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엔 저런 엉터리 솔루션북조차 없구나.” 새벽 1시, 불 꺼진 거실 소파 구석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리모컨을 쥔 손가락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툭 떨어질 뻔했지요. 낮 동안 모니터 화면 속에서 3D 모델링 와이어프레임과 씨름하느라 벌게진 눈이 TV 화면의 흰 자막 때문에 뻑뻑하게 아파왔습니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 녀석은 제멋대로 편집실을 뛰쳐나가고, 자기만의 이상한 공책에다 말도 안 되는 지침들을 적어가며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더군요. 그 철딱서니 없는 고집과 헛발질을 지켜보는데 묘하게 속이 답답해졌습니다. 저 친구는 제 마음대로 판을 엎어버릴 예술가라는 핑계라도 있고, 저런 엉터리 수첩이라도 손에 쥐고 흔들어대지요. 그런데 정작 마흔 줄에 접어든 제 손에는 매달 날아오는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와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청구서 말고는 쥐어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1. 영화 한 편이 새벽 1시를 넘겼다
주인공 마크가 제멋대로 오케스트라를 부르고 편집본을 뒤엎는 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목구멍 뒤쪽이 바짝 말라붙었습니다. 저 나이 먹도록 저렇게 온몸으로 징징대고 도망칠 수 있는 자유가 참 팔자 좋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도대체 저 인간은 뒤를 받쳐주는 자본이 어디서 나기에 저러나, 저 판을 수습해야 하는 주변 스태프들은 무슨 죄인가 하는 직업병 섞인 계산부터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마흔을 넘기고 나니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십 대에는 저런 낭만이나 치기를 보며 예술가의 고뇌니 뭐니 포장해 줄 여유라도 있었지요. 지금의 저에게 영화 속 마크의 방황은 그저 납기일 코앞에 두고 기계 세팅 다 엎어버리는 대책 없는 사고뭉치 팀장의 횡포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어른인 척 옷 챙겨 입고 출근하지만, 사실 저 역시 매일 밤 마음속에서는 길을 잃고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를 두고 작업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공정 스케줄을 칼같이 쪼개며 빈틈없는 베테랑 행세를 합니다. 후배들이 가공 조건이나 툴패스 진입 각도를 물어오면 아주 태연하게 정답을 내놓지요. 하지만 퇴근길 운전대를 잡고 텅 빈 신호등 앞에 서면 머릿속이 멍해집니다. 당장 내년에 훌쩍 뛸 큰아이 학원비와 끝 모르게 치솟는 물가 앞에서 어떤 경로를 짜야 할지 도무지 계산이 서질 않으니까요. 어른이라는 자리는 참 비겁합니다. 속은 여전히 스무 살 적 현장 바닥에서 칩에 손가락을 베여 쩔쩔매던 그 미숙한 놈 그대로인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단단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니까요. 저 엉터리 솔루션북이라도 있으면 어디 펼쳐놓고 '내일 아침엔 덜 불안해하는 법' 같은 허튼소리라도 찾아 읽고 싶었습니다. 그런 매뉴얼 하나 없이 이 험한 바닥을 맨몸으로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이 새벽 공기보다 더 차갑게 파고들었습니다.
2. 이 잠든 숨소리들을 지켜내야 한다
안방 문틈 사이로 아내와 두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낮에 학원 다녀오느라 파김치가 된 아이들이 이불을 차내며 색색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서 있었습니다. 그 평온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 안쪽에서 덜컥하고 무언가 걸려오는 기분이 들었지요. 이 잠든 숨소리들을 내일 아침에도, 모레 아침에도 흠집 하나 없이 지켜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족쇄지요. 도망칠 구멍 따위는 애초에 없습니다. 영화 속 마크처럼 시골 이모네 집으로 짐 싸 들고 튀어버릴 배짱도, 제 마음대로 일상을 일시 정지할 권리도 제게는 없습니다. 제가 하루를 삐끗해서 납기를 펑크 내거나 거래처와 틀어지면, 저 작은 숨소리들이 누리는 평온한 아침이 당장 깨져버립니다. 통장 잔고는 언제나 아슬아슬합니다. 매달 25일이면 월급은 스치듯 빠져나가 바닥을 드러내지요. 가장이라는 이름은 때로 자랑스러운 훈장이 아니라,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무게로 얹혀옵니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캔맥주를 집어 들었습니다. 반쯤 마시다 미지근해진 맥주를 들고 싱크대로 걸어갔지요. 텁텁한 알코올 기운이라도 빌려 잠을 청해볼까 하다가, 새벽 1시 반에 싱크대 배수구로 맥주 반 캔을 그냥 콸콸 쏟아버렸습니다. 누런 거품이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꼴을 멍하니 내려다보았습니다. 젊은 날의 치기와 낭만이 찌꺼기처럼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취해 있을 시간조차 아까웠습니다. 내일 아침 알람이 울리면 6시에 칼같이 눈을 떠야 하고, 맑은 정신으로 현장 기계 소음 속에 뛰어들어야 하니까요. 식탁 위에 굴러다니던 거래처 납품서 이면지를 한 장 집어 들었습니다.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내일 당장 처리해야 할 일 세 가지를 적었습니다. 1번 오면가공 엔드밀 교체 주기 확인, 2번 거래처 단가 수정 건 통화, 3번 둘째 치과 예약 확인. 그 투박한 글자들을 적어 내려가고 나서야 비로소 방으로 들어가 누울 힘이 아주 조금 생겼습니다.
3.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피가 마르는 법
영화에서는 실패조차도 예술적인 장면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지만, 가장 놈의 인생은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피가 마르는 법입니다. 화면 속 3D 서피스가 아무리 매끄러워도, 가공 현장의 쇠붙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조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깎여나간 만큼 그대로 드러나지요. 실패하면 인생의 교훈이 남는 게 아니라, 피 같은 돈이 뜯겨 나갑니다. 대리 3년 차 시절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납기에 쫓겨 밤샘 작업을 하다가 공구 보정값, 옵셋값을 잘못 넣는 바람에 0.012밀리미터를 더 깊게 파먹었습니다. 정밀 금형 코어 제품이었는데, 그 0.012밀리미터 때문에 열처리까지 끝난 수백만 원짜리 특수강 블록이 그 자리에서 폐기 고철로 변해버렸지요. 그달 월급봉투에서 물어내야 할 변상금이 빠져나가며 반토막이 났습니다. 퇴근하고 공장 구석 공터에 세워둔 중고 아반떼 운전석에 앉아 핸들에 이마를 쾅쾅 박으며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려주더군요. 아이는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까르르 웃고 있었습니다.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떠먹는데, 입안에 들어온 밥알이 꼭 까끌까끌한 모래알처럼 씹혀서 목구멍으로 도무지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내 손가락 하나 삐끗한 것 때문에 이 식탁의 평화가 깨질 수 있다는 공포를 그때 뼈에 새겼습니다. “그 뒤로 보정값 세 번 네 번 확인하는 강박증 생겼다.” 기계에 좌표를 입력하고 사이클 스타트를 누르기 전, 숨을 죽이고 모니터 속 옵셋 수치를 들여다보는 그 버릇은 이제 제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지독하지요. 하지만 그 강박증 덕분에 지난 15년 동안 길바닥으로 나앉지 않고 아이들 신발에 흙 안 묻히며 여기까지 버텨왔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들어진 해답지를 찾는 사치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내 새끼들 밥그릇이 여기에 걸려 있는데. 내일 아침에도 저는 출근길 정체를 뚫고 들어가 소수점 세 자리 공차와 씨름하며, 기계 앞에서 수치를 세 번 네 번 다시 확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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