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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베리, 15년 차 정밀가공 기술자가 마주한 생존 공포

by 풍성함 2026. 10. 30.

블랙베리 영화 공식 포스터

기술에 목이 베여 사라진 그 폰의 이름이, 그날따라 남 일 같지 않게 목에 턱 걸려서 홀린 듯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공장 불 끄고 나와서 현관에 주저앉아 안전화를 벗는데, 발바닥부터 욱신거리는 피로가 묵직하게 치고 올라오더군요. 낮에 가공 라인에서 터진 치수 불량 건 때문에 하루 종일 머리통 싸매고 씨름한 뒤였습니다. MCT 모니터 들여다보며 1000분의 5 공차 맞추겠다고 공구 보정값만 수십 번을 고쳐 넣었는데, 새로 들여온 자동 측정기는 버튼 한 번 누르니까 몇 초 만에 오차를 잡아내더군요. 기계 앞에 서 있는데 맥이 탁 풀렸습니다. 어둠침침한 거실에 혼자 웅크려 앉아 멍하니 캔맥주 하나를 땄습니다.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냉장고 컴프레서 도는 웅웅 소리 말고는 집 안 전체가 조용했습니다. 씻지도 못한 작업복에서는 절삭유 냄새랑 쇠 찌꺼기 냄새가 훅 풍겨왔습니다. 넷플릭스 리모컨을 위아래로 무의식중에 굴리다가, 문득 까만 자판이 촘촘하게 박혀 있던 옛날 스마트폰… '블랙베리'라는 글자가 눈에 박혔습니다. 그 시절 한 시대를 호령했던 물건이 어떻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는지, 그 흔한 성공 신화의 몰락담이 왜인지 모르게 제 일터 공기와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 블랙베리, 퇴근 후 우연히 튼 이유

낮에 현장 팀장 녀석과 나눈 대화가 퇴근길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새로 들어올 자동화 설비 라인에 맞춤형 프로그램을 넣으면, 이제 웬만한 형상 가공은 베테랑 손을 거치지 않아도 코드 한 줄로 알아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스물 중반에 공장 바닥에 처음 들어가 칩에 손등 데어가며 기계를 배운 지가 벌써 15년입니다. 오감으로 쇠 깎이는 소리를 듣고 회전수 조절하며 손끝 감각으로 버텨온 세월이었는데… 그 숙련이라는 밑천이 고작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하나 앞에 고철 취급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틀어쥔 영화 <블랙베리>는 단순한 기업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공학도 출신 마이크 라자리디스와 짐 발실리가 만나 세상에 없던 스마트폰을 만들고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집어삼키는 과정이 거칠고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기술 하나만큼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던 엔지니어들의 표정을 보는데, 묘하게 현장에서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기술자들의 굳은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짠 통신 규격과 키보드 방식이 영원한 표준일 거라 굳게 믿고 있더군요. 스티브 잡스가 터치스크린 하나 달린 아이폰을 세상에 던져놓았을 때, 블랙베리 개발진이 모니터 화면을 보며 비웃던 장면은 살갗이 뻣뻣해질 정도로 현실적이었습니다. 자판도 없는 화면에서 배터리가 얼마나 가겠냐며, 통신망에 과부하를 주는 엉터리 물건이라고 깎아내리더군요. 저 역시 5축 복합기나 무인 자동화 가공기가 처음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똑같은 소리를 내뱉었기 때문입니다. 기계 셋팅은 결국 사람 손을 타야 하고 소재 편차는 숙련공 눈썰미가 아니면 못 잡는다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던 제 오만함이 스크린 위로 그대로 겹쳐졌습니다. 결국 기술 시장은 기술자의 자존심 따위는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통신망은 무너져 내리고 주가는 곤두박질치는데도 마이크는 여전히 낡은 방식의 설계 도면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현장에서 새로운 도면 표준이나 CAM 툴이 도입될 때마다 툴툴거리며 예전 방식만 고집하던 제 모습과 판박이 같았습니다. 화면 속에서 그 거대한 기업의 명줄이 잘려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내내, 남 일이 아니라는 무거운 압박감이 목덜미를 짓눌렀습니다.

 

마이크 굽은 등판, 내 야근이 겹쳐 보인 장면

영화 후반부, 회사가 완전히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마이크 라자리디스가 혼자 작업실에 남아 망가진 기계들을 뜯어고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불량품으로 쏟아져 나온 블랙베리 스톰 기기의 소음을 잡겠다고, 돋보기를 쓰고 앉아 양면테이프를 손으로 잘라 부품 틈새에 일일이 덧대는 그 굽은 뒷모습을 보는데 목구멍이 턱 막혔습니다. 회사는 이미 시스템적으로 박살이 났고 시장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는데, 창업자이자 최고 엔지니어라는 사람이 기껏 한다는 짓이 그 조잡한 땜질이었습니다. 그 뒷모습에서 제가 겪었던 수많은 잔업의 밤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납기 날짜는 내일 아침인데 기계 공차가 100분의 2씩 벌어져 나올 때, 공정 설계를 뜯어고칠 시간은 없고 납품은 쳐내야 하니 바이스 밑에 0.02미리짜리 심 테이프를 덧대어가며 억지로 치수를 맞추던 그 비참한 야근들 말입니다. 절삭유에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에어건을 들고 기계 문을 열어젖혀 센서에 묻은 찌꺼기를 불어내며 새벽 3시까지 기계 앞을 지키던 그 미련한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근본적인 공정을 바꾸거나 새로운 툴을 배울 엄두는 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불량을 때우기 위해 테이프를 뜯어 붙이던 제 꼬락서니가 마이크와 무엇이 다른가 싶었습니다. 그가 테이프를 자르던 손길은 장인 정신이 아니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기술자가 부리는 마지막 발악이자 도피에 불과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회사를 세웠던 천재 엔지니어도 세상 판도가 바뀌는 순간 고작 양면테이프나 만지작거리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서늘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조용히 올라갈 때까지 차가운 침묵이 모니터 너머로 내려앉았습니다. 배경음악도 없이 텍스트 몇 줄로 블랙베리의 점유율이 0퍼센트로 떨어졌다는 문구가 떴을 때, 거실 공기는 얼어붙은 것처럼 시렸습니다. 15년 동안 내가 쌓아온 이 기술의 가치도 세상의 규격이 한 번 바뀌면 저 0이라는 숫자처럼 하룻밤 사이에 증발해 버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 어떤 귀신 영화나 재난 영화보다도, 기술의 죽음을 다룬 이 영화가 제겐 훨씬 더 잔인하고 공포스러웠습니다.

 

불 꺼진 방, 새벽 2시 북마크를 열다

영화가 다 끝나고 텔레비전을 껐지만 불 꺼진 거실에서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큰아이 책상 위에 놓인 다음 달 학원비 고지서와 탁상달력에 적힌 주택담보대출 이자 출금 날짜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숨만 쉬어도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생활비와 앞으로 커갈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을 생각하니, 생계에 대한 공포가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내가 이 기계 밥그릇에서 밀려나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나, 그 무거운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 본체 전원을 켰습니다. 모니터 파란 불빛 아래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웹브라우저를 켜고 구석에 처박아둔 즐겨찾기 폴더를 열었습니다. 2~3년 전부터 언젠가는 공부해야지 생각하며 묵혀두었던 5축 복합가공, PLC 자동화 제어, 스마트공장 MES 시스템 교육 사이트 북마크들이 먼지 쌓인 공구처럼 줄지어 나타났습니다. 현장이 바쁘다는 핑계로, 잔업 수당 몇 푼 더 챙겨야 한다는 핑계로 애써 열어보지 않았던 링크들이었습니다. 손톱 밑에 시커멓게 박힌 쇠때를 씻어내지도 못한 채로, 키보드를 두드려 메모장에 기술 용어들을 빼곡하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압 시퀀스 회로, 래더 다이어그램, 5축 틸팅 축 간섭 체크 같은 생소한 단어들을 마주하는데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2~3년 동안 이 북마크들을 묵혀두었던 시간들이, 사실은 변화하는 현실을 애써 외면했던 제 지독한 나태함이자 오만의 증거처럼 보여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내가 익숙한 3축 밀링기 앞에서 안주하는 동안 세상은 이미 저만치 앞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마흔이 넘어 새로운 언어와 복잡한 축 제어 수식을 들여다보려니 머리통이 깨질 것처럼 뻑뻑하고 헛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노안이 슬슬 오는지 작은 화면 글씨는 겹쳐 보이고, 돌아서면 전문 용어 약어를 까먹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 뻑뻑함을 견뎌내지 못하면 몇 년 뒤 내 자리는 공장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위기감이 졸음을 강제로 쫓아냈습니다.

 

그동안 안일하게 묵혀둔 북마크가 매일 밤 피곤에 겨운 제 등짝을 서늘하게 후려치는 생존의 알람시계가 되었습니다. 책상 옆에 붙여둔 아이들 사진을 한 번 쳐다보고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래더 프로그래밍 예제 동영상을 틀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7시까지 현장으로 출근해 기름 묻은 공작물을 만져야겠지만, 퇴근 후에는 다시 이 모니터 앞에 앉아 쇠 냄새 대신 코드와 씨름할 작정입니다. 이 치열한 판바닥에서 기술자로, 그리고 두 아이의 가장으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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