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은 후련해야 맞는데 씁쓸한 쇠 맛이 남았습니다. 영화 조작된 도시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잔업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낮에 머시닝센터 앞에서 서스(SUS) 소재 물려놓고 엔드밀 날 나가는 소리에 종일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눈알이 뻑뻑하고 목덜미가 묵직했습니다. 조용한 거실 소파에 주저앉아 캔맥주 하나 따놓고 화면을 켰습니다. 화면 속에서 주인공 권유가 영문도 모른 채 살인범으로 몰려 교도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습니다. 모니터 캐드 화면에서 치수 0.01밀리미터 틀어진 선 하나 잡느라 종일 씨름했던 피로가 단번에 가시지 않았습니다. 화려하게 터지는 총격전과 카체이싱 액션을 보는데도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주인공이 악당들을 때려눕히고 판을 뒤집어엎는데 이상하게 속이 뚫리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쇠 깎을 때 절삭유 타는 냄새와 함께 올라오던 그 특유의 비릿하고 차가운 쇠 냄새가 입안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조작된 도시, 씁쓸한 쇠 맛이 남은 이유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내가 저 자리에 걸려들면 결백을 증명할 재간이 과연 있을까 싶더군요. 주인공 권유는 PC방에서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찾아달라는 전화를 받고 모텔로 향합니다. 그저 몇 푼 벌어보겠다고 심부름 한번 한 것뿐인데, 다음 날 아침 살인범이자 강간범으로 낙인찍혀 체포됩니다. 그 과정이 너무 매끄러워서 보는 내내 손바닥에 땀이 뱄습니다. 누군가 치밀하게 짜놓은 가공 공정 속으로 부품이 밀려 들어가듯, 사람 인생 하나가 단 몇 분 만에 박살이 났습니다. 피 튀기는 총격전보다 차가운 무력감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거짓으로 짜인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가 제일 무서웠습니다. 영화 속 악당들은 사람 하나 담그는 일을 공장의 자동화 라인처럼 처리하더군요. 가짜 혈흔을 묻히고, 모발을 심고, 통화 기록을 조작합니다. 오차 없이 돌아가는 서보모터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죄를 덮어씌웁니다.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그 시스템은 잔인하도록 정확했습니다. 사람의 억울함이나 눈물 따위는 기계 부품 사이로 튄 칩가루 취급조차 못 받았습니다. 빽도 돈도 없는 장삼이사가 빨려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립니다. 주인공은 백수였고 가진 것이라곤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는 몸뚱이 하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거대한 자본과 권력이 맞물린 톱니바퀴에 물렸을 때, 법과 정의는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를 변호하러 온 국선변호사조차 그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판의 설계자였습니다. 답이 안 나오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열두 시간 기름 냄새 맡아가며 쇳덩이 깎아 통장 잔고 메우는 평범한 노동자입니다. 만약 저런 거대한 악의가 나를 조준하고 들어온다면, 나는 내 가족과 내 결백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당장 변호사 살 돈은 고사하고, 매달 빠져나가는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와 두 아이 학원비 걱정에 손발이 먼저 묶일 게 뻔했습니다. 그 끔찍한 현실감이 액션의 쾌감을 다 덮어버렸습니다.
기름때 묻은 손, 아이 뺨에 닿을락 말락
영화를 다 보고 안방 문을 살며시 여는데 문득 제 손부터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손톱 밑에 박힌 시커먼 기름때랑 용접 불똥에 데인 흉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가 세상모르고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더군요. 머리맡으로 다가가 이불을 여며주려다 손을 멈칫거렸습니다. 15년 동안 공작기계를 만지며 박힌 검은 기름때는 솔로 박박 문질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거친 손끝으로 아이들의 보드라운 뺨을 함부로 만질 수 없었습니다. 현관문 열면 둘째가 달려와 다리에 매달립니다. 저녁 늦게 퇴근해도 아빠 작업복에서 나는 쇠 냄새를 맡고 뛰어나와 안기던 녀석입니다. 영화 속 권유의 어머니는 아들의 무죄를 밝히겠다고 혼자 법원 앞을 뛰어다니다 결국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장면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한 집안의 부모나 가장이 힘없이 쓰러졌을 때, 남겨진 가족들이 겪어야 할 지옥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녀석들한테는 세상의 마지막 방파제였습니다. 내가 현장에서 기계에 손가락 하나 다치거나 억울한 일에 휘말려 쓰러지면, 저 여린 것들은 당장 거친 세상 파도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통장에 찍히는 얼마 안 되는 월급이 내 피와 땀의 대가이자, 저 아이들이 웃으며 잠들 수 있는 유일한 성벽이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밥을 먹여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합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번 돈으로 지은 밥을 먹이고, 남한테 손가락질받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내고 싶습니다. 세상이 영화처럼 조작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적어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가공품만큼은 도면 그대로 0.01밀리미터 오차 없이 반듯해야 하듯 말입니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친 손등을 바지춤에 조용히 문질러 닦았습니다.
강 반장님, 볼펜 한 자루에 구겨진 자부심
영화에서 권유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10여 년 전 공장에서 겪었던 강 반장님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현장에서는 도면이 틀려도 말단 오퍼레이터에게 독박을 씌우는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항변해봐야 공장 바닥에 메아리조차 안 남더군요. 위에서 내려온 설계 수치가 애초에 엉망이었는데, 납기가 닥치자 사무실 관리자들은 책임을 현장으로 돌렸습니다. 수천만 원짜리 소재를 다 깎아먹었다며 말단에서 기계를 돌리던 사람들에게 온갖 추궁이 쏟아졌습니다. 아무리 도면이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서류 쥔 사람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강 반장님은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진 베테랑 기술자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쇠를 깎아 손끝 감각만으로도 100분의 1밀리미터를 알아채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사에서 내려온 감사팀의 볼펜 한 자루, 그리고 그들이 조작해 들이민 시말서 양식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사람은 서류 몇 장으로 손쉽게 거짓을 진짜로 둔갑시켰습니다. 평생 기름밥 먹으며 쌓아온 기술자의 자부심이 그 얄팍한 종이 쪼가리 앞에서 산산이 구겨졌습니다. 결국 강 반장님은 낡은 공구통을 묵묵히 챙겨 공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셔터 내려간 공장 구석에서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 두 봉지를 말없이 저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굽은 등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참았던 울음을 삼키시던 그 뒷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의 억울한 눈빛과 겹쳐 보였습니다. 세상은 힘없는 기술자의 진실보다,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의 매끄러운 핑계를 더 쉽게 믿어줍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정직하게 땀을 흘려도, 힘이 없으면 언제든 남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버려질 수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말입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영화의 결말이 마냥 통쾌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는 권유처럼 천재 해커 친구들이 도와주지도 않고, 목숨을 걸고 판을 뒤집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억울함은 그저 가슴속에 응어리진 쇳가루처럼 가라앉을 뿐입니다.
내가 밖에서 쇳가루를 뒤집어쓰든 남한테 고개를 숙이든 단단한 벽이 되어 바람을 막아줘야겠습니다. 힘없는 가장이라도 내 새끼들 앞에서는 무너지지 않는 버팀목이어야 하니까요. 맥주캔을 비우고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몇 시간 뒤면 또다시 아침 알람이 울릴 것입니다. 잠든 가족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눈에 담고 방을 나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뻣뻣하게 풀 먹인 작업복 지퍼를 목 끝까지 단단히 올려 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