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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미키 17]후기, 소모품 인생에 던진 질문

by 풍성함 2026. 8. 23.

미키 17 영화 공식 포스터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목구멍이 턱 막히더라고요. 어떤 장면이었냐면, 주인공 미키가 얼어붙은 미지의 행성에서 온갖 끔찍한 위험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목숨을 바치러 나가는데, 곁에 있던 동료들이 그 죽음을 두고 ‘이번엔 과연 몇 분이나 버틸까’ 낄낄거리며 술자리 안줏거리 삼아 돈내기를 걸던 순간이었다. 극장에서 놓치고 지나갔다가 주말 밤 집에서 불을 다 끄고 OTT로 결제해 혼자 보던 중이었는데, 봉준호 감독 특유의 씁쓸한 블랙코미디가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내려놓고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본론] 1. 미키 17 관람, 동료 내기 장면에서 목구멍이 턱 막혔다

 

영화 <미키 17>의 줄거리는 초등학생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면서도 서늘하다.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얼음 행성을 개척하기 위해 떠난 우주선 안에서, 방사능에 노출되거나 맹독성 생물에게 뜯어먹히는 등 사람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가장 위험하고 더러운 일만 도맡아 하는 복제 인간 '미키'의 이야기다. 미키는 임무 중에 끔찍하게 죽어도 기억을 그대로 백업받아 3D 프린터처럼 새로운 몸으로 다시 출력되는 '익스펜더블(소모품)'이다. 열여섯 번이나 끔찍한 죽음을 반복해서 겪고 열일곱 번째로 다시 살아난 '미키 17'이 또다시 죽을 고비를 넘기던 중, 자신이 죽은 줄 알고 미리 출력되어 버린 '미키 18'과 마주치며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생존 싸움을 다룬다. 동료들이 미키의 죽음에 아무렇지 않게 내기를 걸며 웃어넘기던 그 장면을 마주했을 때, 내 목구멍은 마치 무거운 쇳덩이를 삼킨 것처럼 턱 막혀왔다. 자신의 육체가 찢기고 얼어붙는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본인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공포이자 절박한 비명인데, 거대한 시스템과 동료들의 눈에는 그저 서랍에서 다 쓴 건전지 하나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만큼이나 사소한 소모품의 교체일 뿐이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차가운 방호복을 챙겨 입는 미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데, 어두컴컴하고 불 꺼진 방 안에 나 역시 언제든 손쉽게 대체될 수 있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서늘함이 공기처럼 번져 내 몸을 짓눌렀다.

 

2. 엔딩 후 까만 화면,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마침내 TV 전원이 탁 꺼졌지만, 나는 까맣게 변한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느라 소파에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적막만 가득 찬 거실 탁자 위에는 내일 아침 어김없이 울려 퍼질 출근 알람이 맞춰진 스마트폰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 스마트폰 화면을 힐끔 쳐다보는데, 헛웃음과 함께 지독하게 차가운 현실감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과연 내 삶에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일까, 아니면 미키처럼 그저 갈아 끼워지는 번호표 하나에 불과할까.’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음에 아무런 답도 내리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영화 속 먼 우주 행성의 살을 에는 듯한 눈보라와 얼어붙은 풍경보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해 부품처럼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불 꺼진 내 거실의 공기가 훨씬 더 차갑게 느껴졌다.

 

3. CNC 스위치 켤 때마다 미키 17이 맴돈다

 

그 서늘한 질문은 영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매일 아침 작업장에 출근해 차가운 CNC 기계 스위치를 켤 때마다 내 뒤통수를 맴돌고 있다. 쇳가루가 자욱하게 날리는 공장 안에서 도면을 확인하고 기계의 반복적인 소음을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오늘 당장 사라져도 이 기계와 시스템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아무런 문제 없이 똑같이 돌아가겠지'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나는 미키처럼 세상이 정해준 대로 그저 갈아 끼워지는 번호표로 맥없이 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블로그였다. 본격적으로 매달린 지 반년 조금 넘었는데, 이제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밤마다 매달리는 내 인생의 가장 절박한 탈출구가 되었다. 하루 종일 쇳가루를 마시고 녹초가 되어 돌아와도, 모니터 불빛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쓸 때만큼은 세상이 매겨놓은 순번이 아니라 내 삶의 번호표를 내 손으로 직접 쥐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다른 글들을 다 제쳐두고 오직 영화 리뷰로만 쓴 글이 벌써 150개 이상을 훌쩍 넘겼다. 밤마다 뻑뻑해진 눈을 비벼가며 퇴근 후 한 편씩 꾹꾹 눌러 담아 온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모니터 앞에 앉아 151번째 글을 써 내려가려 한다. 세상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매일 소모품처럼 갈려 나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밤마다 써 내려간 150편이 내가 세상에 부품으로 갈려 나가지 않고 온전히 살아있다는 흔적 같아서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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