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용감한 시민, 자존심을 헐값에 넘기며 버텨온 가장의 시간

by 풍성함 2026. 9. 23.

용감한 시민 영화 공식 포스터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데도 결국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뱉어내는 그 얼굴을 보았습니다. 화면 속 기간제 교사의 표정이었는지, 아니면 언젠가 유리창에 비쳤던 제 얼굴이었는지 순간 분간이 잘 안 가더군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멍하니 리모컨을 돌리다가 멈춰 선 채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종일 모니터 앞에서 0.01밀리미터 공차를 맞추느라 눈은 뻑뻑했고, 도면 치수와 씨름하며 머릿속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매달 빠져나가는 아파트 대출금 원리금 통지서와 둘째 아이 학원비 안내 문자가 휴대폰 화면에 연달아 떠 있던 저녁이었습니다. 통장 잔고를 보고 나면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피로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유독 낯설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용감한 시민, 액션보다 오래 남은 그 비굴한 웃음

영화를 채우는 건 사실 화려한 복싱 기술과 통쾌한 발차기 액션입니다. 전직 복싱 유망주였던 주인공이 정교사라는 밥줄을 잡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다가, 결국 가면을 쓰고 악질 학생을 응징한다는 뼈대는 전형적인 카타르시스를 노립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음 속에 살다 보니 가끔은 때려 부수는 영화를 보며 속을 비워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 머릿속을 맴돈 건 시원한 액션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머니에 든 계약서 한 장 때문에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억지웃음을 짓던 그 표정이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줄을 잡으려고 교장 앞에서도, 교감 앞에서도 입꼬리만 바짝 올려 웃던 그 비굴한 얼굴이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진 기술이 있고 남들보다 주먹이 매워도, 결국 삶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면 누구나 그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지켜야 할 자리가 있고, 그 자리를 잃었을 때 닥쳐올 현실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손을 뒤로 감추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그건 굴복이라기보다는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공과금과 쌀값을 위해 치르는 대가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타협을 합니다. 젊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기성세대의 굽은 허리가, 내 이름으로 된 대출 통장을 쥐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먹고살기 위해 자존심을 통째로 헐값에 넘겨버렸던 날들의 씁쓸함이, 스크린 너머 그 비굴한 미소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시원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보다, 그 주먹을 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던 그 정적의 순간이 훨씬 더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7년 전 늦가을, 가공품 팽개치던 그날

이 영화를 보며 자꾸만 7년 전 늦가을의 공장 마당이 떠올랐습니다. 갓 태어난 첫째 아이는 밤마다 숨이 넘어가게 울어댔고, 전세 자금 대출 이자에 기저귓값, 분윳값까지 줄줄이 밀려들어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현장에서 기계 세팅을 혼자 도맡아 처리하며 기술자 소리를 듣기 시작했는데, 삶은 기술의 숙련도와 상관없이 매일 벼랑 끝으로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그날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머시닝센터 가공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원자재 상태가 좋지 않아 공구 마모를 일일이 계산해가며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치수를 맞춰놓은 난가공 부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 들이닥친 원청 거래처 간부는 본인 쪽 조립 미스를 덮으려고 다짜고짜 제게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그러더니 갓 가공해 기름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알루미늄 블록을 공장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쳤습니다. 쇳덩이가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고, 공장 안의 모든 시선이 저에게 쏠렸습니다. 억울함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작업복 주머니 안에서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마이크로미터를 들이대며 도면 치수 하나 틀린 것 없다고, 당신들이 공정 순서를 잘못 잡아서 조립이 안 되는 거라고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습니다. 스물대여섯, 혈기만 넘치던 막내 시절이었다면 당장 연장을 집어던지고 공장 문을 박차고 나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제 결백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달 결제해야 할 신용카드 명세서와 전세 대출금 고지서, 그리고 퉁퉁 부은 손으로 아이 젖병을 물리던 아내의 얼굴이었습니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스르르 빠지더니, 어느새 제 허리는 바닥을 향해 90도로 꺾여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저희가 다시 한번 손봐서 오늘 안으로 올려보내겠습니다." 제 입에서 나온 소리였지만 참 낯설고 비참했습니다. 내 자존심을 통째로 깎아서 헐값의 밥값으로 바꿔 먹었다는 굴욕감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간부가 차를 타고 떠난 뒤, 찬바람이 들이치는 공장 뒤편 실외기 옆에 쪼그려 앉아 피우던 담배와 편의점 캔커피 맛이 유독 썼습니다. 땀에 젖었던 얇은 작업복 등판으로 칼바람이 파고들었고, 손은 차갑게 식어갔으며 입안에서는 비릿한 쇠 맛이 맴돌았습니다. 내 자존심을 헐값에 팔아치워야만 우리 집 밥그릇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늦가을 바람 속에서 아주 시리게 배웠습니다.

 

영화 끝나고 초2 아이 얼굴을 들여다본 이유

영화 속 주인공은 결국 고양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링 밖의 악당들을 응징합니다. 법과 규칙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현실의 모순을 주먹 하나로 깨부수는 장면은 분명 대리만족을 줍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우리는 다시 마스크를 벗은 소시민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현실의 가장들에게는 익명 뒤에 숨어 날릴 수 있는 주먹 같은 건 애초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TV를 끈 뒤, 조용히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큰아이와 유치원생 둘째 녀석이 보였습니다. 뻐근한 안도감과 씁쓸함이 뒤섞여 목구멍 안쪽이 뜨겁게 굳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7년 전 손바닥만 하던 그 갓난아기가 어느새 훌쩍 자라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닙니다. 학원비 영수증을 챙기고, 마트 영수증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 이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게 됩니다. 그때 삼켰던 그 수많은 모래알 같던 굴욕과 피로가 헛된 건 아니었구나 싶어 묘하게 가슴이 뻐근해집니다.

 

비록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영화 속 영웅처럼 살지는 못해도, 매일 도면 앞에서 씨름하며 내 자리를 지켜내는 것 자체가 제 방식의 싸움일 겁니다. 내일 아침에도 알람 소리에 맞춰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0.01밀리미터 공차와 씨름하러 공장 작업대로 향하겠지요. 그때 비굴하게 허리 숙였던 날들도 결국 우리 집 애들 밥그릇 지켜낸 값어치는 충분히 한 셈이라고, 그렇게 믿고 또 하루를 버텨보는 겁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