니다. 좁은 문을 걸어 잠그고 거울 앞에 서면, 눈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어깨가 잔뜩 굳은 사내 하나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굳이 어깨를 펴고 있을 필요도 없고, 누구의 비위를 맞추거나 업무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없는 유일한 도피처인 셈이지요. 20분간 물을 못 끄고 그냥 서 있었습니다. 보일러가 헐떡거리며 온수가 미지근하게 식어갈 때까지, 정수리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타일 벽에 이마를 대고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안 났습니다. 물소리로 귓전을 틀어막고 있으면, 종일 귓가에 맴돌던 기계 소음이 겨우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발밑 타일로 흘러내리는 구정물을 보며 헛웃음이 픽 새어 나왔습니다. 손톱 밑에 낀 흑연 가루와 기름때,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땟물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꼴이, 꼭 오늘 하루 쥐어짜 내서 쓰고 남은 내 찌꺼기 같더군요. 그 20분이 하루 중 제일 서글프고 제일 숨통 트이던 시간이었습니다. 서글프다는 감정에 오래 빠져 있을 틈도 없이, 찬물이 섞여 나오면 수건으로 몸을 닦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문지방을 넘는 순간 다시 애비이자 남편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공장 바닥의 오기, 깎아봐라

나는 매일 밤 샤워실에서 죽었다가 아침에 기어코 살아납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붉은빛을 번쩍이며 상처가 마법처럼 아물지는 않습니다. 자고 일어나도 허리는 쑤시고 어깨는 묵직하며, 침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발바닥이 찌릿하게 저려오지요. 그래도 아침 알람 소리가 울리면 기계처럼 일어나 찬물 한 잔 들이켜고 현장으로 차를 몹니다. 깎아봐라, 나는 내일 또 멀쩡하게 출근해서 기계 돌릴 테니. 쇳덩어리가 엔드밀 날을 갉아먹듯 일상이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어도 쉽게 주저앉을 생각은 없습니다. 15년 동안 기름 묻혀가며 배운 건, 제아무리 독한 쇳물도 정해진 공정대로 침착하게 밀고 들어가면 결국 원하는 형상대로 깎여 나온다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세상이 빡빡하게 굴어도 내 자리 지키면서 하던 일 계속해 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지요.

 

더는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며 출근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거실에서 빈 캔을 치우고 작업복을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으며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피로에 절어 비틀거릴지언정, 내 손으로 깎아낸 시간들이 가족들의 내일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도면 치수처럼 명확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공장 셔터를 올리고, 도면을 띄우며 또 하루치 무게를 정면으로 받아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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