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이큰을 기대하고 골랐는데 리암 니슨이 자동차 시트에 붙어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주말 특근까지 연달아 치르고 들어와 온몸이 젖은 솜처럼 가라앉던 토요일 심야였습니다. 눈꺼풀 안쪽에는 온종일 들여다본 CAD/CAM 모니터의 붉은 가공 경로 잔상이 어른거렸고, 귓가에는 머시닝센터의 고주파 스핀들 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습니다. 복잡한 생각 없이 시원하게 악당들 때려잡는 액션이나 한 편 보며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재생 버튼을 눌렀던 것뿐입니다. 아이들과 아내는 깊이 잠들어 거실에는 어항 기포기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맥주 한 캔을 따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화면을 켜자마자 보인 것은, 총을 든 무적의 해결사가 아니라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운 채 옴짝달싹 못 하는 늙은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무언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채널을 돌릴 힘조차 없어서 그대로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토요일 밤 테이큰, 리암 니슨이 떨고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평범하게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려다 차 밑에 압력 감지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협박 전화를 받습니다. 시트에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바로 폭발한다는 황당한 상황인데, 화면 속 남자의 표정은 결코 황당한 연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건 적을 응징하러 나선 영웅의 결의가 아니라, 내 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험 한가운데 식솔들을 앉혀놓았다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솔직히 그 상황이었으면 저 같아도 악셀 밟을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당장 내 발밑에 폭탄이 있든 없든, 뒷좌석에 내 새끼들 태우고 운전대 잡고 있으면 사소한 덤프트럭 경적 하나에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차는 게 아비 심정이니까요.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풀려다 오히려 명치끝이 뻐근해진 채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습니다. 운전대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가고, 뒷좌석에서 영문도 모른 채 칭얼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백미러로 훔쳐보는 그 심정이 너무 뼈아프게 와닿았습니다.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제 목덜미에 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TV 전원을 끄자마자 거실을 덮친 적막이 유독 숨 막혔습니다. 영화관에서 조명이 켜질 때의 개운함 대신, 공장 셔터를 혼자 닫고 나올 때 느껴지는 무겁고 차가운 공기가 집 안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싱크대로 걸어가 냉수를 컵 가득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찬 물길로도 가슴팍에 얹힌 묵직한 돌덩이는 쉽게 밀려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화면 속 리암 니슨의 떨리는 동공이 제 거실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과 겹쳐 보여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굳은살 손으로 애 머리칼 쓸어준 새벽
물컵을 내려놓고 발소리를 죽인 채 방문을 열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불을 제멋대로 차내고 곤히 잠든 두 녀석의 고른 숨소리가 방 안에 잔잔하게 차 있었습니다. 가공유 냄새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거친 손을 바지에 한 번 문지르고는, 굳은살이 꺼칠꺼칠하게 박인 손가락으로 애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주었습니다. 손끝에 닿는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과 제 손바닥의 딱딱한 굳은살이 너무 대비되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쇳가루 묻혀가며 번 돈으로 이 녀석들 학원비 대고 밥 먹이며 여기까지 버텨왔습니다. 백미러 속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영화 속 아비의 시선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품는 제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작은 것들이 숨 쉬는 한 내일도 차 시동 걸고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공정 잡느라 밤을 새워도, 결국 집으로 돌아와 이 숨소리를 지키기 위해 버티는 게 가장의 일상입니다.
탄소강 5~6킬로, 뺨 반 뼘 옆으로 날아간 날
영화를 보며 유독 가슴이 조여왔던 이유는 제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끔찍한 순간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일을 배운 지 갓 2년을 넘겼던 스물일곱 무렵, 가공 세팅 실수가 났던 그날이었습니다. 직경 15센티에 두께가 30밀리쯤 되는 탄소강 소재였는데, 무게만 족히 5~6킬로그램에 달하는 묵직한 쇳덩이였습니다. 고속 회전 중 바이스 체결이 밀리면서 굉음과 함께 튀어 올랐습니다. 그 쇳덩이는 아크릴 안전 커버를 산산조각 내며 제 뺨 반 뼘 옆을 스치고 날아가 뒤편 공장 벽에 쾅 소리와 함께 박혔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뇌가 완전히 정지했고 공장 안의 모든 소리가 음소거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살이 타는 냄새와 부서진 플라스틱 냄새만 훅 끼쳤습니다. 선배 동료가 사색이 되어 달려와 제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었지만, 저는 시멘트 벽에 푹 파인 구멍만 넋이 빠진 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비껴섰어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거나 평생 불구가 되었을 거리였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뜨거운 쇳덩이를 집게로 집어 올리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도저히 집어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야간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한테도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막 돌을 지난 첫째 녀석이 거실 바닥을 기어 와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웃는데 목이 메어왔습니다. 곤히 잠든 아이의 쪼그만 발을 손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이 자리를 지키겠노라고, 이 작은 것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겠노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그 시절의 서늘했던 공포가 영화 속 차 안의 긴장감과 맞물려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믹스커피 온기, 햇병아리 손으로 넘어가다
그 아찔했던 사고가 지나고 서너 달쯤 흘렀을 때였습니다. 자판기 앞에서 종이컵에 든 믹스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그때 제 어깨를 흔들었던 선배가 옆에 와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살아있으니 커피 맛도 달다, 그렇지?" 그 짧은 말에 종이컵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 피곤해 보이거나 공정이 꼬여 예민해질 때면 아무 말 없이 자판기 믹스커피 한 잔을 뽑아 건넸습니다. 기계 안전 커버를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려주는 게 '정신 바짝 차려라, 다치지 마라' 하는 우리만의 신호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가 지방 다른 공장으로 터전을 옮기고 텅 빈 작업대 앞에 섰던 첫 며칠은 마음이 참 휑했습니다. 전쟁터 같던 기름 바닥을 함께 뒹굴며 서로의 목숨줄을 챙겨주던 동료였기에 빈자리가 유독 컸습니다. 지금도 가끔 비 오는 날 전화가 와서 대뜸 "기계 조심하냐?" 하고 묻는 게 그 녀석의 인사법입니다. 이제는 제가 사무실에서 툴패스를 뽑고 현장 공정을 총괄하는 위치가 되었고, 제 밑으로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들어온 햇병아리 오퍼레이터가 하나 있습니다. 공차가 0.01밀리만 틀어져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쩔쩔매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20대 시절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헤매던 제 모습과 먼저 떠난 동료의 빈자리가 겹쳐 보입니다.
기계 세팅이 꼬여 잔뜩 굳어있는 녀석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쳐줍니다. "천천히 해라. 쇳덩이 망가지는 건 다시 깎으면 되지만 손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탕비실에서 타 온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쥐여주면 그 녀석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쥡니다. 오래전 선배가 제게 쥐여주었던 그 투박한 믹스커피의 온기가 이제는 그 햇병아리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저 작은 것들이 숨 쉬는 한 내일도 차 시동 걸고 버텨야겠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차를 몰아 공장 문을 열고, 오늘도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전화를 고쳐 신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