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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가공 15년 차 가장이 영화 불한당을 보고 쇳밥 먹던 시절을 복기한 밤

by 풍성함 2026. 11. 3.

 

불한당 영화 공식 포스터

무슨 영화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매표소 전광판에서 시간 제일 빠른 거, 왠지 피 튀기고 거칠어 보이는 포스터 보고 표 한 장 끊어 들고 들어간 게 바로 <불한당>이었습니다. 공장 셔터 내리고 시계 보니까 이미 밤 10시를 훌쩍 넘겼더군요. 하루 종일 모니터 들여다보며 CAD 캠 프로그램 짜고, 현장 내려가서 가공 치수 맞추느라 눈알이 뻑뻑하게 타들어 가던 날이었습니다. 집으로 곧장 핸들을 꺾으면 잠든 두 녀석 숨소리와 밀린 카드값, 아파트 대출 이자 고지서가 먼저 눈에 밟힐 텐데, 그날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현관문 도어락 누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몸뚱어리는 파김치인데 뇌 신경은 팽팽하게 굳어서, 어디든 도망치듯 처박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작업복 차림에 콜라 한 캔, 심야 극장 구석자리

2017년 초여름이었습니다. 쇳가루 냄새와 수용성 절삭유 찌든 냄새가 작업복 바지랑 안전화 가죽 틈새에 배어 있던 시절이지요. 기름때 묻은 작업 점퍼만 대충 차 뒷좌석에 던져두고, 먼지 묻은 카라 티셔츠 차림 그대로 심야 영화관 로비로 들어섰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불이 반쯤 꺼진 상영관 안에는 서너 명 남짓 띄엄띄엄 앉아 있더군요. 팝콘 살 기운도 없어서 탄산음료 기계에서 뽑아낸 콜라 큰 컵 하나 손에 쥐고, 스크린빛도 잘 안 닿는 맨 뒤 구석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시원한 탄산이 목구멍을 긁고 내려가는데 단맛보다는 피로가 먼저 왈칵 치밀어 올랐습니다. 의자에 멍하니 등을 기대고 있어도 망막 뒤편으로는 낮에 검증하던 황삭 가공 툴패스와 공차 100분의 2밀리미터짜리 숫자들이 잔상처럼 어른거렸습니다. 그때 제 속은 사실 겉보기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기름 바닥에서 구르며 10년 넘게 호형호제하던 직속 선배 하나가 며칠 전에 야반도주하듯 공장을 나갔거든요. 그냥 나간 것도 아니고, 우리가 몇 달 동안 밤새워 머리 싸매고 잡았던 5축 머시닝센터 지코드(G-code) 세팅 데이터와 단가 계산서, 심지어 주요 거래처 부품 도면 파일까지 외장하드에 싹 털어서 경쟁 업체로 옮겨 버렸습니다. 경찰에 고소를 하네 마네 사장은 핏대를 세우고 난리가 났는데, 그 선배를 현장에 끌어들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보증 섰던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주말에 애들 과자 사 들고 우리 집에도 허물없이 드나들던 형님이었습니다. 배신감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되는, 뒤통수를 묵직한 쇠파이프로 후려 맞은 듯한 멍청한 감정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머릿속을 강제로 비워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스크린 불빛 속으로 눈을 억지로 박아 넣었습니다.

 

'상황을 믿어라', 스크린에 선배 얼굴이 겹쳤다

영화는 시종일관 거칠고 서늘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재호라는 인물이 수혁을 쥐락펴락하며 판을 짜고, 서로 속고 속이는 바닥이 쉼 없이 이어졌지요. 그러다 스크린 속에서 설경구 씨가 낮은 목소리로 내뱉은 대사 한 줄이 제 귀를 그대로 꿰뚫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그 대사가 터져 나오는 순간 거짓말처럼 스크린 위에 저를 털고 나간 그 선배의 기름 묻은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 형님이 제게 늘 하던 말이 있었거든요. 우리는 기술자끼리 의리로 뭉쳐야 한다, 밥그릇은 남이 챙겨주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의리로 믿었고, 사람에 대한 신뢰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선배 입장에서 진짜 중요했던 건 의리가 아니라, 경쟁 업체가 찔러준 두 배의 연봉과 장비 세팅 조건이라는 '상황' 그 자체였던 겁니다. 스크린을 쳐다보는데 분노나 억울함보다 '그 뻔한 상황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한 내 멍청함'이 가슴팍에 먼저 날카롭게 박혔습니다. 기계는 참 솔직합니다. 수치 0.01밀리미터만 틀어져도 치수 불량이 나고, 절삭 이송 속도를 잘못 넣으면 팁이 여지없이 깨져 나갑니다. 조건과 수식이 정확해야만 제품이 나오는 냉정한 바닥에서 밥을 먹고 살면서, 사람 관계에서만큼은 숫자가 아닌 어설픈 감정을 들이밀고 있었던 제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질 때까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자정을 훌쩍 넘겨 텅 빈 주차장 차 안에 들어앉았는데, 차 키 모서리를 손바닥 안쪽에 너무 꽉 쥐고 있어서 시동조차 바로 걸지 못하겠더군요. 살을 파고드는 금속 모서리의 통증에도 차가운 손에는 피가 통하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선배에 대한 분노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대신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은 한기만 차올랐습니다. 핸들을 잡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내일부터는 공장에서 '좋은 형님' 소리 듣는 김 반장 노릇 따위 때려치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웃어주지 않고, 오직 도면의 치수와 기계 세팅 값, 그리고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 숫자만 바라보며 일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서늘한 선을 그었습니다. 정을 주면 반드시 피를 본다는 걸 그 영화와 선배가 똑똑히 가르쳐 준 셈이었습니다.

 

석 달짜리 얼음벽, 박카스 한 병에 와르르

그날 이후 제 태도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석 달 동안 공장 안에서 제가 내뱉은 말은 '네', '아닙니다' 딱 두 마디뿐이었지요. 사적인 잡담은 일절 섞지 않았고, 점심시간에도 식판을 들고 혼자 구석 자리에 앉아 밥만 씹어 넘겼습니다. 기계가 멈추지 않는 한 현장 작업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고, 차가운 눈으로 공차 검사 성적서만 대조했습니다. 그러다 사달이 난 건 납기를 코앞에 둔 어느 날 새벽 2시였습니다. 연일 이어진 특근으로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던 탓에, 공구 세팅 화면에서 Z축 공구 길이 옵셋 값을 마이너스 5밀리미터나 잘못 입력하고 가공 사이클 스타트 버튼을 눌러버린 겁니다. 급속 이송으로 툴이 무섭게 내려꽂히는 찰나였고, 그대로 처박히면 1,000만 원짜리 주축 스핀들이 박살 나며 라인 전체가 멈춰 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등에 식은땀이 쭉 흐릅니다. 제 손이 얼어붙어 허둥대던 그 찰나에, 옆 호기에서 일하던 나이 지긋한 현장 아저씨 한 분이 번개처럼 달려와 비상정지(EMG) 버튼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습니다. 굉음 직전에 스핀들이 공작물 코앞 1밀리미터에서 멈춰 섰습니다. 머리끝까지 피가 싹 빠져나가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제가 지난 석 달 동안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고 쌀쌀맞게 대했던, 기름 묻은 목장갑을 낀 현장 고참 아저씨였습니다. 그분은 넋이 나간 제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자기 사물함 쪽으로 걸어가더군요.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살짝 찌그러진 박카스 한 병을 꺼내 제 작업대 철판 위에 툭 올려놓았습니다. 뚜껑을 돌려 따 주지도 않은 채, 그 투박한 손으로 제 어깨를 한번 툭 치며 낮게 말했습니다. "기계 부서지면 물어내면 그만이지만, 네 명줄이 먼저 깎여 나간다. 정신 챙겨라, 김 반장." 그 투박한 갈색 병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목구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배신당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사람 믿지 않겠다고 이 악물고 세워뒀던 석 달짜리 차가운 얼음벽이, 그 보잘것없는 박카스 한 병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도망치듯 들어갔던 극장 문을 나설 때의 저는, 정에 울고불고하던 어설픈 기술자가 아니라 쇳덩어리처럼 감정을 깎아내 버린 아주 메마른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기계 부품처럼 규격대로만 맞물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쇳가루 풀풀 날리는 그 새벽 바닥에서 배웠습니다. 아무리 배신이 판치고 상황이 사람을 흔들어대도, 결국 이 퍽퍽한 밥벌이를 버티게 해주는 건 도면 너머의 사람 냄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도 아침 8시까지 출근 카드를 찍고 또다시 소수점 공차와 씨름해야겠지만, 적어도 현장 동료들에게 건넬 캔커피 두 개쯤은 주머니에 챙겨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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