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밀수, 기름때 묻은 15년 차 기술직 가장의 한숨

by 풍성함 2026. 10. 29.

밀수 영화 공식 포스터

 

숨비소리가 퇴근길 몰아쉬는 한숨 소리랑 똑같이 들렸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공장 셔터를 내리고 차에 올라탔는데, 운전대를 잡은 손귀가 덜덜 떨리더군요. 이번 주 내내 반도체 지그 플레이트 가공 공차를 100분의 1밀리미터 단위로 맞추느라 머릿속 회로가 타버리기 직전이었습니다. CAM 화면에서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려도 툴 마모 때문에 치수가 계속 튀어버리니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선 상태였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온 집안이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거실 불도 다 꺼진 채로 아이들 방 문틈으로만 희미한 수면등 불빛이 새어 나왔지요. 발소리를 죽여가며 작업복 바지를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었습니다. 비누칠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목덜미와 손목 안쪽에서는 찌든 수용성 절삭유 냄새가 가시지를 않더군요. 씻고 나와서 멍하니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유통기한 임박한 캔맥주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복잡한 계산이나 골치 아픈 생각은 조금도 하기 싫어서, 그냥 소파 구석에 몸을 파묻고 리모컨을 눌렀습니다.

 

밀수 보게 된 날, 잔업 며칠에 절삭유 냄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연달아 4일 동안 잔업을 뛰었습니다. 낮에는 원자재 입고 검수하랴, 현장 오퍼레이터들이 치수 안 나온다고 부르는 통에 MCT 베드 위를 기어 다니며 공구 보정값 수정하랴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해가 지고 현장 기계들이 멈추면 그제야 제 자리에 앉아 CAM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모니터 속 3D 모델링 형상 위로 엔드밀 경로를 촘촘하게 엮어 넣다 보면 눈알이 뻑뻑해져서 모니터 잔상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곤 합니다. 그렇게 며칠을 내리 굴렀더니 온몸의 뼈마디가 삐걱거렸습니다. 손가락 관절 사이사이에는 쇠가루가 박혀서 씻어도 씻기지 않는 거무튀튀한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밥을 씹어 삼킬 기운조차 없어서 저녁도 대충 컵라면 하나로 때웠던 터라 위장은 헛돌고 머릿속은 멍하더군요. 이런 날에는 머리를 써야 하는 복잡한 스릴러나 교훈을 주려는 드라마는 딱 질색입니다. 그냥 눈앞에서 시원하게 때려 부수고 화면이나 화려한 걸 틀어놓고 넋을 놓고 싶었습니다. 화면에 뜬 수많은 목록 중에서 영화 '밀수'를 골랐던 건 정말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바다가 배경이라니 파란 물이라도 보면 눈에 박힌 절삭유 연기랑 쇳가루 잔상이 좀 씻겨 내려갈까 싶었습니다. 배우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나오는 레트로 분위기의 포스터도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보기에는 제격으로 보였습니다. 캔맥주를 탁 따서 한 모금 넘기며, 120여 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바보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있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군천 앞바다의 물길이 화면을 채우자마자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장 폐수가 쏟아져 들어와 바지락과 해산물이 썩어 나가고, 먹고살 길이 막힌 해녀들이 뱃머리에 둘러앉아 웅성거리는 모습은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래처 단가 후려치기에 치이고 환경 규제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던 주변 임가공 사장들의 한숨 섞인 얼굴들이 뜬금없이 겹쳐졌습니다. 머리를 비우려고 튼 화면이 오히려 현실의 무게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었습니다.

 

밀수 숨비소리, 퇴근길 한숨 소리랑 똑같았다

물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밧줄을 부여잡고 숨을 참아내는 해녀들의 모습이 화면 가득 잡혔습니다. 폐가 터질 것 같은 한계에 도달해서야 수면 위로 고개를 쑥 내밀며 내뱉는 그 길고 거친 숨소리가 거실 공기를 울렸습니다. 숨비소리가 퇴근길 몰아쉬는 한숨 소리랑 똑같이 들렸습니다. 공장 작업대 위에 기대서서 납기일 달력을 노려보다가 저도 모르게 땅이 꺼져라 내쉬던 그 깊은 한숨과 파장이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물속이나, 숨 가쁘게 기계를 돌리지 않으면 처자식 밥줄이 끊기는 공장 바닥이나 매한가지였습니다. 조춘자와 엄진숙의 거칠어진 손을 비춰줄 때는 나도 모르게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게 되더군요. 손톱 밑 시커먼 쇠때랑 해녀 굳은살 손이 겹쳐 보였습니다. 가공 후 날카로운 버(Burr)를 제거하다가 칩에 긁혀 굳은살이 박이고, 틈새마다 기름때가 박혀 아무리 솔질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제 손이 떠올랐습니다. 20대 초반 기름 냄새 진동하던 공장 바닥에서 선반 척 핸들을 돌리며 배웠던 기술이 15년이 흘렀지만, 결국 몸으로 때워 밥벌이를 해내는 사람들의 손이란 바다나 육지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해녀들은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차가운 바닷속 암흑 속으로 몸을 던져 밀수품 상자를 건져 올립니다. 목숨을 담보로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니며 금괴를 끌어올리는 건 그들의 몫인데, 번지르르한 양복을 빼입은 권 상사나 야비하게 줄을 타는 장도리 같은 인간들이 그 피땀을 너무나 손쉽게 가로채 갑니다. 저 사람들은 저 차가운 물속에서 허파가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고 있는데, 돈은 엉뚱한 자들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가는 꼴을 지켜보고 있자니 목구멍 안쪽에서 쓴물이 넘어왔습니다. 목숨 걸고 판 깔면 배 채우는 놈들은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에 서늘한 쓴맛이 혀끝을 찔렀습니다. 우리네 제조업 하청 생태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밤낮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해가며 불량률 제로에 가깝게 맞춰 납품 상자를 실어 보내도, 원청 결재판 한번 넘어가면 단가는 깎여 나가기 일쑤입니다. 통장에 스쳐 지나가는 월급은 늘 빠듯하고, 위험과 책임은 밑바닥에서 기름 묻히는 사람들이 온전히 짊어집니다. 영화 속 군천 바다의 물길 아래 깔린 먹이사슬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차가운 기계실 바닥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자 술맛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습니다.

 

맥주 반 캔 싱크대에 쏟은 밤

시원하게 들이켜려던 맥주는 반도 마시지 못한 채 식어버렸습니다. 냉기가 빠져 밍밍해진 캔맥주를 들고 주방으로 걸어가 싱크대에 쏟아버렸습니다. 거품 섞인 누런 액체가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찬물을 틀어 얼굴을 거칠게 문질러 씻었습니다. 차가운 물기가 뺨에 닿자 피로에 짓눌려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조금은 또렷해졌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붉게 충혈된 눈과 축 처진 턱살을 달고 있어 영락없는 40대 중년 노동자였습니다. 물기를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조용히 아이들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첫째 녀석은 이불을 발로 걷어찬 채 벽에 붙어 자고 있었고, 둘째는 베개에 코를 박고 쌕쌕 숨을 고르고 있더군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문제집과 학원 알림장을 집어 들면서 아이들 배 위로 이불을 조심스럽게 여며주었습니다. 매달 나가는 학원비 고지서와 다음 주에 빠져나갈 주택담보대출 이자 출금 문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작은 아이들을 온전히 먹여 살리고 가르쳐야 한다는 그 무거운 무게감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맥주 반 캔 싱크대에 쏟고, 찬물 세수하고 애들 이불 여몄습니다. 방을 나와 어두운 거실을 바라보는데 머리 비우려고 튼 영화가 가슴에 쇳덩어리 얹어놨더군요. 킬링타임 오락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나 날려버리려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이 쇳덩어리의 무게는 영화가 던져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애써 모른 척 덮어두었던 내 삶의 부채들이 영화라는 방아쇠를 당겨 수면 위로 튀어나온 것이었습니다. 통장 잔고의 압박과 내일 또 쳐내야 할 가공 물량의 현실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15년 쇳가루 세월, 해녀 물질이 위로해줬다

영화의 마지막, 그 시퍼런 바닷속에서 해녀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상어와 칼부림 사이를 뚫고 나오는 장면은 질긴 힘을 건네주었습니다. 배신당하고 가진 것을 다 빼앗겨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 즉 물속 깊이 들어가 숨을 참아내고 자맥질하는 그 오랜 기술 하나로 판을 뒤엎어버렸습니다. 수십 년 동안 바다 바닥을 긁으며 몸에 새겨 넣은 그 원초적인 노동의 기억이 결국 그들을 살려낸 셈입니다. 그걸 보면서 지난 15년 동안 쇳가루 마셔가며 버텨온 내 세월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초보 시절 엔드밀 날려 먹고 사수한테 욕바가지로 얻어먹던 날들부터, 치수 안 나와서 밤새 버니어캘리퍼스와 마이크로미터를 쥐고 씨름하던 밤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잔머리나 권모술수보다 현장에서 땀 흘려 다져놓은 정직한 기술자의 손끝 감각이 더 단단한 법입니다. 15년 쇳가루 세월을 해녀들 물질이 묵직하게 위로해줬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을 떠야 하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걸쳐 입어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일 것입니다. 대출 원리금 상환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올 테고 공장의 납기 압박은 줄어들지 않겠지요. 억울하다고 주저앉거나 도망칠 생각은 없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결국 수면 위로 솟구쳐 숨비소리를 내뿜던 그 해녀들처럼, 저 역시 제 작업대 앞을 묵묵히 지켜낼 것입니다.

 

그래서 나한테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물이 아니라, 밑바닥 노동의 무게를 버텨내는 자들의 처절한 자맥질이었습니다. 차가운 물속에서도 끝내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던 그 악착같은 생명력이 지친 제 등을 가만히 밀어주었습니다. 월요일 다시 기계 앞에 설 작은 오기 하나는 채워줬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