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일주일 동안 밤잠 설치며 기계 앞에서 깎아낸 건 쇠가 아니라 내 뼈마디였고, 그 일은 애초에 우리 같은 기름밥 먹는 기술자들 피땀을 갈아 넣으려고 짜인 각본이었습니다. 영화 <부당거래>를 십 년 만에 다시 틀어놓고 캔맥주 하나 비우는데, 광수대 최철기 반장이나 스폰서 장석구가 얽혀 돌아가는 꼴이 남의 일 같지 않아 헛웃음부터 튀어나왔지요. 위에서는 실적 내놓으라고 목을 조르고, 밑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겠다고 가짜 범인을 만들어 판을 짜는 그 추악한 줄타기가 딱 제가 시화공단 바닥에서 겪었던 그 일과 판박이였기 때문입니다. 자정 넘은 시간, 불 꺼진 현장 사무실에 홀로 남아 CAD 화면의 허연 잔상을 들여다보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집에 들어가면 초등학교 들어간 큰애랑 아직 어린 둘째가 곤히 자고 있고, 식탁 위에는 식은 찌개가 랩에 씌워져 있던 그 시절이었지요. 40대 가장이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를 붙들고 씨름하는 건 다른 거창한 이유가 없습니다. 통장에 찍혀야 할 애들 학원비와 다음 달 갚아야 할 주택담보대출 이자, 그리고 15년 동안 쇳가루 마셔가며 쌓아 올린 내 일에 대한 마지노선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대기업 하청이라는 사람들은 그 절박함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등에 칼을 꽂았습니다.
부당거래 실제 버전, 3축으로 0.01mm 잡기까지
그 일의 시작은 원청 구매팀에서 도면 한 장을 들이밀며 던진 달콤한 제안이었습니다. 5축 머시닝센터로도 형상이 복잡해 공차가 잘 안 나오는 알루미늄 정밀 하우징 단품이었는데, 단가를 후려쳐 놓은 상태라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물건이었지요. 하지만 당시 우리 공장은 일감이 간당간당했고, 물량만 꾸준히 보장해 준다면 어떻게든 공정을 짜서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5축 장비가 없으니 보유하고 있던 일반 3축 가공기로 승부를 봐야 했습니다. 전용 지그를 제가 직접 설계해 깎아 만들고, 가공 공정을 3단계로 정밀하게 쪼개서 클램핑 압력 때문에 자재가 미세하게 휘는 변형량까지 잡았습니다. 열팽창으로 인한 오차를 줄이려고 공장 실내 온도까지 체크해가며 꼬박 일주일을 밤낮없이 기계 옆에서 새웠습니다. 황삭부터 정삭까지 엔드밀 회전수와 이송 속도를 소수점 단위로 튜닝해 가며 마침내 0.01밀리미터 안쪽으로 치수를 완벽하게 가두었지요. 가공 공차가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잡혀 측정실 3차원 측정기 성적서에 파란불이 떴을 때, 솔직히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도 기술자로서 뿌듯한 맛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완벽한 샘플 10개와 함께, 가공 시간과 툴 패스, 지그 세팅 방법까지 A4 6장 분량으로 빼곡하게 정리한 공정기술서를 원청에 넘겼습니다. 샘플 전량이 완벽하게 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열흘쯤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본 양산 발주서가 들어와야 할 타이밍에 날아온 건 계약 진행 불가 통보였습니다. 단가를 개당 2,800원에 치고 들어온 다른 외주 가공 업체가 나타나서 그리로 물량을 넘겼다는 통보였지요. 우리가 뽑아낸 단가는 원자재값과 최소 가공 시간만 고려해도 6,000원이 한계였는데, 2,800원은 깎을수록 적자가 나는 말도 안 되는 숫자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우리가 일주일 동안 피를 말려가며 만든 지그 설계 데이터와 6장짜리 공정기술서를 통째로 그 2,800원짜리 업체에 공짜로 넘겨준 상태였습니다. 샘플 제작비 80만 원은 커녕 지그 제작에 들어간 소재비와 일주일간의 장비 가동 손실 700만 원을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았습니다. 15년 동안 밤새워 기름 묻혀가며 익힌 내 머릿속 노하우가, 서류 몇 장으로 둔갑해 도둑질당한 셈이지요. 영화에서 최철기가 주양 검사와 장석구 사이에서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결국 자기 껍데기까지 다 털리는 꼴을 보면서, 그때 공장 바닥에 팽개쳐졌던 내 지그가 겹쳐 보여 이가 갈렸습니다. 약자라는 위치는 그렇게 누군가의 출세나 원가 절감 실적을 채워주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십상이었습니다.
시흥 바닥 좁다—3번째 전화와 협박
사태를 파악하고 구매팀 담당 대리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첫 번째는 통화 중이라며 끊겼고, 두 번째는 신호가 끝까지 가도 받지 않더군요. 3번째 전화를 걸어서야 귀찮아 죽겠다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도면과 샘플 기술서를 그대로 빼돌려 딴 업체에 넘기는 게 상도덕에 맞는 짓이냐고 따져 물었더니,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말은 적반하장이었습니다. "기분 나쁘신 건 알겠는데, 시흥 바닥 참 좁은 거 아시죠?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다른 거래처 일감도 장담 못 합니다."라는 협박이 숨김없이 튀어나왔지요. 자기들이 한 짓은 명백한 도둑질이면서, 을의 처지인 작은 임가공 공장의 목줄을 쥐고 흔들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이틀 뒤에는 아예 작정하고 불량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전량 치수 합격 도장을 찍어놓고 납품 완료 처리까지 끝냈던 지난달 부품 서류철을 들고 공장으로 찾아왔습니다. 구매팀 대리는 현장 기름때 묻은 작업대 위에 서류철을 툭 던지더니,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찍힘 자국을 핑계 삼아 전량 불합격 처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기존 납품 대금까지 묶어버리겠다는 노골적인 보복이었지요. 그 대리가 비아냥거리며 차를 타고 빠져나간 뒤, 머리 희끗희끗한 우리 공장 사장님이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 마당 구석 시멘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쉰을 훌쩍 넘긴 양반이 담배 한 대를 물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어서 네 기술을 지켜주지 못했다"라며 고개를 푹 숙이는데,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제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최철기 반장이 경찰 배지 달고도 검사 앞에서 고개 조아리고 무릎 꿇던 굴욕이 바로 이런 것이었겠지요. 내 처자식 밥통이 저 사람 손끝에 달려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앞에서 침을 뱉어도 닦아내야 하는 게 하청 인생의 현실이었습니다.
음료수 들고 재등장, 합격도 못 시키는 기술자
세상이 아무리 썩어 돌아가도 기계와 금속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딱 두 달 걸렸습니다. 지그와 공정표를 공짜로 가로채고 2,800원에 제품을 깎겠다던 그 대단한 업체에서 대형 사고를 친 것입니다. 3축 기계에서 공차가 잡히는 원리도 모르고 그저 우리가 넘겨준 툴 패스만 무작정 돌려대니, 가공 열 때문에 열 변형이 생겨 3천 개 납품 물량 중 절반 이상이 불량으로 터져버렸습니다. 원청의 본사 메인 조립 라인이 부품 수급 불량으로 멈춰 서기 직전까지 갔고, 라인 정지 페널티가 분당 수백만 원씩 떨어진다는 비명이 들려왔지요. 그 잘난 구매팀 대리가 노란 비타민 음료수 두 박스를 양손에 들고 우리 공장 문을 다시 열고 들어왔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굽신거리는 꼴을 보는데,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고 기가 찼습니다. "사정이 급해서 그러니 이전 지그를 조금만 손봐서 이번 주말까지 천 개만 긴급으로 쳐달라"며 통사정을 하더군요. 불과 두 달 전 시흥 바닥 좁다며 협박하던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장님이 나서기 전에 제가 장갑을 벗어 던지고 작업대 앞으로 걸어 나가 그 대리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도면 치수 하나 제대로 합격도 못 시키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물건 망쳐놓고, 이제 와서 남의 공장을 어떻게 손보라고 음료수를 들고 옵니까? 깎을 줄 아는 사람한테 맡겼어야지, 왜 날로 드시려다 체하셨습니까." 그 말을 듣고 굳어버린 대리 발밑으로, 사장님이 음료수 박스를 발로 툭 밀어내며 소금 뿌리듯 공장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허둥지둥 쫓겨나면서 흘리던 당황한 눈빛을 보는데, 떼인 샘플비 10원 한 푼 못 받았어도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매출 30% 증발, 반도체 장비 단품으로 다시 선
날 그 일로 인해 우리 공장은 당장 전체 매출의 30%가 공중으로 증발해 버렸습니다. 당장 돌아오는 결제 대금과 다음 달 직원들 월급을 맞추느라 서너 달 동안 피가 마르는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습니다. 집에서는 아내가 장보는 비용을 줄이고, 저 역시 매일 마시던 믹스커피까지 줄여가며 허리띠를 졸라맸지요. 하지만 비굴하게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가짜들에게 휘둘리며 깎아내릴 바에는, 차라리 우리 손으로 새로운 판을 짜는 게 맞았습니다. 우리는 그 썩은 자동차 1차 벤더와의 거래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정밀도가 훨씬 까다롭지만 단가 후려치기는 없는 반도체 장비 단품 가공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0.005밀리미터 수준의 평탄도와 표면 거칠기를 요구하는 반도체 부품 도면을 들고 밤샘 가공 테스트를 거듭했습니다. 실력만 확실하면 인정해 주는 진짜 시장에 우리 기술을 증명해 보였고, 서서히 공장 가동률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나중에 건너 건너 들려온 소식으로는, 라인을 멈춰 세워 회사에 수억 원대 손실을 입힌 그 구매팀 대리는 한직으로 밀려나 지방 물류창고로 좌천되었다고 하더군요. 영화 결말에서 썩은 놈들이 지들끼리 물고 뜯다 끝장난 것처럼, 부당하게 짠 판 위에서 남을 밟고 서려던 자들은 결국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 파멸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반면 우리는 그 진흙탕 속에서도 기술 하나 믿고 버텨내어, 정밀 반도체 가공 라인을 꿋꿋하게 살려냈습니다.
쇠는 깎다가 부러지면 다시 깎으면 되지만, 15년 기름밥 먹은 기술자 자존심까지 헐값에 넘겨주면 우리는 그냥 시체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알람은 울릴 것이고, 저는 또 소수점 세 자리 도면을 들고 쇳가루 날리는 기계 앞에 서서 0.001밀리미터와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내 실력에 부끄러움이 없고 내 가족 앞에 당당하다면, 어떤 더러운 거래가 판을 쳐도 기술자는 자기 자리에서 살아남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