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온종일 신경 곤두세우고 일하다 퇴근하면, 머릿속이 꽉 차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쉬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유독 한 주 동안 몸도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날이었는데, 복잡한 생각이나 머리 쓰는 일 없이 그저 소파에 기대어 피식피식 웃으며 하루의 피로를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TV 리모컨을 쥐고 영화 <하이파이브>를 틀었다.
1. 하이파이브 관람, 기계 소리 속 퇴근 후 그날 밤
영화 <하이파이브>의 초반 줄거리는 초등학생도 한 번에 쏙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무척 기발하고 흥미진진하게 시작된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한 사람의 장기를 각각 나누어 이식받게 된 전혀 다른 다섯 명의 평범한 이웃들이, 이식 수술 이후 저마다 신기하고 엉뚱한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유쾌한 이야기다. 심장을 이식받고 엄청난 힘이 생긴 소녀, 폐를 받고 바람을 내뿜는 백수 청년, 눈을 이식받고 전자기파를 다루는 청년, 신장을 받고 에너지를 전달하는 요구르트 배달원 아주머니, 그리고 간을 이식받아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을 얻은 아저씨까지 지극히 일상적인 소시민들이 하루아침에 상상도 못 한 능력을 손에 쥐게 된다. 온종일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일하느라 머릿속이 묵직했던 그날 밤, 나는 그저 머리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코믹 킬링타임 영화 하나를 원했을 뿐이었다. 화면 속에서 각자의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우왕좌왕 넘어지고 실수하는 주인공들의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를 보면서, 처음에는 맥주 한 캔 들이켜듯 편안하게 소파에 파묻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엉뚱하고 황당한 상황들 속에서 각자 팍팍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버텨내는 주인공들의 사연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가볍게 웃으려던 내 마음에 뜻밖의 잔잔한 온기와 위로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2. 혼자 거실에서, 웃으려다 찡해진 이유
영화 속 다섯 주인공은 화려한 슈트를 입고 세상을 구하는 멋진 할리우드 영웅들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각자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 있었거나,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 주변의 지극히 평범하고 짠내 나는 소시민들이다.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남남으로 만나 초능력 때문에 얽히고설키며 다투기도 하지만, 그들의 능력을 노리고 위협해 오는 악당들에 맞서기 위해 결국 하나로 뭉치게 된다. 혼자 조용한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유독 가슴이 찡해졌던 순간은, 완벽하지 않은 이 다섯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서로의 손바닥을 힘차게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었다. 혼자일 때는 그저 서툴고 부족한 힘에 불과했지만, 다섯 사람의 손이 맞닿아 에너지가 연결되는 순간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는데 묘하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단한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버텨내는 평범한 이웃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온기를 나누는 그 모습에서 결국 사람을 살게 하고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건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라는 사실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3. 소파에서 털고 일어날 때, 텁텁한 피로감이 가벼워졌다
엉뚱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끝에 마침내 사건이 해결되고, 다섯 사람이 다시 각자의 소박한 일상으로 돌아가 미소를 짓는 결말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TV 화면에서 엔딩 크레딧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조용히 올라갈 때, 리모컨을 누르고 소파에서 몸을 털고 일어서는데 하루 종일 나를 짓누르던 텁텁한 피로감이 묘하게 가벼워져 있는 것을 느꼈다. 거창한 교훈을 얻은 것도 아니었고 현실의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진 것도 아니었지만, 나와 다를 바 없이 묵묵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훈훈하게 채워졌다. 지친 몸으로 소파에 누워 멍하니 리모컨을 눌렀던 밤이었지만, 영화가 끝난 뒤 거실에 서서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는 순간 귓가에 맴돌던 긴장감 대신 든든한 위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 꺼진 거실을 정리하며, 혼자서 모든 짐을 다 짊어지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소박한 위안을 마음에 담았다. 내일 또 시끄러운 현장으로 출근해야 하지만 조금은 더 담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에너지가 작게나마 차올랐던 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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