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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듄 심야 관람, 야근 끝에 사막 한가운데로 도망치다

by 풍성함 2026. 10. 20.

듄 영화 공식 포스터

상영관 불이 완전히 켜지고 청소하시는 분들이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양옆 통로로 들어올 때까지 꼼짝도 못 하고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랬냐면, 그날 밤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까지 제 몸과 머리가 거의 방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절삭유 기름 냄새 묻혀가며 공장 바닥에서 기계 다루는 일 배운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 바닥에서만 15년을 굴렀습니다. 스물 몇 살 막내 시절에는 손에 쥐는 버니어 캘리퍼스 눈금 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는데, 지금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도면 열고 CAM 툴패스 짜는 머리 싸움이 훨씬 더 진을 뺍니다. 직급이 올라가고 연차가 쌓여도 어깨에 얹힌 짐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입니다. 그날도 낮에는 가공기 돌아가는 굉음 속에서 현장 작업자들과 치수 문제로 입씨름을 하느라 목이 다 쉬었습니다. 저녁 먹고는 혼자 컴퓨터 앞에 틀어박혀서 다음 주 납품할 금형 가공 경로를 몇 번이나 검증하고 수정해야 했습니다. 진짜 몸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머릿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던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듄 심야 관람, 기름 냄새 밴 작업복 벗고 극장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공장 메인 차단기를 내리고 작업장 문을 잠갔습니다. 쇠 깎는 냄새와 기름때가 깊게 밴 작업복 점퍼를 캐비닛에 대충 쑤셔 넣고 평상복 점퍼로 갈아입었습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허공에 형광 녹색 캐드 선들이 잔상으로 계속 어른거렸습니다. 눈을 깜빡여도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봐야 뻔했습니다. 식구들 다 잠든 거실에서 조용히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고, 캄캄한 방에서 스마트폰 불빛만 멍하니 들여다보다 잠들 게 분명했습니다. 그런 밤은 자고 일어나도 찌뿌둥함이 그대로 남습니다. 마침 스마트폰 예매 앱을 켜보니 심야 10시 40분 상영 회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영 시간이 두 시간 반이 넘으니 영화가 끝나면 새벽 1시가 훌쩍 넘어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결제 버튼을 눌렀습니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니 금요일 심야인데도 관객이 대여섯 명 남짓 띄엄띄엄 앉아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북적거리는 시간대도 아니고, 어차피 누구랑 눈 마주치거나 말을 섞을 기운도 없던 터라 그 휑한 자리가 차라리 편했습니다. 맨 뒤편 구석 자리에 가방을 툭 던져두고 좌석에 등을 깊숙이 파묻었습니다. 하루 종일 귓전을 때리던 둔탁한 칩 컨베이어 소리와 엔드밀 쇠 깎이는 비명 대신, 어두운 암전 속에서 묵직한 베이스 저음이 극장 바닥을 타고 올라와 가슴 뼈를 툭 쳤습니다. 스마트폰 진동으로 계속 울려대던 거래처 납기 독촉 카톡이며 잔업 피로로 뒤엉킨 머릿속을 싹 비워내고 싶었습니다. 그저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듯 들어온 자리였습니다.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가 사막 앞에 먼지로

스크린 가득 모래폭풍이 몰아치고 끝없는 아라키스의 사막이 펼쳐지는 순간, 숨이 탁 풀리는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매일 공장에서 다투는 치수는 100분의 1밀리미터 단위입니다. 0.01밀리미터,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훨씬 얇은 그 작은 공차 하나 때문에 납품처에서 불량 반품이 날아오고 금형 블록을 통째로 폐기해야 하는 지옥을 맛봅니다. 15년 동안 그 좁쌀보다 작은 숫자에 매달려 온종일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밥벌이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펼쳐진 거대한 모래벌판은 그런 자잘한 셈법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득하게 뻗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자연의 덩어리가 눈앞을 가득 채우자, 하루 종일 저를 옥죄던 0.01밀리미터짜리 옹졸한 긴장감이 한순간에 흩날리는 모래 먼지처럼 쓸려 내려갔습니다. 집에 두고 온 초등학생 아이들 다음 달 학원비 걱정이나,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대출 이자 계산서도 그 거대한 사막 바위 그늘 아래에서는 잠시 사라졌습니다. 모래 능선 위를 날아다니는 잠자리 모양의 날개 달린 비행선 오니솝터가 날개를 미세하게 떨며 활공할 때는, 나도 모르게 기계의 구조와 무게중심을 뜯어보게 되더군요. 그 묵직한 기계음이 기분 나쁜 쇳소리가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기계의 진동처럼 귓바퀴를 파고들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거대한 모래벌레가 땅을 가르고 솟구쳐 오르는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낼 때, 멍했던 정신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번쩍 뜨였습니다. 소리 하나, 화면의 흙먼지 입자 하나가 현실의 찌든 때를 거칠게 긁어내는 기분이었습니다.

 

듄 오해, 스타워즈 기대하면 낭패

만약 광선검을 휘두르고 우주선이 쉴 새 없이 레이저를 쏘아대는 화려한 스타워즈 식 활극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왔다면 큰 낭패를 보았을 겁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로 관객의 눈을 쉴 새 없이 홀려주는 오락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문과 가문이 칼을 맞대고 숨죽이며 수 싸움을 벌이는 아주 차갑고 무거운 중세 정치 암투극에 가깝습니다. 대사도 건조하고 호흡도 뚝뚝 끊겨서, 성격 급한 사람이라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갈 법도 합니다. 실제로 사전 정보 없이 들어왔다가 돈 내고 두 시간 반짜리 긴 예고편만 보고 나왔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관객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포스터 구석에 아주 작게 박혀 있던 '파트 1'이라는 글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무방비로 들어갔습니다. 보통 이런 식의 미완성 결말을 마주하면 피로감이 먼저 밀려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복잡한 원작 소설의 설정이나 행성 간의 세력 관계를 머리로 일일이 따져가며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마른 모래 먼지의 질감과 가문을 짊어진 어린 주인공 폴이 느껴야 하는 지독한 중압감을 피부로 직접 들이켰습니다. 기술자가 도면의 모든 치수를 외우지 않아도 기계의 구동음과 떨림만으로 상태를 직감하듯, 영화가 만들어낸 묵직한 공기 자체에 완전히 설득당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황제의 친위대 사다우카 군대의 제례 의식 장면이나 둔탁한 북소리는 가슴 한구석을 쿵쿵 울렸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떡칠한 조잡한 SF가 아니라, 실제로 어디선가 쇠를 두드리고 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단단한 질감이 화면 전체를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밀도의 영화라면 두 시간 반이 아니라 세 시간이라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더군요.

 

듄 엔딩, 청소부 들어올 때까지 굳어 있었다

이야기가 막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가 싶더니 영화는 칼로 자르듯 다음 장을 기약하며 끝을 맺었습니다. 보통 같았으면 맥이 탁 풀려 헛웃음이 나왔을 텐데, 화면이 까맣게 꺼지고 검은 바탕에 흰색 제작진 이름이 올라가는 크레딧 7~8분 내내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가공 기계 스핀들이 최고 회전수로 돌다가 비상 정지 버튼을 눌렀을 때, 모터 전원은 끊겼지만 기계 몸체 전체에 웅웅거리는 진동이 한동안 남아 있는 것과 똑같은 상태였습니다. 머릿속이 멍한 채로 그 여운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양옆 통로로 들어온 청소부 분들이 바닥의 팝콘 상자를 비닐봉지에 주워 담으며 제 앞을 지나갈 때에야 비로소 제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온몸이 좌석 깊숙이 박힌 채 단단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상영관 밖으로 걸어 나와 비상구 철문을 밀었습니다. 극장 문 열고 차가운 새벽 공기 들이마실 때 숨통이 트였습니다. 모니터 잔상으로 뻐근하던 눈과 머릿속이 차가운 밤공기에 시원하게 씻겨 내려갔고, 오늘 밤 피곤을 핑계로 바로 집에 가지 않은 것이 올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20분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면 또 일어나서 아이들 아침 챙겨 먹이고, 주말 특근 일정 때문에 다시 작업장으로 기름밥 먹으러 나가야 하는 팍팍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을 가슴통 가득 채워 넣었으니, 다음 주 월요일의 지독한 납기 독촉도 묵묵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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