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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영화 첫 번째 키스, 서랍 속 파란 볼펜의 기억

by 풍성함 2026. 8. 22.

 

첫 번째 키스 영화 공식 포스터

 버스 도착 안내판 불 들어올 때마다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그게 열일곱 살, 버스 정류장에서의 일이었다. 영화 <첫 번째 키스>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검은 화면 위로 조용히 엔딩 크레딧이 흐르는데,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형용할 수 없는 아릿한 먹먹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나간 시간은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묵직한 진실과 함께,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내 청춘의 가장 순수하고 서툴렀던 첫사랑의 기억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눈빛과 겹쳐지며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1. 첫사랑 영화 후기,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이어폰 끼고

영화 <첫 번째 키스>의 이야기는 초등학생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참 맑고 직관적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서로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심장을 어쩌지 못하던 두 소년 소녀가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풋풋하게 첫사랑을 시작하지만, 자라나면서 마주하는 현실의 벽과 수많은 오해, 그리고 타이밍의 엇갈림 속에서 아프게 헤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세월이 한참 흘러 모든 진실과 감정의 실체를 알게 된 뒤, 결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담담한 미소로 마지막 눈빛을 건네는 그 과정이 영화의 중심 축을 이룬다. 나는 이 영화를 모두가 깊이 잠든 늦은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보았다. 이런 짙은 감정의 여운을 담은 영화는 옆에 누군가 있으면 괜히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 관리를 하느라 영화에 오롯이 몰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 하나에만 의지한 채 숨을 죽이고 바라보니, 화면 속 주인공들이 내쉬는 가느다란 숨소리와 떨리는 손끝,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 하나하나가 내 귓가와 심장으로 훨씬 더 깊숙하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 내는 신파가 아니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아픔을 삼키는 그 정적의 순간들이 혼자만의 공간에 있던 나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2. 버스 정류장, 발끝만 보던 그 침묵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차마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십수 년 전 해 질 무렵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왔다. 붉은 노을이 길게 내려앉던 그 정류장에서, 그 아이와 나란히 서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그저 땅바닥의 흙먼지와 내 신발 발끝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어색하고 긴장된 침묵. 혹시라도 스치는 손끝 하나에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멀리서 버스가 다가오고 전광판의 버스 도착 안내판에 빨간 불이 깜빡이며 들어올 때마다, 제발 이 버스가 오지 않기를, 시간이 이대로 딱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몇 번이고 간절하게 기도했었다. 결국 그 마음을 제대로 한번 꺼내놓지도 못한 채, 우리는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하고 각자의 바쁜 생활에 치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끝이 났다. 용기 내서 고백이라도 시원하게 한번 해볼 걸 그랬나 하는 옅은 아쉬움도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그 풋풋한 서툶 자체가 내 마음에 가장 아름다운 무늬로 남아있다는 걸 영화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3. 파란 볼펜 'ㅇ' 하나와 다이어리

영화가 끝나고 불 꺼진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도저히 그 먹먹함을 이기지 못해 오래된 책상 아래 서랍 깊숙한 곳을 열었다. 그리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학창 시절의 낡은 다이어리와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들춰보았다.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할까 봐 이름 석 자는 죽어도 쓰지 못하고, 다이어리 맨 구석 좁은 칸에 파란색 볼펜으로 아주 작게 삐뚤빼뚤 꾹꾹 눌러 적어놓은 자음 ‘ㅇ’ 하나. 그 작은 동그라미 옆에는 "오늘 정류장에서 마주침", "눈 마주쳤는데 인사 못 함" 같은 짤막하고 서툰 낙서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우주가 무너질 만큼 심각하고 거대한 비밀이었기에, 파란 볼펜으로 그 'ㅇ' 하나를 적어두고도 혼자 심장이 쿵 내려앉아 황급히 다이어리를 탁 덮어버리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종이 위에 깊게 파인 샤프 자국과 볼펜 자국을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매만지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순수하게 두근거렸던 열일곱 살의 차가운 저녁 공기가 불 꺼진 방 안에 가득 번져오는 것만 같았다.

 

 '그때 우리는 참 서툴렀지만 참 반짝였구나' 혼자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빛바랜 옛 연락처를 뒤적거리거나 불쑥 메시지를 보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서툴고 순수했던 떨림은 다시 만져서 덧칠하는 것보다, 지나간 시간의 서랍 속에 그 모습 그대로 고이 묻어둘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답게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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