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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주기행, 정밀가공 기술자 가장이 마주한 서늘한 공포

by 풍성함 2026. 10. 8.

경주기행 영화 공식 포스터

명치끝에 시루떡을 얹어놓은 것처럼 가슴이 꽉 막혀 마른침만 삼켰습니다. 영화 경주기행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잔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기름 냄새와 절삭유 절인 옷을 세탁기에 쑤셔 넣고, 대충 물만 끼얹은 채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습니다. 낮 동안 머시닝센터 모니터에서 눈이 빠져라 쳐다보던 소수점 셋째 자리 좌표 잔상이 시야에 아른거렸습니다.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쉴 요량으로 리모컨을 집어 들었습니다. 피로에 절어 잠을 청하려다 눈에 들어온 제목이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경주기행, 팝콘 들고 틀었다가 마른침만 삼켰다

처음엔 그저 경주로 떠나는 모녀의 힐링 여행이나, 흔하디흔한 권선징악 통쾌한 복수극 정도로 넘겨짚기 십상입니다. 포스터의 색감이나 '기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여유에 속아 넘어가기 딱 좋습니다. 저 역시 머리나 식힐 생각으로 냉동실에서 맥주 한 캔 꺼내놓고 가볍게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맥주가 그대로 얹히는 기분이었습니다. 팝콘 씹으며 편하게 지켜볼 오락거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살해당한 막내딸의 복수를 위해 가해자가 출소하는 날 경주로 향하는 엄마 옥실과 남겨진 세 딸의 여정은, 시작부터 차가운 쇳가루를 들이마신 것처럼 목 안쪽을 긁어댔습니다. 영화가 화면에 들이미는 감정은 통쾌함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습니다. 가해자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달려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처절하다 못해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된 정교한 복수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산산조각 난 일상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한 가족의 뼈아픈 몸부림만 뒹굴 뿐이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던 손가락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스크린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그 짙은 그늘에 짓눌려 캔을 쥔 손에 힘이 풀렸고, 씁쓸한 마른침만 몇 번이고 억지로 들이켰습니다.

 

현장 20년, 쇳덩이 튀던 그날과 스크린이 겹쳤다

스물네 살, 아무것도 모르고 기름통 나르던 막내 시절의 기억이 불쑥 치고 올라왔습니다. 공작기계 회전축이 분당 만 번을 넘게 돌며 쇳덩이를 깎아내던 어느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척 세팅이 미세하게 틀어졌던 건지, 가공물이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갔습니다. 쇳덩이가 아크릴 방호창을 산산조각 내며 찢고 튀어나와 반장님이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딱 10센티미터 차이였습니다. 기계가 비상 정지되고 공장 안의 소음이 일시에 꺼졌을 때,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치우던 제 비질하는 손이 떨려 빗자루를 두 번이나 떨어뜨렸습니다. 0.01밀리미터 공차를 다투는 기계는 사람 목숨 따위엔 눈곱만큼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배운 날이었습니다. 그날 퇴근하고 자취방으로 돌아갔을 때의 공기가 떠올랐습니다. 현관 바닥에 신발도 못 벗고 멍하니 벽만 쳐다봤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눈 깜빡할 찰나의 실수 하나로 끝장난다는 공포였습니다. 경주기행 속 가족이 겪은 비극도 그랬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평온하던 집안의 중심축이 부러져 나갔고, 남겨진 사람들은 깨진 파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가공 프로그램에서 G코드 한 줄 잘못 입력하면 수천만 원짜리 금형이 박살 나듯, 세상의 악의는 아무런 맥락 없이 일상을 통째로 짓밟아버립니다. 기계 앞에서 손가락 하나 날아가는 것보다, 내 아이들과 아내의 평온한 하루가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상상이 훨씬 더 끔찍하게 목을 조여옵니다. 옥실의 가족을 보며 제 현장의 그 서늘했던 방호창 파편이 겹쳐 보였습니다.

 

옥실의 눈빛, 영혼 밑바닥까지 타버린 표정

스크린 속 배우 이정은이 연기한 옥실의 얼굴은 연기가 아니라 그냥 살아남은 자의 흉터 그 자체였습니다. 영혼 밑바닥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처절한 표정이었습니다. 눈동자에 분노가 이글거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재 구덩이 같은 눈빛인데,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금이 저려왔습니다. 상대를 찢어발겨도 내 새끼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내달리는 서슬 퍼런 집념이었습니다. 기계가 먹통이 되어 완전히 타버린 모터처럼, 이미 동력은 끝났는데 관성으로 억지로 축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통쾌한 응징 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그 어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찾아가 칼을 쥐려는 그 고집은, 복수가 아니라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딸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고역이었습니다. 숨이 턱 막히면서 목구멍이 뜨거워졌습니다. 매달 나가는 아파트 담보대출 원리금, 치솟는 아이들 학원비 고지서, 납기 맞추느라 밤샘 가공 돌리며 축나는 몸뚱이 따위는 이 처절함 앞에선 사치스러운 투정에 불과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파산은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할 자식의 자리가 영원히 비어버리는 일이라는 걸 그 텅 빈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에게 세상의 도덕이나 법 같은 건 아무런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옥실의 무너진 어깨와 거친 손마디를 보면서, 우리 공장 기계에 찍혀 굳은살이 박인 제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지킬 게 있는 인간이 무너질 때 어디까지 황폐해질 수 있는지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화면 꺼지고 거실 불도 못 켰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화면이 까맣게 꺼진 뒤에도 소파에서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리모컨을 쥔 채 멍하니 검은 화면에 비친 제 피곤에 절은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온 집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등을 켜야 하는데, 거실 불 스위치에 손 올리기가 두려웠습니다. 불을 켜면 환하게 드러날 거실 풍경,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과 숙제장, 아침이면 다시 마주해야 할 빡빡한 현실들이 너무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었습니다.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습니다. 찬물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미동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40대 기술자의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방문을 살며시 열고 안방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불을 턱 밑까지 덮어주고 나오는데 턱 끝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스무 살엔 내 몸 다칠까 두려웠는데, 마흔둘엔 식구들 울타리 깨질까가 몇 배 더 무섭습니다.

 

영화가 던져놓은 서늘한 잔상이 가시지 않는 밤이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다시 6시에 알람을 맞추고 안전화를 신어야 합니다. 소수점 한 자리 오차도 없이 기계를 돌리고 납기를 맞춰야 이 작고 소중한 방 한 칸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요. 가장이라는 자리는 감상에 젖어 주저앉아 있을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동여매듯 마음을 다잡고 잠자리에 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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