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31대 0이라는 충격적 상처
- 패배주의를 깨부수는 공조
- 인생이라는 경기에서의 진짜 승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상 가장 비참한 패배를 당했다면, 과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영화 넥스트 골 윈즈는 피지와의 경기에서 무려 '31대 0'이라는 스코어로 패하며 축구 역사상 최악의 패배라는 오명을 쓴 아메리칸사모아 국가대표 축구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만년 꼴찌 팀이 단 한 골이라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목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봤을 때 경기장 위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환하게 웃는 선수들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단순한 스포츠 승리 스토리가 아니라, "넘어지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픔"이라는 인간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진짜 축구 경기에서 31골이나 차이가 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호기심과 함께,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줄지 강한 궁금증을 자아내며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31대 0이라는 충격적 상처
영화의 시작은 깊은 상처와 패배감에 젖어 있는 아메리칸사모아 팀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들은 경기마다 대패를 거듭하며 피파(FIFA) 랭킹 최하위에 머물러 있고, 선수들은 물론 온 섬 전체에 "우리는 어차피 안 돼"라는 깊은 무력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팀이 가진 깊은 낙담과 아메리칸사모아 섬의 평화롭지만 정체된 분위기를 대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낙천적인 섬의 풍경과 선수들의 무기력한 움직임을 한 화면에 담는 미장센 기법을 활용합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카메라 화면 속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이나 의상, 배경, 소품 등을 배치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자연환경 속에서도 패배의 트라우마에 갇혀 기를 펴지 못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이들이 처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이기는 법을 잊어버린 이들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짠한 통증을 안겨줍니다.
패배주의를 깨부수는 공조
이 노답인 상황에 해결사로 투입된 인물이 있으니, 바로 다혈질 성격 탓에 미국 축구협회에서 사실상 퇴출당해 억지로 이 섬의 감독을 맡게 된 '토마스 로간'(마이클 패스벤더 분)입니다. 불같은 성격의 백인 감독과 매사 천하태평하고 낙천적인 폴리네시아 문화권의 섬마을 선수들은 첫 만남부터 삐걱거리며 거대한 문화적 충돌을 겪게 됩니다. 로간 감독은 무너진 팀의 기강을 잡기 위해 지옥 훈련을 시작하지만, 선수들은 훈련보다 삶의 즐거움과 공동체의 화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영화는 이 상반된 두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의 팀으로 묶여가는 과정을 뻔한 스포츠 영화의 클리셰를 비틀며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여기서 클리셰란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쓰여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장면이나 고정된 전개 방식을 말합니다. 감독은 이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잊고 있었던 축구의 본질을 배우고, 선수들은 감독의 체계적인 지도 아래 패배주의를 깨부수기 시작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연출은 억지 감동을 쥐어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만듭니다. 이때 "실제 저렇게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단기간에 조직력을 다지는 게 가능할까?" 하는 현실적인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영화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공조를 통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나갑니다.
인생이라는 경기에서의 진짜 승리
마침내 다가온 월드컵 예선전, 아메리칸사모아 팀은 숙적 통가와의 경기에 나섭니다. 전반전에 선제골을 내주며 또다시 과거의 악몽이 살아나는 듯했지만, 하프타임 때 감독과 선수들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각성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염원하던 역사적인 '첫 골'이 터지는 순간, 경기장은 물론 극장 안은 거대한 환호성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영화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분석에 따르면, 이 작품은 특유의 유머와 위트를 지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따뜻한 힐링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출처: 로튼 토마토). 비록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거창한 기적은 아닐지라도,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는 이들의 엔딩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물합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란 마음속에 쌓여 있던 슬픔, 두려움, 답답함 같은 나쁜 감정들이 무언가를 계기로 한꺼번에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한 시원한 기분을 의미합니다. 경기가 끝난 뒤 서로를 껴안는 선수들의 모습은 진정한 승리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이겨내는 것임을 증명해 줍니다(출처: IMDb).
한 골을 넣고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듯이 엉겨 붙어 울부짖던 선수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자꾸만 생각나 제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주변의 잘나가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 혼자만 끝없는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주변의 차가운 평가를 감당해야 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자책감에 빠져 한동안 새로운 도전은커녕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그때 저를 일으켜 세운 건 대단한 성공의 타이틀이 아니라, "결과가 어떻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한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던 가족의 한마디였습니다. 거창한 1등이 아니더라도, 내 삶의 작은 목표를 향해 다시 발을 내딛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넥스트 골 윈즈는 우리에게 늘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꼴찌라도 괜찮으니 삶의 즐거움을 잃지 말라고 다정하게 속삭여주는 영화입니다. 31대 0이라는 절망적인 스코어 앞에서도 다시 운동화 끈을 묶었던 그들의 무모한 도전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진한 사람 냄새 가득한 위로를 건네주는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