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무파사 죽는 거 아니지?" 아홉 살 둘째가 거대한 홍수와 사나운 맹수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위험한 장면에서 잔뜩 굳은 얼굴로 내 팔을 와락 붙잡으며 내뱉은 한마디였다. 주말 저녁, 거실 테이블에 팝콘과 과자를 한가득 차려놓고 조명을 은은하게 낮춘 채 아홉 살, 열두 살 두 아이와 함께 영화 [무파사: 라이온 킹]을 틀었다. 어릴 적 가슴 뛰게 보았던 명작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내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숨죽이며 지켜보는 그 시간은, 단순한 만화 관람을 넘어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인 내 마음에 묵직하고 뜨거운 울림을 안겨주었다.
어릴 땐 심바, 이제는 무파사가 보인다
초등학생 시절 극장에서 처음 마주했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떠올려보면, 그저 흥겨운 음악에 맞춰 "하쿠나 마타타"를 신나게 따라 부르고, 귀여운 아기 사자 심바가 시련을 이겨내며 악당을 물리치는 통쾌한 모험에 열광하는 것이 전부였다. 화려한 볼거리와 신나는 멜로디 뒤에 숨겨진 어른들의 고뇌나 희생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마주한 [무파사: 라이온 킹]은 전혀 다른 결의 감정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초등학생 아이도 한눈에 쏙쏙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다. 거대한 폭풍우에 휩쓸려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어린 고아 사자 무파사가 왕실의 핏줄을 타고난 어린 왕자 타카를 만나 형제처럼 자라나고, 서로 다른 운명과 선택 속에서 수많은 위기와 시련을 겪으며 진정한 프라이드 랜드의 왕이자 위대한 아버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장엄하게 그려낸다.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왕관을 쓰고 태어난 줄 알았던 무파사가, 사실은 혈통도 없는 고아로 버려져 온갖 결핍과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무리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버텨냈다는 그 고단한 성장 여정이 낯설지 않았다. 매일 삶의 거친 파도 속에서 한 가정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내 일상과 무파사의 삶이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터진 두 녀석의 반응
거실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두 녀석의 서로 다른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영화 자체만큼이나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아홉 살 둘째는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고 맹수들이 으르렁거리는 긴박한 순간마다 내 팔을 꽉 붙잡고 "아빠, 무파사 죽는 거 아니지?"라며 연신 긴장된 눈빛을 쏟아냈다. 반면에 제법 의젓하게 자란 열두 살 첫째는 화면을 진지하게 응시하더니, 훗날 스카가 되는 타카가 질투와 섭섭함에 눈이 멀어 점차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며 "아빠, 타카가 불쌍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라며 인물의 복잡한 속마음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특히 둘째 녀석이 겁을 먹고 내 팔을 꼭 붙잡았을 때, 팔에 닿는 그 작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찡하게 뭉클해졌다. 아홉 살 아이가 무서울 때마다 주저 없이 기댈 수 있는 존재, '아, 내가 이 아이한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안전한 울타리구나' 하는 깨달음이 번쩍 머리를 스쳤다. 무서워하는 아이의 어깨를 지그시 감싸 안아주며 토닥이는 순간,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무리를 품어내던 무파사의 책임감이 고스란히 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도어록 누르는 순간, 아빠로 돌아온다
사실 매일 반복되는 회사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하루 종일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 가득한 현장에서 도면과 치수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하다 보면, 퇴근할 무렵에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녹초가 되어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가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압박감이 퇴근길 발걸음을 무겁게 짓누를 때가 많다. 하지만 피로에 지쳐 집 앞에 도착해 현관문 도어록을 누르고 문을 여는 순간,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피로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지는 마법 같은 전환이 일어난다. 거실에서 "아빠 왔다!" 하고 환하게 웃으며 우르르 달려 나오는 아홉 살, 열두 살 두 녀석의 해맑은 목소리와 웃는 얼굴을 마주하면 굳어있던 얼굴 근육과 굳은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린다. 밖에서는 치열하게 버텨내는 직장인일 뿐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빠의 자리로 온전히 돌아오게 된다. 영화가 모두 끝난 뒤, 벅찬 감정을 마음에 품은 채 두 아이를 따뜻하게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리고 "무파사처럼 살아가다 힘든 순간이나 무서운 일이 생겨도, 아빠랑 엄마가 항상 곁에 있으니까 절대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라는 진심 어린 말을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었다.
보여주길 백번 잘했다, 안 보여줬으면 정말 아쉬웠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재미와 용기를 심어주고, 나 스스로에게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 아이들을 품어내는 아빠로서의 단단한 마음가짐을 다시금 일깨워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삶이 팍팍하고 고단하게 느껴질 때마다 우리 집 거실에서 나눴던 이 따뜻한 온기를 떠올리며 힘차게 걸어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