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명절 연휴 내내 잡혀 있던 납기를 맞추느라 연일 이어진 특근을 끝내고, 딱 하루 온전히 쉬는 날 밤이었습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목뒤는 뻐근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리모컨을 습관처럼 툭툭 돌리다가 우연히 채널에 걸린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게 영화 '말모이'였습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냥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며 스르르 잠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누워 있던 상체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습니다. 피로로 뻑뻑하던 눈을 비벼가며, 숨죽인 채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앉아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거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푸르스름한 모니터 화면 불빛만이 어두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말모이 첫 장면, 연휴 특근 끝 하루 쉬는 날 밤
가공 기계 앞에 종일 서서 쇳가루를 뒤집어쓰고 돌아온 날 밤이었습니다. 이번 연휴에도 거래처 라인이 멈추면 안 된다는 독촉 전화에 시달렸습니다. 제품 치수를 맞추려고 머릿속으로 CAM 툴패스와 공정 순서를 수없이 쪼개며 긴장 속에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기계 돌아가는 소음과 오일 미스트 냄새에서 간신히 벗어나 집 거실 바닥에 몸을 눕혔을 때, 비로소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던 참이었습니다. 화면 속 주인공 판수는 글자 하나 읽지 못하는 까막눈으로 등장하더군요. 먹고살 길이 막막해 조선어학회 대표인 정환의 가방을 훔치려 들고, 당장 제 식구 입에 풀칠하는 것 말고는 세상만사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남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밥벌이에 치여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조차 없는 그 투박하고 거친 몰골이, 당장 이번 달 결제 대금과 납기일에 쫓겨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과 어딘가 모르게 겹쳐 보였습니다. 판수가 쫓기듯 살아가는 그 갑갑한 모습 위로, 제가 젊은 날 기계 앞에서 안간힘을 쓰던 순간들이 겹쳐 지나갔습니다. 영화는 그저 흘러간 옛이야기를 다루는 역사극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라는 서슬 퍼런 압박 속에서도 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니던 한 사내의 팍팍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피곤에 절어 당장 쓰러져 자야 할 몸이었는데도, 채널을 도저히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담뱃갑 은박지와 말모이 종이쪽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우리말 단어를 적어 조선어학회로 보낸 꼬깃꼬깃한 종이쪽지들이 궤짝에 수북이 쌓이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 투박한 종이 조각들을 화면으로 보는데, 불현듯 가슴 한쪽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20대 초반,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처음 CNC 선반과 밀링 머신 앞에 섰던 막내 시절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현장 반장님들이 기술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어깨너머로 곁눈질하며 눈치껏 배워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머니에 수첩을 넣고 다닐 여유도 없어서, 피우다 버린 담뱃갑을 뜯어 안쪽 은박지를 손바닥만 하게 접어 다녔습니다. 기계가 멈추거나 사수가 담배를 피우러 나간 틈을 타, 0.01mm 단위 공차를 맞추는 보정값, 절삭유 물 배합비, 난삭재를 깎을 때 엔드밀 공구 회전수를 볼펜 똥 묻혀가며 그 은박지에 빽빽하게 눌러 적었습니다. 손에 묻은 땀과 검붉은 절삭유 기름때에 글씨가 번지고 뭉개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모은 눅눅한 쪽지들을 퇴근 후 숙소 방바닥에 엎드려 천 원짜리 줄 친 대학 노트에 꾹꾹 눌러 옮겨 적곤 했습니다. 낮에는 기계 소리에 귀가 먹먹하고 귓전에 쏟아지는 사수의 거친 고함을 버텨내느라 넋이 나갔지만, 밤마다 그 노트를 적는 시간만큼은 정신이 또렷해졌습니다. 욕을 먹어가며 주워 모은 그 볼품없는 숫자와 거친 메모들이, 15년이 지난 지금 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가장 단단한 밥줄이 되어 있을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공구함 맨 밑 서랍 구석에는 지금도 그 노트가 처박혀 있습니다. 스프링은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고, 모서리는 손때를 타서 둥글게 닳아 빠졌습니다. 절삭유와 구리스가 떡처럼 엉겨 붙어 원래 표지가 무슨 색이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첫 장을 넘기면 '사수한테 조작 실수로 욕먹음, 회전수 2000 절대 넘기지 말 것' 같은 거친 낙서와 자책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살면서 이사를 너덧 번 다니며 낡은 짐과 옷가지는 가차 없이 버렸지만, 그 낡은 공책만큼은 도저히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고 다녔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궤짝에 모아둔 그 낡은 종이쪽지들이, 제게는 바로 그 낡아빠진 기름 묻은 노트처럼 보였습니다.
말 한마디를 모으는 일, 쇳덩이를 깎아내는 일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조선총독부의 탄압은 숨이 막힐 정도로 거세졌습니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모아둔 원고를 지키려고 사람들이 도망치고, 맞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솔직히 기술자로 살아온 제 눈에는, 당장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생기는 것도 아닌 글자 몇 개 지키겠다고 저렇게까지 목숨을 내던지는 모습이 처음에는 미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 같았으면 내 새끼들 배 곯지 않게 하는 게 먼저라며 도망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판수나 학회 사람들이 대단한 독립운동가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으려고,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틴 것에 가까웠지요. 내 아이들이 쓸 말, 우리가 우리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밑천을 남겨두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겉보기엔 그저 종이 뭉치에 불과한 단어들이었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한 도구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셈입니다. 공장에서 도면을 받아 가공 프로그램을 짤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도면 위의 수치들은 그저 차가운 선과 소수점 몇 자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선 하나,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를 맞추기 위해 기계 앞에 서서 칩을 털어내고 치수를 반복 측정하는 그 지난한 반복이 모여 결국 하나의 온전한 부품이 완성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바닥에서 묵묵히 제 손을 거쳐 가는 그 쇳덩이들이 모여 거대한 자동차가 달리고 비행기가 뜨는 것처럼, 영화 속 사람들이 지켜낸 투박한 사투리와 단어 조각들도 결국 세상을 지탱하는 거대한 바닥돌이었던 것입니다.
새벽 2시 반, 아이 공책의 몽당연필
새벽 2시 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의 흰 자막들이 검은 화면 위로 다 올라갈 때까지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끄자 집 안에는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만 낮게 울렸습니다. 조용히 일어나 아이들 방 문을 살며시 열어보았습니다. 이불을 걷어차고 곤히 잠든 두 녀석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작은 녀석의 알림장 공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 옆에는 연필깎이로 깎다 깎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 짧아진 몽당연필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공책을 펼쳐보니 삐뚤빼뚤하게 눌러쓴 '오늘 아빠랑 자전거 탓다'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받침이 틀린 그 투박한 글씨를 거친 손가락 끝으로 조용히 덧그려 보았습니다. 손끝에 연필심의 까칠한 감촉이 그대로 닿았습니다.
뭉툭한 몽당연필을 기름때가 깊게 박여 거뭇해진 제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작업복을 꿰어 입고 공장으로 출근해야 합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 굉음 속에서 기름 냄새를 맡으며, 빡빡한 납기와 불량률을 맞추려 모니터와 씨름하는 하루가 또 시작될 것입니다. 서너 시간 뒤 공장인데 가슴 밑바닥에서 뜨끈한 힘이 차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내가 단단히 버텨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아주 분명하게 알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