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모르게 우리 집 현관 쪽을 힐끔 쳐다보게 됐다. 주말 밤, 아이들과 아내가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 영화 [원정빌라]를 보다가 마주한 서늘한 장면 때문이었다. 낡고 어두운 복도를 배경으로 매일 마주치던 이웃의 눈빛이 순식간에 광기로 뒤바뀌는 그 순간, 헤드폰을 타고 넘어오는 음산한 숨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거실에 홀로 앉아 숨을 죽인 채 화면을 응시하던 나는 낯익은 우리 집 현관문 너머에도 누군가 서성이고 있을 것만 같은 기괴한 착각에 사로잡혀 몇 번이고 문 쪽을 돌아보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원정빌라 보게 된 것, 자정에 불 끄고 헤드폰
주말 일과를 모두 마치고 가족들이 깊은 잠에 빠져든 자정 무렵, 거실 불을 모두 끄고 오롯이 영화에 몰입하기 위해 헤드폰을 귀에 덮어썼다. 평소 현실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장르를 즐겨보는 편인데, 재개발을 앞둔 낡은 빌라라는 설정이 묘하게 시선을 끌어 주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화의 핵심 줄거리는 초등학생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친다. 곧 철거될 예정인 오래되고 음침한 원정빌라 203호에 사는 평범한 청년 주인공이 어느 날 집 문 앞에 꽂힌 불길하고 이상한 전단지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전단지가 빌라 곳곳에 퍼진 이후, 평소 인사를 나누며 평범하게 지내던 이웃 주민들이 마치 사이비 종교나 집단 광기에 홀린 것처럼 하나둘씩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점차 폐쇄적이고 기괴하게 변해가는 빌라 안에서 위험에 처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이 영화의 진짜 무서운 점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귀신이 아니라, 매일 계단에서 마주치던 친숙한 이웃들의 눈빛이 서서히 미쳐 돌아가는 분위기 그 자체였다. 정적만이 감도는 심야에 헤드폰을 통해 전달되는 숨 막히는 침묵과 불길한 소음들은 거실의 공기마저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문정희 눈빛, 현관 힐끔하게 만든 장면
극 중 이웃 주민 신혜 역할을 맡은 문정희 배우의 광기 서린 열연은 압도적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재개발 빌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 억척스럽고 오지랖 넓은 동네 아주머니처럼 보였지만, 빌라에 광기가 번져가면서 보여주는 변화는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특히 친절한 가면을 쓴 채 섬뜩한 미소를 띠며 현관문 틈 사이로 주인공 집 안을 빤히 쳐다보고 집착하는 장면에서는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우리 집 현관 쪽을 힐끔 쳐다보게 됐다. 괴물이나 칼을 든 살인마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옆집 사람이 낯설게 변해 문밖에서 서성인다는 현실 밀착형 공포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 헤드폰을 벗은 뒤에도 새벽 2~3시까지 잔상이 쉽게 가시지 않아 침실로 들어가기 전 괜히 현관문 도어록을 두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친 옆집 주민과 평소처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순간 영화 속 서늘한 눈빛이 겹쳐 보여 속으로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사람의 심리를 밑바닥까지 옥죄어오는 문정희 배우의 소름 돋는 눈빛 연기만큼은 4점 이상을 줘도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원정빌라 오해, 귀신 영화로 넘기기엔 아깝다
제목과 음산한 포스터만 대충 훑어보면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가 난무하는 흔한 B급 오컬트물이나 피 칠갑 귀신 영화로 오해하기 딱 좋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이 작품은 귀신이 아니라 재개발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욕망과 불안이 폐쇄된 빌라에 갇히면서 이웃들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를 다룬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잔기술에 기대지 않고 서서히 조여오는 서스펜스를 묵직하게 쌓아 올리기 때문에, 그냥 흔한 귀신 영화로 넘겨버리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회사 점심시간에 이 영화 이야기를 꺼냈더니 일상 공포를 좋아하는 동료 한 명이 오늘 밤 바로 보겠다며 제목을 휴대폰에 메모해 가기도 했다. 반면에 평소 현실적인 공포나 찝찝한 미스터리를 유독 무서워하는 와이프한테는 절대 추천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봤다가는 며칠 동안 밤마다 복도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무섭다며 잠을 못 잘 게 뻔했기 때문이다.
5점 만점에 3.5점, 후반 개연성에서 깎였다. 초중반의 서늘한 긴장감에 비해 후반부 전개가 다소 급하게 휘몰아치며 설득력이 약해진 점은 아쉽지만, 늦은 밤 불 끄고 혼자 오싹한 현실 서스펜스를 즐기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