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 젓가락으로 툭 찢다 말고 헛웃음을 픽 웃더라. 전날 밤 야근 마치고 들어와서 대충 씻고 캔맥주 하나 까놓고 멍하니 넷플릭스를 뒤적였던 게 발단이었다. 메인 화면에 떡하니 걸린 포스터 하나가 눈길을 붙잡았다. 20대 때 비디오 테이프로 빌려봤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였다. 알코올 기운에 홀린 듯 다시 틀어봤고, 다음 날 늦은 아침으로 양은냄비에 라면 끓여 상에 올리며 집사람한테 무심코 그 얘기를 툭 꺼낸 순간이었다. 공장에서 일주일 내내 CAD/CAM 화면 뚫어져라 보며 소수점 세 자리 공차 맞추고, 기계 돌아가는 쇳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주말엔 머릿속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그런 상태로 새벽 한 시에 들이켠 밍밍한 맥주 한 캔과 17세기 네덜란드 아틀리에 풍경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영 뜬금없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 서늘한 화면 속 그림자 뒤편에 숨은 살림살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젊을 땐 보이지도 않던 퀴퀴하고 팍팍한 현실의 냄새가 십수 년 지나서야 비로소 코끝을 찔러왔던 탓이다.
진주 귀걸이 소녀 재관람, 마흔 넘어 알고리즘이 불러낸 밤
캔맥주 하나 마시며 넷플릭스 알고리즘에 뜬 포스터 보고 다시 봤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캔을 딸깍 따는데, 화면 속 스칼렛 요한슨의 그 묘하게 굳은 얼굴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스물여덟 살, 현장 바닥에서 칩 치우고 절삭유 냄새 뒤집어쓰며 선임들 눈치 보던 시절에 봤던 그 영화는 그냥 색감이 기가 막히고 여주인공 눈빛이 숨 막히는 외국 예술 영화였다. 그때는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천재 화가의 낭만이나 붓끝에서 번지는 빛의 마술 같은 소리에 고개 끄덕이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그런데 마흔 넘어서 현장 공정 잡고 단가 표 씨름하는 기술자가 되어 다시 보니 화면이 완전히 딴판이었다. 여주인공 눈빛이나 영롱한 색감 뒤편으로, 쪼들린 마누라와 방구석에 틀어박힌 무능한 남편이 먼저 보였다. 화가 페르메이르는 고결한 예술가가 아니라, 납기일도 못 맞추고 외상값에 치여 처가살이하면서도 자존심만 살아서 버티는 영락없는 프리랜서였다. 그림 한 점 제때 못 넘겨서 스폰서 영감 눈치나 살피는 꼴이, 납기 압박에 바이어 전화 피하며 가공기 앞 서성이는 우리네 하청 공장 신세와 다를 게 없었다. 특히 처가살이하면서 만삭의 몸으로 애들 줄줄이 달고 집안 살림 꾸려가는 화가의 아내 카타리나가 화면 한쪽에서 씩씩거릴 때마다 남일 같지가 않더라. 물감 가루 살 돈도 없어서 스폰서한테 굽신거리는 꼴을 보면서, 저 집 쌀독은 도대체 누가 채우나 싶어 속이 바짝 탔다. 20대 때는 그저 주인공의 애절한 시선이나 아틀리에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에 취했었는데, 마흔넷의 가장 눈에는 화폭 뒤편의 먼지 쌓인 가계부와 삐걱거리는 찬장 문짝이 먼저 들어왔다. 한 집안을 먹여 살린다는 건 도면에 선 하나 그어놓고 낭만 찾는 짓으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귀한 청금석 가루를 빻아 푸른 물감을 만들고 있을 때, 그 비싼 돌덩이 살 돈이면 식구들 일주일 치 빵과 고기가 해결된다는 계산부터 튀어나왔다. 캔맥주 바닥을 비우는 동안 남은 건 감동이 아니라,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밥벌이 앞에서는 예술도 처절한 밥줄 싸움에 불과하다는 씁쓸한 뒷맛뿐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영화 속 네덜란드의 찬 공기가 안방 구석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자정 넘어서까지 작업실 문 걸어 잠그고 하녀랑 색채 연구나 하고 앉아 있는 남편을 문밖에서 노려보던 그 아내의 퀭한 눈빛. 그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다. 내일 아침 아이들 입에 들어갈 빵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납기 불량 터져서 클레임 맞기 직전의 그 살얼음판을 아내 혼자 온몸으로 틀어막고 있었던 거지.
일요일 아침 라면, 낭만이 날아간 자리
김치 젓가락으로 툭 찢다 말고 헛웃음을 픽 웃더라. 일요일 아침 겸 점심으로 양은냄비에 라면 두 개 바글바글 끓여 상 가운데 올려놓고, 어젯밤에 그 영화 다시 봤는데 화가 마누라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가더라는 말을 툭 던졌을 때였다. 집사람은 젓가락 끝에 신김치 한 조각을 건 채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영화 속 고상한 화폭 이야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현실의 청구서가 곧장 날아들었다. 수학학원 10만 원, 운동화 앞코 터진 것 한마디에 낭만이 싹 날아갔다. 지난달부터 큰놈 보습학원비가 10만 원 올랐다는 이야기, 거기에 작은놈 봄 운동화 앞코가 벌어져서 비 오는 날 양말이 다 젖어 들어왔다는 타박이 연달아 쏟아졌다. 젓가락 허공에 딱 멈추고 2~3초 눈도 안 깜빡이고 라면 김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머릿속으로 이번 달 카드값 명세서와 잔업 시간 계산기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라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스물몇 살 가시나는 온데간데없고 억척스러워진 아줌마만 덜렁 남은 거지. 연애할 때는 조그만 길거리 액세서리 하나 사줘도 좋아서 하루 종일 손목만 들여다보던 사람이었다. 주말마다 어디 놀러 가자며 조르던 그 시절의 생기 넘치던 아가씨는 사라지고, 이제는 마트 전단지 보며 몇백 원짜리 할인 쿠폰 챙기고 학원비 고지서 앞에서 한숨부터 내쉬는 생활인이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라면 면발이 국물을 빨아들이며 퉁퉁 붇는 동안 좁은 거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윙 소리만 맴돌았다. 공장에서 0.01밀리미터 공차 틀어지면 제품 버리듯, 살림살이도 삐끗하면 마이너스 통장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우리네 평범한 가장들의 일상이다. 영화 속 화가의 아내가 남편의 외상 장부 들여다보며 피눈물 흘리던 모습이, 지금 내 식탁 앞에서 젓가락을 내려놓는 아내의 굳은 어깨와 겹쳐 보여 목구멍이 턱 막혔다. 산다는 건 고상한 빛을 쫓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닥쳐오는 만 원짜리 몇 장의 무게를 버텨내는 일이다. 예술가의 고뇌니 영혼의 교감이 떠돌던 자리에, 당장 다음 주에 결제해야 할 학원비와 애들 신발값이 묵직한 쇳덩이처럼 쿵 하고 내려앉았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 입고 주말 특근까지 뛰어가며 메워온 십수 년의 세월이 그 식탁 위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계란 노른자 하나, 우리 방식의 말
계란 노른자 숟가락으로 툭 떠서 앞접시에 얹어줬다. 국물에 반쯤 익은 노른자를 조심스럽게 건져서 집사람 밥그릇 옆으로 밀어주니, 집사람이 힐끗 쳐다보더니 군소리 없이 제 라면 면발 위에 올려 젓가락으로 쓱쓱 비볐다.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부엌에 가득 찼다. 미안하다거나 고생한다는 낯간지러운 말 대신, 그 기름진 노른자 한 덩어리에 온갖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건네는 게 우리 식의 화해이자 대화였다. 라면 그릇을 대충 물에 담가두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만화책 보던 작은놈을 불러세웠다. 작은놈 발 꾹꾹 눌러보니 엄지발가락 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신발이 작아서 발가락을 잔뜩 오므리고 다녔던 모양인데, 그것도 모르고 지나쳤던 내 무신경함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지체 없이 지갑 챙겨 들고 집 근처 상설 매장으로 애 손을 잡고 나갔다. 매장 구석 할인 매대에서 발 치수 꼼꼼히 재고, 때 안 타는 튼튼한 검은색 운동화 하나를 골라 신겼다. 5만 몇천 원 카드 긁고 영수증 쥔 집사람 손 보니 세월 빠르다 싶었다. 영수증 종이를 쥐고 있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거칠어져 허옇게 트고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영화 속 귀족 부인들이 걸치던 보석은커녕 얇은 금반지 하나 제대로 못 끼고 살아온 손이었다. 매일같이 설거지통에 손 담그고 락스 물 묻혀가며 걸레 빨던 그 투박한 손이, 어쩌면 저 화폭 속 어떤 명화보다 더 치열하고 단단하게 우리 집을 받치고 있었다. 새 신발 신고 신나서 앞서 달리는 작은놈 등 뒤를 보며 집사람과 나란히 보폭을 맞췄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정육점에 들러 찌개용 돼지고기 반 근을 샀다. 집에 돌아와 저녁 밥상을 차리며 식탁 모퉁이에 앉아 있자니, 대단한 낭만을 찾지 않아도 이렇게 하루를 메워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정밀하고 확실한 가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우리 방식이었다. 말로는 사랑하네 고맙네 없어도 식어가는 계란말이 한 접시로 서로 등 두드려주는 거. 내일 월요일 아침이면 또다시 울리는 둔탁한 알람에 몸을 일으키고, 셔터 문 올라가는 공장 바닥으로 출근해 모니터 속 도면을 들여다보며 공구를 돌릴 것이다. 빡빡한 납기와 소수점 공차의 압박 속에서 또 한 주를 깎아내려 가겠지만, 지켜야 할 이 거친 손들이 있는 한 내일의 기계 소리도 거뜬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