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심이 눈을 가려서 사자 굴로 걸어 들어갔구나 싶어 답답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불빛 하나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의자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그 팽팽한 공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 보통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응원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주인공인 기자의 그 불안하고 쪼들리는 눈빛을 보는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게 되었다. 저렇게까지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위험한 판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동시에 밀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그 상황에 놓였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 내 입지를 증명하고 싶다는 집착이 사람의 눈을 얼마나 까맣게 가려버릴 수 있는지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나는 기자의 어리석음에 한숨을 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기자가 쥐어짜 내는 필사적인 욕심에 이상할 정도로 몰입하고 있었다. 살인범과 마주 앉은 기자의 떨리는 손가락, 그리고 그 손가락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살인범의 묘한 눈빛이 부딪히는 그 순간, 나는 이미 이 영화가 만드는 늪 속에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다.
살인범 인터뷰 스릴러, 말장난 영화 아니야
솔직히 처음에는 살인범과 기자가 단둘이 앉아서 인터뷰만 주구장창 하는 영화라고 하길래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다. 요새 화려한 액션이나 엄청난 CG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 그저 단칸방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대화만 나누는 스릴러라니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알맹이 없이 말장난만 하다 끝나는 지루한 영화 아닌가 하고 오해하기 딱 좋다. 나 역시 영화를 틀기 전까지만 해도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입만 털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어쩌나, 서로 잘난 척하면서 말장난만 치다가 김이 빠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두 인물이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내 우려는 눈 녹듯 사라졌다. 이 영화는 절대로 한가하게 말장난이나 치는 영화가 아니었다. 대사 하나하나가 상대를 베는 칼날 같아서 숨이 턱턱 막힌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뼈가 있고 가시가 돋혀 있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을 들고 서로의 목덜미를 겨눈 채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펜싱 경기를 보는 듯한 긴장감이 화면 전체를 감쌌다. 기자는 살인범의 입에서 원하는 대답을 받아내기 위해 뾰족한 질문을 던지고, 살인범은 그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슬쩍 비틀어 받아치며 오히려 기자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 대화의 핑퐁을 바라보면서 손에 땀을 쥐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폭파 장면이나 피가 튀기는 잔인한 액션이 전혀 없는데도, 오직 목소리의 톤과 눈빛, 그리고 날이 서 있는 대사만으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팝콘을 집어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화면에 바짝 붙어서 인물들의 입끝만 바라보게 되었다. 말을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고, 누가 주도권을 잡았는지 시시각각 뒤바뀌는 그 치열한 심리전은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말 한마디를 잘못 내뱉으면 그대로 심장이 뚫려버릴 것 같은 서스펜스가 영화 내내 지속되었다.
기자의 벼랑 끝, 차 안 대화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주인공 기자의 처절한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잘릴 위기에 처한 기자, 대형 특종이 미치도록 간절했다. 회사에서는 이미 그를 쓸모없는 존재 취급하고 있었고, 후배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태였다. 여기서 밀려나면 그대로 끝장이라는 나락의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세상이 자기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 필사적인 간절함이 화면 밖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나 역시 살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흔들리거나, 무언가 이루어내지 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있기에 그 기자의 처지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이 기자의 절박함을 설명하기 위해 길고 지루한 설명이나 복잡한 과거 회상 장면을 늘어놓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살인범을 만나기 직전 차 안 짧은 대화로 기자의 벼랑 끝이 툭 던져진다. 차 안이라는 답답하고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읊조리는 그 짧은 몇 마디의 대화 속에, 이 인물이 지금 얼마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 긴장된 표정과 가쁜 숨소리, 그리고 툭 던져지는 대사 한 줄만으로도 그가 왜 이토록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단번에 납득이 되었다. 길게 늘어놓지 않고 툭 던져진 그 한마디가 오히려 내 가슴에 더 비수처럼 꽂혔다. '아, 저 사람은 지금 물러설 곳이 없구나. 저 차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사자 굴이라는 걸 알면서도, 살기 위해 들어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차 안에서의 짧은 정적과 대화는 기자의 절박함을 극도로 끌어올려 주었고, 이후에 펼쳐질 살인범과의 인터뷰 장면에 대한 긴장감을 배로 높여주는 완벽한 장치가 되었다.
욕심이 눈을 가려 사자 굴로
결국 그 간절함과 집착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욕심이 눈을 가려서 사자 굴로 걸어 들어갔구나 싶어 답답했다. 기자는 자신이 이 판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살인범과의 인터뷰를 잘 마무리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대형 기사를 쓰고,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의 인생을 한 번에 역전시키겠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오산이었다. 그가 찾아간 상대는 단순한 취재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가지고 놀 줄 아는 괴물이었다. 기자가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살인범은 그 욕심의 고리를 잡고 기자를 마음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특히 살인범이 기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뒤흔드는 장면에서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죽인 게 맞을까요, 아니면 기자가 쓰고 싶어 하는 소설일까요?" 하면서 주도권을 쥐고 흔들기 시작할 때가 제일 헷갈렸다. 살인범은 진실을 순순히 내어주지 않았다. 확답을 주는 듯하다가도 이내 그것을 스스로 뒤엎고, 기자가 원하는 자극적인 정보의 떡밥을 던졌다가 다시 거둬들였다. 기자는 자신이 원하는 프레임에 맞춰 기사를 쓰고 싶어 했지만, 살인범은 이미 그 기자의 속내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당신이 쓰고 싶은 그 소설을 위해 내 입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은근한 조롱과 압박이 이어질 때, 기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저 말이 진짜일까? 아니면 기자를 낚기 위한 거짓말일까?'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살인범의 말 한마디에 기자의 주관이 갈팡질팡 흔들리는 그 순간, 주도권은 이미 완전히 살인범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욕심에 ตา이 멀어 스스로 사자 굴로 들어간 기자가 결국 괴물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그 묘한 심리전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살인범과 기자가 나눈 그 날카로운 대화들은 단순히 영화 속 대사로 끝나지 않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두 인물이 서로를 향해 내던지던 언어의 날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처럼 길게 남았다. 대사 하나하나가 상대를 베는 칼날 같아서 숨이 턱턱 막힌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내 입지를 증명해야만 하는 벼랑 끝에 서 있다면, 과연 저런 위험천만한 사자 굴을 외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욕망이라는 건 결국 스스로를 지켜주는 무기가 아니라 나를 집어삼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