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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베러맨] 원숭이의 가면 뒤에서 발견한 내 안의 쉼표

by 풍성함 2026. 8. 16.

베러맨 영화 공식 포스터

수십만 관객이 미친 듯이 환호하는 대형 콘서트 무대 위에, 사람이 아닌 털 덮인 원숭이 한 마리가 홀로 마이크를 쥐고 서 있었다. 이 말도 안 되게 기묘하고도 강렬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바로 <베러맨>이다. 영화 속에서 전 세계를 흔든 전설적인 팝스타 로비 윌리엄스 본인만 온몸이 털로 덮인 CG 원숭이로 나오고, 그를 둘러싼 가족이나 밴드 멤버, 수많은 관객들은 전부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조명과 수만 명의 함성 소리, 그리고 그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는 원숭이의 기괴한 대비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면서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베러맨 속 원숭이, 수십만 관객 앞에 서다

영화 <베러맨>의 핵심 줄거리는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또 씁쓸하다. 주인공 로비 윌리엄스는 어릴 적부터 남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던 소년이었다. 그는 영국의 유명 아이돌 그룹 '테이크 댓'의 멤버로 데뷔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이후 솔로로 독립해서는 전 세계 수십만 명의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야말로 최고 명성의 슈퍼스타가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돈도, 명예도, 인기도 다 가진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삶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로비의 외모를 사람이 아닌 CG 원숭이로 그려낸다. 주변의 모든 인물은 멀쩡한 사람인데 오직 주인공 로비 자신만 털이 숭숭 난 원숭이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마이크를 잡은 채 수만 명의 환호를 받는 그 순간에도, 스크린 속 로비는 그저 주춤거리는 유인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를 호령하는 대스타가 되었을지언정, 정작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를 그저 사람들의 재롱이나 떠는 광대,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유인원처럼 느끼며 지독한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렸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세상 모든 조명을 독차지하는 화려한 모습과 그 중심에 서 있는 기형적인 원숭이 외모의 대비는,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보다도 씁쓸하고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나도 가면 쓰고 있구나 — 가슴이 턱 막힌 순간

수십만 관객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서 있는 그 씁쓸한 원숭이의 장면을 지켜보다가, 문득 '나도 밖에서는 멀쩡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덮쳐왔다. 나 역시 사회에 나가면 맡은 바 일을 잘 해내는 듬직한 어른이어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식구들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가장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매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버텨왔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는 별문제 없이 평탄하게 제 몫을 하며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내 마음 한구석에는 짐처럼 묵직하게 얹혀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다들 군소리 없이 자기 몫을 묵묵히 잘 견뎌내는데, 왜 나만 혼자 이렇게 지치고 힘들어하는 걸까? 나만 유난스러운 건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답답함을 꾹꾹 눌러 담아왔었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원숭이의 모습으로 홀로 서 있는 로비의 그 외로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내 깊은 곳에 묻어뒀던 그 감정이 확 터져 올라오면서 가슴이 턱 막혀왔다. 그날 밤 나는 집에서 모든 불을 다 꺼놓고 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있었다. 전 세계의 환호를 받는 저 위대한 팝스타조차도 속으로는 나처럼 스스로를 못 미더워하고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크게 흔들었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 애쓰지 않고 조용히 그 먹먹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동안 답답하고 텅 비어있던 마음속에 온기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너만 그렇게 겨우 버티고 있는 게 아니야" 하고 영화가 나직하게 말을 건네주는 것 같았다.

 

창밖 보며 생긴 마음속 멈춤 버튼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가만히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답했던 코와 목을 가다듬고 화장실로 가 찬물로 세수를 한 뒤, 거실로 나와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불 켜지지 않은 어두운 거실 안으로 밤공기가 시원하게 들어왔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데워 마시며 멍하니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내가 그동안 나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멋지고 완벽한 어른으로 보이고 싶어서, 내 안에서 울리는 불안이나 피곤함 같은 신호들을 전부 모른 척 눌러두기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단한 팝스타도 속으로는 스스로를 원숭이라 느끼며 버텼는데, '내가 좀 어설프면 어때, 매번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슬며시 들어앉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내 마음속에는 조그만 숨구멍과 함께 일종의 '멈춤 버튼'이 하나 생긴 것 같다.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이라는 게 영화 한 편 봤다고 하루아침에 싹 바뀌지는 않아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조금만 어설프거나 일이 꼬일 때 스스로를 낭떠러지로 몰아세우며 자책했다면, 지금은 그 순간 마음속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었다.

 

 

 

"에이, 좀 어설프면 어때. 그때 그 슈퍼스타도 무대 위에서 자기가 원숭이 같다고 느꼈다는데, 내가 매번 완벽할 수가 있겠어" 하고 스스로에게 여유 있는 핑계를 건네며 어깨의 힘을 툭 빼게 된다. 예전처럼 스스로를 자책의 낭떠러지로 몰아세우지 않고, 내가 나를 너무 달달 볶으려 할 때마다 슬며시 멱살을 놓아주는 안전장치를 갖게 된 셈이다.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게 굴지 않고,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내 안의 흔들림을 인정하며 담담하게 걸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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