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다 잠들고 혼자 OTT로 봤는데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고 씁쓸해졌다. 처음에는 제목만 슬쩍 보고 오랜만에 웃으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알콩달콩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화면 속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차가운 시련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밀려왔고, 달콤한 연애 이야기 뒤편에 숨겨진 지극히 날것의 현실과 마주하면서 불 꺼진 거실 안에서 나 혼자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하겠나? 첫인상, 불 꺼진 거실에서 등이 서늘해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초등학생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명확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 오랜 시간 알콩달콩 연애를 이어오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예비 신랑 선우와 속 깊은 예비 신부 우정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번듯한 직장이나 넉넉한 재산은 없어도 서로를 향한 굳건한 사랑 하나만을 믿고 드디어 결혼식 날짜를 잡으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 청천벽력 같은 비극이 덮쳐온다. 상견례를 코앞에 둔 시점에 선우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고 만 것이다. 슬퍼하고 좌절할 시간도 없이 매일같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환자실 입원비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간병비 영수증이 선우의 숨통을 사정없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다른 가족들마저 무거운 간병과 빚더미의 짐을 떠안기 싫어 슬그머니 발을 빼며 외면해 버리고, 결국 혼자 남겨진 선우는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사랑하는 우정과의 결혼을 지켜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벼랑 끝으로 처절하게 내몰린다.제목만 보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고 편하게 보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우가 겪는 고통이 너무나 생생해서 등이 서늘해졌다. 낭만적인 결혼 준비가 순식간에 처절한 생계형 재난으로 뒤바뀌는 과정을 보며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결국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TV 화면이 검게 꺼질 때까지도 나는 자리에서 선뜻 일어나지 못했고, 불 꺼진 거실에 멍하니 앉아 차갑게 식어버린 맥주캔을 쥔 채 한동안 꺼진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장의 불안, 칠순 부모님 진동 소리에 온몸이 휘감긴다
영화 속에서 선우가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 고지서를 손에 쥐고 발을 동동 구를 때, 자연스럽게 나의 현실과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지며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느덧 양가 부모님의 연세가 모두 칠순을 훌쩍 넘어가시면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제 어디서 갑자기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쓰러지셨다는 전화가 걸려와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서글픈 불안감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주인공 선우처럼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평범한 청년도 한순간의 사고와 질병 앞에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는데, 만약 내일 당장 우리 집에도 저런 감당하기 힘든 큰일이 닥친다면 과연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자 자식으로서 온전히 버텨낼 수 있을까 싶어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부모님을 향한 효심이나 책임감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현실의 병원비와 간병이라는 벽이 너무나 높고 잔인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요즘은 늦은 밤이나 새벽에 스마트폰에서 갑작스럽게 진동이 울리면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곤 한다. 평소에는 그 늦은 시간에 절대 자식에게 전화하지 않으실 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화면에 부모님 이름 석 자가 뜨고 진동 소리가 길게 이어지기만 해도 불길한 예감에 온몸이 차갑게 휘감긴다. 명절이나 생신 때 부모님을 뵈러 내려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전보다 눈에 띄게 힘없이 떨리는 부모님의 거친 손을 잡거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점점 굽어가는 허리와 앙상해진 어깨를 마주할 때마다 영화 속 선우가 겪었던 그 가혹한 돌봄과 부양의 무게가 나에게도 머지않아 닥쳐올 현실처럼 묵직하게 덮쳐와 가슴이 아려온다.
병원 복도 계좌 잔고, 재생을 멈춘 장면
이 영화를 보면서 내 마음을 가장 시리게 후벼파고 결국 리모컨을 눌러 재생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던 명장면이 있다. 바로 선우가 차가운 병원 복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으로 텅 비어가는 계좌 잔고를 확인하다가, 예비 신부 우정이 몰래 자신의 통장에 보태어 넣어준 돈을 확인하고 주저앉아 소리 없이 오열하던 장면이었다.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든든하고 의젓한 남자로 남고 싶었을 텐데, 닥쳐온 가난과 간병의 가혹한 굴레 앞에서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전부 산산조각 난 채 밑바닥까지 내보여야 했던 그 처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정에게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참하고 미안해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을 쏟아내는 선우의 모습을 보는데 내 목구멍마저 뜨거워져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화면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선우의 뒷모습 위로 문득 내 모습이 겹쳐 보여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 역시 늘 가족들에게 든든한 울타리이자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하는 가장이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버텨왔지만, 나 역시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나 거대한 현실의 파도 앞에서는 저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화면 속 선우의 비참함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찔러와 당장이라도 영상을 꺼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닥쳐온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선우의 발걸음을 끝까지 지켜보는 게 인생에 대한 진짜 예의 같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권하게 된다면, 킬링타임용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볼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라는 진심 어린 당부를 꼭 덧붙여서 추천하고 싶다.
끝까지 지켜보는 게 인생에 대한 진짜 예의 같았다. 비록 마음을 무겁고 시리게 만드는 현실이지만, 사랑과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 뒤에 도사린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30~40대 청년들과 가장들에게 이 영화를 꼭 추천하고 싶다. 나 역시 언제 닥칠지 모를 삶의 거센 비바람 앞에서도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내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끝까지 붙잡는 단단한 어른으로 남아야겠다고 깊이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