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들이 다 잠든 깊은 밤, 혼자 불 꺼진 거실에서 OTT로 영화를 보다가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고 씁쓸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제목만 슬쩍 보고 오랜만에 웃으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알콩달콩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옆에 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화면 속 주인공에게 들이닥치는 차가운 시련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밀려왔고, 달콤한 연애 이야기 뒤편에 숨겨진 지극히 날것의 현실과 마주하면서 불 꺼진 거실 안에서 나 혼자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진태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이동휘와 한지은이 호흡을 맞춘 영화 《결혼, 하겠나?》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의 휴식을 즐기려던 평범한 가장의 방심을 서늘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결혼, 하겠나? 첫인상, 불 꺼진 거실에서 등이 서늘해졌다
영화 《결혼, 하겠나?》의 전체적인 뼈대는 초등학생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명확하고도 현실적인 결을 띠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알콩달콩 연애를 이어오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오랜 연인, 예비 신랑 선우(이동휘 분)와 속 깊은 예비 신부 우정(한지은 분)이 이야기의 중심에 섭니다. 번듯한 직장이나 물려받은 넉넉한 유산은 없어도, 서로를 향한 굳건한 신뢰와 사랑 하나만을 밑천 삼아 드디어 결혼식 날짜를 잡으며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출발선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 청천벽력 같은 비극이 인정사정없이 덮쳐옵니다. 양가 상견례를 코앞에 둔 시점에 선우의 아버지 철구(강신일 분)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지며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간 것입니다. 슬퍼하고 좌절할 겨를도 없이, 매일같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환자실 입원비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간병비 영수증이 선우의 숨통을 사정없이 죄어오기 시작합니다.
믿었던 친척과 가족들마저 무거운 간병의 굴레와 빚더미의 짐을 떠안기 싫어 슬그머니 발을 빼며 외면해 버리고, 결국 차가운 병원 바닥에 홀로 남겨진 선우는 의식 없는 아버지를 살려내야 한다는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사랑하는 우정과의 결혼을 지켜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벼랑 끝으로 처절하게 내몰립니다.
제목만 보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고 편하게 보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우가 겪어내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 생생해서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낭만적이어야 할 결혼 준비가 순식간에 처절한 생계형 재난으로 뒤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TV 화면이 검게 꺼질 때까지도 나는 자리에서 선뜻 일어나지 못했고, 불 꺼진 거실에 멍하니 앉아 차갑게 식어버린 맥주캔을 손에 쥔 채 한동안 까만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가장의 숨겨진 불안, 칠순 부모님 이름이 뜬 늦은 밤 진동 소리의 공포
영화 속에서 선우가 감당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병원비 고지서를 손에 쥐고 차가운 병원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를 때, 자연스럽게 나의 현실과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지며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어느덧 양가 부모님의 연세가 모두 칠순을 훌쩍 넘어가시면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제 어디서 갑자기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쓰러지셨다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와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서글픈 불안감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선우처럼 착실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평범한 청년도 한순간의 사고와 질병 앞에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는데, 만약 내일 당장 우리 집에도 저런 감당하기 힘든 큰일이 닥친다면 과연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자 자식으로서 온전히 버텨낼 수 있을까 싶어 순간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부모님을 향한 지극한 효심이나 도덕적 책임감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현실의 병원비와 간병이라는 벽이 너무나 높고 잔인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늦은 밤이나 새벽에 머리맡 스마트폰에서 갑작스럽게 진동이 울리면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곤 합니다. 평소에는 그 늦은 시간에 절대 자식에게 전화하지 않으실 분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화면에 부모님 이름 석 자가 뜨고 진동 소리가 길게 이어지기만 해도 불길한 예감에 온몸이 차갑게 휘감깁니다.
명절이나 생신 때 부모님을 뵈러 내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보다 눈에 띄게 힘없이 떨리는 부모님의 거친 손을 잡거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점점 굽어가는 허리와 눈에 띄게 앙상해진 어깨를 마주할 때마다 영화 속 선우가 겪었던 그 가혹한 돌봄과 부양의 무게가 머지않아 나에게도 닥쳐올 피할 수 없는 현실처럼 묵직하게 덮쳐와 가슴이 시큰하게 아려옵니다.
병원 복도 계좌 잔고, 재생을 멈춘 장면
이 영화를 보면서 내 마음을 가장 시리게 후벼파고, 결국 리모컨을 들어 재생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던 뼈아픈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우가 인적 끊긴 차가운 병원 복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켜 텅 비어가는 통장 계좌 잔고를 확인하다가 예비 신부 우정이 몰래 자신의 통장에 보태어 넣어준 돈을 발견하고 주저앉아 소리 없이 오열하던 대목이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든든하고 의젓한 버팀목 같은 남자로 남고 싶었을 텐데, 불쑥 닥쳐온 가난과 간병의 가혹한 굴레 앞에서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전부 산산조각 난 채 밑바닥까지 내보여야 했던 그 남자의 처절함이 가슴 깊숙이 전해졌습니다. 우정에게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참하고 미안해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을 쏟아내는 선우의 모습을 보는데 목구멍 안쪽이 뜨겁게 메어와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선우의 뒷모습 위로 문득 내 모습이 겹쳐 보여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나 역시 늘 가족들에게 든든한 울타리이자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가장이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버텨왔지만, 나 역시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나 거대한 현실의 파도 앞에서는 저렇게 한순간에 바스러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화면 속 선우의 비참함이 내 살을 베어내듯 아프게 찔러와 당장이라도 영상을 꺼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닥쳐온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선우의 발걸음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삶에 대한 진짜 예의 같았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권하게 된다면, 킬링타임용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볼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라는 진심 어린 당부를 꼭 덧붙여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지켜보는 게 인생에 대한 진짜 예의 같았습니다. 비록 마음을 무겁고 시리게 만드는 날것의 현실이지만, 사랑과 결혼이라는 낭만적인 포장 뒤에 도사린 무거운 삶의 무게와 가족 부양의 책임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30~40대 청년들과 가장들에게 영화 《결혼, 하겠나?》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 역시 언제 닥칠지 모를 삶의 거센 비바람 앞에서도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내 가족과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단단하고 우직한 어른으로 남아야겠다고 가슴 깊이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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