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이고 차고 단단한 쇠기둥이고 닥치는 대로 모조리 뜯겨 하늘로 솟구쳐 날아가는 굉음이 귀에서 내내 웅웅거렸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든 주말 늦은 밤, 거실의 불을 모조리 꺼놓고 소파에 깊숙이 파묻힌 채 홀로 OTT 화면을 마주하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온종일 일터에서 0.001mm의 가공 오차를 다투며 하루 종일 칼날처럼 곤두서 있던 신경과 묵직한 피로를 식혀볼 요량으로 가볍게 틀었던 재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화면 가득 시커멓게 소용돌이치며 대지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풍의 압도적인 위력과 귀청을 찢을 듯한 사운드의 굉음은 고요하던 우리 집 거실의 차가운 공기마저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영화 《미나리》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정이삭 감독이 연출을 맡아 1996년의 고전을 완벽하게 부활시킨 영화 《트위스터스》는, 그렇게 시작부터 무방비했던 평범한 생활인의 가슴 한복판을 매섭게 후려쳤습니다.
트위스터스 OTT 첫인상, 귀에서 웅웅거리던 굉음과 거대한 무력감
영화 《트위스터스》의 전체적인 뼈대는 초등학생 아이라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직관적이고 거침없이 질주합니다. 하늘을 온통 새까맣게 뒤덮으며 지상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거대한 회오리바람, 즉 토네이도가 시시각각 출몰하는 미국 오클라호마의 광활한 평원이 주 무대입니다. 주인공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 분)는 과거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 거대한 돌풍의 에너지를 화학 물질로 잠재워보겠다고 당차게 나섰다가, 예측을 완전히 빗나간 거대 괴물 같은 EF5 등급의 바람 앞에서 소중한 동료들을 처참하게 잃고 맙니다. 그 깊은 죄책감과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때문에 위험한 들판을 떠나 뉴욕 기상청 사무실의 컴퓨터 모니터 뒤로 도망쳐 살아가던 케이트 앞에, 유튜브에서 폭풍을 쫓아다니며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겁 없는 토네이도 카우보이 타일러(글렌 파월 분)가 나타납니다. 겉보기엔 그저 스릴을 즐기는 철없는 바람 사냥꾼 같던 타일러와 상처투성이 케이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폭풍을 마주하지만, 결국 무고한 주민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과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다시 한번 집채만 한 폭풍의 한가운데로 목숨을 걸고 차를 몹니다. 집이고 차고 쇠기둥이고 닥치는 대로 뜯겨 날아가는 굉음이 귀에서 웅웅거렸습니다. 지면을 사납게 긁어내며 사람들의 소박한 보금자리를 단 몇 초 만에 산산조각 내버리는 그 무자비한 자연의 포효 앞에서, 인간이 제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첨단 기술을 동원해 본들 그저 나약한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무력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절망적인 공포 속에서도 뒤로 물러서는 대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바퀴에 쇠말뚝을 박아가며 트럭을 정면으로 몰고 들어가는 케이트와 타일러의 모습은 묵직한 전율을 안겨주었습니다. 닥쳐오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주저앉아 통곡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켜야 할 평범한 이들의 작은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온몸으로 바람을 들이받는 그 무모할 정도의 단단함이 내 가슴을 세게 쳤습니다. 영화의 폭풍이 잠시 잦아들었을 때, 나는 소파에서 조용히 일어나 베란다 창틀로 다가가 샷시를 덜컥거리며 흔들어보고 어두운 밤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습니다. 손바닥에 닿는 알루미늄 창틀의 차가운 금속 감촉 속에서, 내 귓가에는 세상을 부수던 그 거친 바람의 숨소리가 여전히 묵직한 이명처럼 맴돌고 있었습니다.
혼자 보는 법, 헤드폰 볼륨을 올리고 엄지손가락을 얹은 리모컨의 줄타기
극장의 거대한 은막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의 거친 질감과 현장감을 온전히 맛보기 위해 사운드의 무게만큼은 결코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실 불을 완전히 끄고 귀를 감싸는 밀폐형 헤드폰을 뒤집어쓴 뒤 볼륨을 평소보다 두세 칸 과감하게 올려 혼자만의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가죽 패드 너머로 쇠가 비틀리고 단단한 아스팔트가 뜯겨 나가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고막에 여과 없이 내리꽂혔습니다. 그 압도적인 현장감 때문에 소파에 앉아 있는 내내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눈앞에서 멀쩡한 가옥들이 종이 상자처럼 바스러지고 거대한 농기계가 장난감처럼 하늘로 치솟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처절한 폭풍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의 감각은 늘 집 안의 평온함을 향해 바늘 끝처럼 곤두서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헤드폰 틈새로 새어 나간 날카로운 저음의 굉음이 혹시라도 안방 문틈을 넘어가거나 아이들 방의 얇은 방문을 흔들어 단잠을 깨뜨릴까 봐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리모컨의 볼륨 버튼 위에 엄지손가락을 얹어두고, 어두운 방문 쪽을 힐끔 돌아보며 소리를 올렸다 낮췄다 반복하는 기묘한 줄타기가 이어졌습니다. 화면 속에서 대피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거대한 토네이도가 마을을 집어삼키는 절정의 순간에는, 리모컨을 쥔 손가락에 파르르 경련이 일 지경이었습니다. 소리를 조금만 올려도 등 뒤의 어둠이 신경 쓰여 고개를 돌려 컴컴한 복도를 살피고, 소리가 잦아들면 다시 그 거대한 바람의 숨결을 선명하게 느끼고 싶어 살그머니 볼륨을 올렸습니다. 귓속에서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는데, 헤드폰 너머의 거실은 바늘 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 깊은 적막에 잠겨 있는 그 기묘한 대비 속에서 나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새벽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 반의 깜짝 놀란 가슴, 그리고 다시 덮어준 아이의 이불
사달이 난 것은 영화 후반부, 대피소였던 마을의 오래된 영화관 건물마저 통째로 뜯겨 나가며 스크린 전체를 괴물 같은 바람이 집어삼켰을 때였습니다. 장면에 너무 깊게 몰입한 나머지 리모컨을 쥐고 있던 엄지손가락의 통제력을 잃고 있었는데, 등 뒤의 어둠 속에서 불쑥 들려온 "아빠..." 소리에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심장이 발밑으로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귀청을 때리던 폭풍의 아우성 너머로 낮게 들려온 그 작은 목소리에, 마치 큰 죄라도 짓다가 현장에서 들킨 사람처럼 헛기침을 삼키며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러댔습니다. 헐레벌떡 헤드폰을 벗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어둠 속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아이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나온 것이었는데, 혼자 도둑이 제 발 저려 얼굴이 화끈거린 채 "아빠도 목이 말라서 나와 있었어" 하고 엉겁결에 둘러댔습니다. 터질 듯이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아이를 주방으로 데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 한 컵을 가득 따라 먹였습니다. 꿀꺽꿀꺽 물을 삼킨 아이를 다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침대에 눕히고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방문을 닫고 컴컴한 거실로 돌아왔을 때, 다리에 긴장이 탁 풀리며 맥이 탁 풀려버렸습니다. 벽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반을 훌쩍 넘겨 있었습니다. '그냥 여기서 TV를 끄고 들어가 잘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피로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하지만 아이 방을 나와 차가운 소파에 다시 털썩 앉는 순간, 묘하게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오기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새벽 2시 반, 볼륨을 절반으로 낮추고 멈추었던 재생 버튼을 다시 눌렀습니다. 케이트와 타일러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 끔찍하고 거대한 바람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그 치열한 사투를, 내 눈으로 끝까지 똑똑히 지켜보지 않고는 도저히 잠자리에 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목숨을 내던지며 지켜내고자 했던 그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무게가, 방금 전 물을 마시고 다시 곤히 잠든 내 아이 방의 따뜻한 숨소리와 겹쳐지며 가슴을 무겁게 내리눌렀습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어두운 화면 위로 하염없이 올라가고 TV를 껐을 때는 새벽 4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머리가 띵하게 울려오며 '내일 출근길 지옥문이 열렸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고작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기계 소음이 가득한 일터로 출근해야 한다는 막막함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렸습니다. 하지만 침실로 들어가기 전, 살금살금 까치발로 걸어가 아이 방 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두툼한 이불을 발로 뻥 차버린 채 대자로 널브러져 세상모르고 깊이 잠든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보며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고,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조용히 집어 들어 아이의 가슴팍까지 조심스레 끌어올려 덮어주었습니다.
이 방 한 칸만큼은 내 온몸으로 버텨내어 끝끝내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가슴 밑바닥을 묵직하게 채워왔습니다. 거친 세상의 풍파와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돌풍이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도, 내일 아침 다시 일터의 단단한 기계 앞에 서서 묵묵히 내 자리를 지켜내는 그 고단한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 낼 작정입니다. 바깥세상에서 몰아치는 비바람 따위는 결코 이 작은 방 안의 따뜻한 숨소리를 흔들지 못하도록, 내 모든 힘을 다해 이 평온한 일상을 단단하게 받쳐내겠다는 다짐을 품어봅니다. 영화 《트위스터스》는 압도적인 자연의 재앙을 스펙터클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그 무자비한 폭풍 앞에서 인간이 진짜 지켜내야 할 것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이 잠든 바로 이 작은 방 한 칸의 평화임을 뼈저리게 일깨워주는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