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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트리뷰션, 운전대 쥔 가장의 식은땀과 현장의 서늘함

by 풍성함 2026. 10. 22.

레트리뷰션 영화 공식 포스터

테이큰을 기대하고 골랐는데 리암 니슨이 자동차 시트에 붙어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주말 특근까지 연달아 치르고 들어와 온몸이 젖은 솜처럼 가라앉던 토요일 심야였습니다. 눈꺼풀 안쪽에는 온종일 들여다본 CAD/CAM 모니터의 붉은 가공 경로 잔상이 어른거렸고, 귓가에는 머시닝센터의 고주파 스핀들 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습니다. 복잡한 생각 없이 시원하게 악당들 때려잡는 액션이나 한 편 보며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재생 버튼을 눌렀던 것뿐입니다. 아이들과 아내는 깊이 잠들어 거실에는 어항 기포기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맥주 한 캔을 따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화면을 켜자마자 보인 것은, 총을 든 무적의 해결사가 아니라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운 채 옴짝달싹 못 하는 늙은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무언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채널을 돌릴 힘조차 없어서 그대로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토요일 밤 테이큰, 리암 니슨이 떨고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평범하게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려다 차 밑에 압력 감지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협박 전화를 받습니다. 시트에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바로 폭발한다는 황당한 상황인데, 화면 속 남자의 표정은 결코 황당한 연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건 적을 응징하러 나선 영웅의 결의가 아니라, 내 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험 한가운데 식솔들을 앉혀놓았다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솔직히 그 상황이었으면 저 같아도 악셀 밟을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당장 내 발밑에 폭탄이 있든 없든, 뒷좌석에 내 새끼들 태우고 운전대 잡고 있으면 사소한 덤프트럭 경적 하나에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차는 게 아비 심정이니까요.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풀려다 오히려 명치끝이 뻐근해진 채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습니다. 운전대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가고, 뒷좌석에서 영문도 모른 채 칭얼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백미러로 훔쳐보는 그 심정이 너무 뼈아프게 와닿았습니다.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제 목덜미에 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TV 전원을 끄자마자 거실을 덮친 적막이 유독 숨 막혔습니다. 영화관에서 조명이 켜질 때의 개운함 대신, 공장 셔터를 혼자 닫고 나올 때 느껴지는 무겁고 차가운 공기가 집 안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싱크대로 걸어가 냉수를 컵 가득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찬 물길로도 가슴팍에 얹힌 묵직한 돌덩이는 쉽게 밀려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화면 속 리암 니슨의 떨리는 동공이 제 거실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과 겹쳐 보여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굳은살 손으로 애 머리칼 쓸어준 새벽

물컵을 내려놓고 발소리를 죽인 채 방문을 열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불을 제멋대로 차내고 곤히 잠든 두 녀석의 고른 숨소리가 방 안에 잔잔하게 차 있었습니다. 가공유 냄새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거친 손을 바지에 한 번 문지르고는, 굳은살이 꺼칠꺼칠하게 박인 손가락으로 애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주었습니다. 손끝에 닿는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과 제 손바닥의 딱딱한 굳은살이 너무 대비되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쇳가루 묻혀가며 번 돈으로 이 녀석들 학원비 대고 밥 먹이며 여기까지 버텨왔습니다. 백미러 속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영화 속 아비의 시선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품는 제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작은 것들이 숨 쉬는 한 내일도 차 시동 걸고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공정 잡느라 밤을 새워도, 결국 집으로 돌아와 이 숨소리를 지키기 위해 버티는 게 가장의 일상입니다.

 

탄소강 5~6킬로, 뺨 반 뼘 옆으로 날아간 날

영화를 보며 유독 가슴이 조여왔던 이유는 제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끔찍한 순간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일을 배운 지 갓 2년을 넘겼던 스물일곱 무렵, 가공 세팅 실수가 났던 그날이었습니다. 직경 15센티에 두께가 30밀리쯤 되는 탄소강 소재였는데, 무게만 족히 5~6킬로그램에 달하는 묵직한 쇳덩이였습니다. 고속 회전 중 바이스 체결이 밀리면서 굉음과 함께 튀어 올랐습니다. 그 쇳덩이는 아크릴 안전 커버를 산산조각 내며 제 뺨 반 뼘 옆을 스치고 날아가 뒤편 공장 벽에 쾅 소리와 함께 박혔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뇌가 완전히 정지했고 공장 안의 모든 소리가 음소거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살이 타는 냄새와 부서진 플라스틱 냄새만 훅 끼쳤습니다. 선배 동료가 사색이 되어 달려와 제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었지만, 저는 시멘트 벽에 푹 파인 구멍만 넋이 빠진 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비껴섰어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거나 평생 불구가 되었을 거리였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뜨거운 쇳덩이를 집게로 집어 올리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도저히 집어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야간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한테도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막 돌을 지난 첫째 녀석이 거실 바닥을 기어 와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웃는데 목이 메어왔습니다. 곤히 잠든 아이의 쪼그만 발을 손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이 자리를 지키겠노라고, 이 작은 것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겠노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그 시절의 서늘했던 공포가 영화 속 차 안의 긴장감과 맞물려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믹스커피 온기, 햇병아리 손으로 넘어가다

그 아찔했던 사고가 지나고 서너 달쯤 흘렀을 때였습니다. 자판기 앞에서 종이컵에 든 믹스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그때 제 어깨를 흔들었던 선배가 옆에 와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살아있으니 커피 맛도 달다, 그렇지?" 그 짧은 말에 종이컵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 피곤해 보이거나 공정이 꼬여 예민해질 때면 아무 말 없이 자판기 믹스커피 한 잔을 뽑아 건넸습니다. 기계 안전 커버를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려주는 게 '정신 바짝 차려라, 다치지 마라' 하는 우리만의 신호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가 지방 다른 공장으로 터전을 옮기고 텅 빈 작업대 앞에 섰던 첫 며칠은 마음이 참 휑했습니다. 전쟁터 같던 기름 바닥을 함께 뒹굴며 서로의 목숨줄을 챙겨주던 동료였기에 빈자리가 유독 컸습니다. 지금도 가끔 비 오는 날 전화가 와서 대뜸 "기계 조심하냐?" 하고 묻는 게 그 녀석의 인사법입니다. 이제는 제가 사무실에서 툴패스를 뽑고 현장 공정을 총괄하는 위치가 되었고, 제 밑으로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들어온 햇병아리 오퍼레이터가 하나 있습니다. 공차가 0.01밀리만 틀어져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쩔쩔매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20대 시절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헤매던 제 모습과 먼저 떠난 동료의 빈자리가 겹쳐 보입니다.

 

기계 세팅이 꼬여 잔뜩 굳어있는 녀석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쳐줍니다. "천천히 해라. 쇳덩이 망가지는 건 다시 깎으면 되지만 손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탕비실에서 타 온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쥐여주면 그 녀석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쥡니다. 오래전 선배가 제게 쥐여주었던 그 투박한 믹스커피의 온기가 이제는 그 햇병아리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저 작은 것들이 숨 쉬는 한 내일도 차 시동 걸고 버텨야겠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차를 몰아 공장 문을 열고, 오늘도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전화를 고쳐 신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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