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 깰 생각 없었는데 찰리 아버지 처진 어깨 보고 확 깼습니다. 토요일 오후 내내 소파에 누워 멍하니 텔레비전을 틀어두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모니터 붙잡고 CAD 프로그램 선 따느라 눈알이 뻑뻑했던 참이었습니다. 현장 소음과 절삭유 냄새를 겨우 털어내고 누운 자리였는데, 브라운관 속 그 메마른 등판 하나가 제 눈을 그대로 붙잡아 세웠습니다. 옆에서는 아이 둘이 과자 봉지 바스락거리며 화면에 나오는 형형색색 사탕이며 초콜릿 폭포를 보고 좋다고 깔깔거렸습니다. 환상적인 동화 속 세상이라는데 제 시선은 엉뚱한 곳에 꽂혀 있었습니다. 눈발 날리는 골목길을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찰리 아버지의 굽은 등, 그 쓸쓸한 걸음걸이에 저절로 상체를 일으켜 앉게 되더군요.
잠 깰 생각 없던 토요일, 찰리 아버지 등판에 눈이 붙었다
아이들은 초콜릿 강물이 흐르고 별별 신기한 과자가 쏟아져 나오는 공장 안 풍경에 넋이 빠져 있었습니다. 화면 속은 온통 화려하고 달콤한 색채로 번쩍거리는데, 제 눈에는 그 뒤편에 서 있는 초라한 가장의 그림자만 또렷하게 박혔습니다. 하루 종일 단순 반복 작업으로 굳은 손을 주무르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사내의 처진 어깨가 이상할 정도로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애들은 신나서 소파 위를 방방 뛰는데 저는 찰리 아버지의 굽은 등판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어깨 위에 얹힌 무게가 화면을 뚫고 전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저녁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가방을 내려놓으며 저런 어깨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퇴근길 차 안에서 신호 대기 받을 때마다 핸들 위에 축 늘어뜨려 놓던 제 팔뚝이 겹쳐 보였습니다. 15년 동안 공장 밥을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초창기에는 기름 범벅이 되어 바닥을 굴렀고, 지금은 소수점 세 자리 공차 맞추느라 머리를 싸매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내 손끝 기술이 멈춰 서면 우리 새끼들은 어쩌나 싶더군요. 정밀 가공이니 프로그램 설계니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 기계가 돌지 않고 내 손이 멈추면 당장 밥줄이 끊어지는 건 저 사람이나 저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화면 속 화려한 원더랜드 뒤편으로 찰리네 낡은 판잣집이 비칠 때마다 목구멍이 텁텁해졌습니다. 양배추 끓인 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자식 앞에서는 억지로 웃어 보이던 그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기술 하나 믿고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알량한 기술 밑천이 바닥나면 내 가족의 풍경도 저렇게 앙상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불쑥 스쳤습니다.
스물넷 빗자루질, 반장님의 '밥 안 굶는다'
스물넷에 처음 가공 현장에 발을 들였습니다. 첫 2년은 도면은커녕 칩 치우고 기계 밑바닥 기름때 닦아내며 빗자루질부터 배웠습니다. 쇳가루가 목구멍으로 넘어와 칼칼해도 어깨너머로 지그 짜는 법, 바이트 물리는 법, 도면 치수 읽고 쇠 깎는 법까지 꼬박 8년을 이 악물고 매달렸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 굳은살이 박이고 손톱 밑에 검은 때가 지워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현장 반장님이 허름한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채워주며 툭 던지듯 말했습니다. 야, 이 바닥에서 네 손끝 기술 하나 제대로 쥐고 있으면 평생 밥은 안 굶는다, 그렇게 도장을 딱 찍어주셨지요. 그 시절에는 그 투박한 한마디가 세상 어떤 자격증보다 든든한 훈장 같았습니다. 쇠를 깎아 형상을 만들어내는 내 손이 대단해 보였고, 기술자라는 자부심 하나로 밤샘 철야도 버텨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찰리 아버지가 치약 뚜껑 끼우던 자리에서 기계에 밀려 맥없이 쫓겨나는 장면을 보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거대한 로봇 팔 하나가 들어서더니, 사람이 손으로 돌리던 공정을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낚아채 가더군요. 그 앞에서 겉옷을 챙겨 들고 뒷걸음질 치던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 제가 짜고 있는 CAD/CAM 프로그램도 결국 사람 손을 줄이고 공정을 더 빠르고 무자비하게 돌리기 위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정밀한 소프트웨어가 나오고 고도화된 자동화 장비가 들어오면 내 자리 역시 저렇게 덜어내 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늘 등 뒤에 붙어 있습니다. 훈장 같던 반장님의 그 말이 마흔을 넘기고 나니, 어느새 발목을 옥죄는 무겁고 시린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굳은살 박인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영점 몇 밀리미터의 떨림을 잡으려 마이크로미터를 쥐고 씨름하던 손가락 마디가 굵어질 대로 굵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눈도 침침해지는데, 환갑 넘어서까지 이 빡빡한 공차 싸움 속에서 기계와 속도 경쟁을 하며 버텨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통장 잔고와 앞으로 쏟아져 들어올 아이들 학원비, 끝 모르게 남은 아파트 대출금을 생각하니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과자 묻은 손이 내 손마디를 쥐었다
생각에 잠겨 굳어 있는데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던 둘째 녀석이 불쑥 손을 뻗었습니다. 과자 부스러기가 허옇게 묻은 작은 손으로 쇳가루 찌든 제 투박한 손마디를 꼭 쥐어 오더군요. 아빠 손은 왜 이렇게 까맣고 딱딱하냐며 손등을 문지르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체온이 거친 굳은살 틈으로 스며드는 순간, 턱 밑까지 차올랐던 삭막한 한숨이 조용히 가라앉았습니다. 족쇄 맞습니다. 매달 나가는 카드값에 대출 이자, 애들 학원비까지. 내 손을 기계 앞에 꽁꽁 묶어두는 족쇄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옆에서 아무 걱정 없이 과자를 오물거리며 웃는 이 두 녀석의 얼굴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이깟 족쇄쯤이야 평생 차고 있어도 전혀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차올랐습니다. 기름때가 뼛속까지 박여도 좋으니 이 아이들이 자라는 울타리만 부서지지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들킬까 봐 고개를 돌려 화면 속 움파룸파들이 요란하게 춤추는 장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경쾌하고 정신없는 노랫소리가 제 복잡한 속을 가려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옆에 둔 휴대폰을 슬쩍 켜서 이번 달 지출 내역과 통장 잔고를 확인하다가, 이내 화면을 바닥으로 뒤집어 엎어버리고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가슴을 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밤이 깊어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 거실에 홀로 앉아 캔맥주 하나를 비웠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면 다시 콤프레셔 돌아가는 굉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공 사이클 타임을 줄여내라 닦달하는 납기 압박과 씨름해야 하고, 기계 알람이라도 뜨면 머리 싸매고 바닥을 기어 다녀야 할 겁니다. 피할 수 없는 노릇이고 도망칠 곳도 없습니다.
족쇄가 다시 아버지의 갑옷으로 바뀌던 새벽이었습니다. 피곤에 절어 무거웠던 어깨를 털어내고 작업복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 채울 채비를 마쳤습니다. 기름 냄새 진동하는 현장으로 또다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내일도 내 손끝으로 깎아낸 정밀한 쇳덩이들이 우리 집 식탁 위에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올라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