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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쇳밥 15년 차 가장이 본 육아의 무게

by 풍성함 2026. 11. 1.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영화 공식 포스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진이 다 빠져서 한동안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밤 9시 반까지 이어진 가공 라인 철야 잔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가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방전된 배터리처럼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TV를 켰는데, 스크린 속 번쩍이는 삼지창 액션이나 화려한 해저 왕국 CG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모니터 화면 속 0.005밀리미터 공차 맞추느라 눈알이 뻐근했던 탓도 있겠지만, 사실 딴생각이 더 컸습니다. 거실 바닥에는 초등학교 들어간 큰놈이 던져둔 가방이 뒹굴고 있었고, 주방 싱크대에는 저녁상 치우고 남은 냄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애 둘 다 씻겨서 재우고 안방 불을 끈 아내는 이미 곯아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조용한 거실에서 혼자 멍하니 화면을 올려다보는데 온몸에 남아있던 잔여 에너지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쿠아맨2 엔딩, 소파에서 못 일어난 이유

영웅 영화를 보면서 슈퍼파워보다 주인공의 다크서클에 먼저 눈이 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바다의 왕이라는 거창한 감투를 쓰고 세상을 구하러 다니는 아서 커리가 영화 초반에 보여준 모습은, 딱 퇴근 후 제 몰골이었습니다. 등대지기 아버지와 함께 아들 '주니어' 똥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얼굴에 오줌 세례를 맞고, 퀭하게 풀린 눈으로 분유통 흔들며 헛웃음 치는 그 얼굴 말입니다. 아틀란티스 왕좌에 앉아 원로들과 머리 싸매고 회의를 주재하는 무게보다, 빽빽 우는 핏덩이 달래며 밤새 거실을 서성이는 노동의 무게가 훨씬 더 커 보였습니다. 어릴 땐 히어로들이 레이저 쏘고 행성 깨부수는 맛으로 이런 블록버스터를 챙겨 봤습니다. 40대가 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니 영웅의 화려한 전투보다 그 뒤에 깔린 가장의 피로감이 먼저 보입니다. 세상을 지키는 거창한 일도 결국 내 새끼 밥 굶기지 않고, 내 가족 편히 발 뻗고 자게 만들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걸 저 친구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제 직업도 비슷합니다. 도면 치수 하나 삐끗하면 몇백만 원짜리 금형 블록이 통째로 스크랩통으로 들어가는 살얼음판입니다. 하루 종일 공차 잡고 납기 맞추느라 바짝 곤두서 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안 남습니다. 그런데 아서 녀석이 눈 밑이 거멓게 내려앉은 채 애를 안고 진땀 빼는 꼴을 보니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영화 속 화려한 해저 왕국 전투씬이 다 지나가고 마지막 음악이 흐르는데, 그냥 그 기저귀 갈던 퀭한 눈빛 하나만 머릿속에 박혀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바다를 호령하는 왕도 결국 집에 오면 애한테 치이고 처자식 지키느라 뼈를 갈아 넣는 평범한 아비였습니다. 그 동질감 하나가 지친 몸뚱이를 소파에 그대로 묶어버렸습니다.

 

절삭유 15년 손에 노란 고무장갑

소파에서 간신히 몸을 털고 일어나 불 꺼진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싱크대 안에는 저녁에 애들 볶음밥 해 먹이고 남은 궁중팬이랑 밥공기, 국그릇이 스무 개도 넘게 쌓여 있었습니다. 20대 초반 기름밥 먹기 시작해서 15년 동안 절삭유와 쇳가루를 만져온 손입니다. CAM 짜고 셋팅하느라 손끝은 굳은살투성이에 거칠기 짝이 없는데, 그 투박한 손에 아내가 쓰던 낡은 노란 고무장갑을 억지로 쑤셔 넣었습니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거품을 내고 굳어버린 양념 자국을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 버니어 캘리퍼스로 치수 재고 기계 물량 밀어낼 때는 그리도 빠릿하던 손이, 그릇 닦을 때는 굼뜨기 짝이 없었습니다. 물 온도를 맞추고 접시 바닥에 묻은 기름때를 닦아내면서 차곡차곡 건조대에 엎어놓았습니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 고무장갑을 벗은 뒤 현관문 쪽으로 갔습니다. 신발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진 식구들 신발이 보였습니다. 큰놈 운동화, 둘째 실내화, 아내 단화까지 네 켤레를 코앞에 칼같이 각을 맞춰 나란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기계 베드 수평 잡듯 반듯하게 정돈된 신발들을 보니 속이 조금은 개운해졌습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방 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물을 마시러 나온 아내가 저를 봤습니다. 뽀얗게 닦인 싱크대와 줄 맞춰 선 신발을 번갈아 보더니 아내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평소엔 소파에 누워 씻지도 않고 뻗어버리던 양반이 새벽에 앞치마 두르고 있으니, '해가 서쪽에서 떴네, 웬일이야' 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열 번 중 두세 번이 대여섯 번으로

그날 이후로 평일에 제가 설거지대를 잡는 횟수가 열 번 중 두세 번에서 대여섯 번으로 훌쩍 늘어났습니다. 가공 툴패스 뽑다 보면 공정 하나 단축해서 1분 줄이는 게 얼마나 큰 이득인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집안일도 똑같았습니다. 밤에 제가 그릇 몇 개 씻어놓고 냄비 헹궈두면, 다음 날 식구들 아침밥 차리는 아내의 숨통이 딱 10분 트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10분이면 덜 깬 눈으로 커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시간입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내 반응이 꽤나 조심스러웠습니다. 주방 정리를 해놓고 거실로 나오면 아내가 제 눈치를 살피며 물었습니다. 회사 공장에 무슨 안 좋은 일 있냐고, 혹시 구조조정이나 감원 소식이라도 들었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더군요. 아니면 몸 어디가 심하게 아파서 그러는 거냐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 이마를 짚어보기도 했습니다. 평소 묵뚝뚝한 경상도 기질에 말주변도 없고, 공장 일 힘들다는 핑계로 손 하나 까딱 안 하던 인간이 갑자기 움직이니 불안했던 겁니다. 저는 그냥 머쓱해서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눈에 보여서 했지" 하고 넘겼습니다. 15년 동안 쇳덩이만 다루다 보니 집에서도 말 한마디 다정하게 건네는 법을 잊고 살았던 제 잘못이 컸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퇴근해서 들어오면 묵묵히 싱크대로 향했습니다. 도면 설계하듯 각 잡고 주방을 쓸고 닦았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자, 아내의 의심 어린 눈빛도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냄비 하나로 통하는 말 없는 신호

말없이 설거지 횟수를 늘려가니 집안 공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밥상에 앉았는데 평소보다 계란말이가 훨씬 두툼하고 넉넉하게 부쳐져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을 다그치며 숙제 검사하던 아내의 목소리 톤도 반 톤쯤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날 선 납기 경쟁에 시달리다 돌아왔을 때, 현관문 너머로 들려오는 온화한 말소리가 얼마나 큰 쉼표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말이나 선물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저 기름때 낀 거친 손으로 밤늦게 고무장갑 끼고 냄비 바닥 문지르는 그 투박한 손짓이, 40대 쇳밥 기술자로서 가족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사과이자 위로였습니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설거지통 속에 조용히 털어 넣었던 셈입니다. 이제는 늦은 밤 주방 싱크대에 깨끗이 엎어져 물기 빠지고 있는 냄비 하나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말 없는 신호가 생겼음을 느낍니다. 내가 당신의 고단함을 알고 있다는 표시이고, 아내 역시 식탁 위 따뜻한 찌개 한 냄비로 내일 다시 현장으로 나갈 제 어깨를 조용히 받쳐주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도 7시 반이면 작업복 지퍼를 올리고 차가운 머시닝센터 가공유 스위치를 올려야 합니다. 또다시 소수점 세 자리 공차를 다투는 팍팍한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지켜야 할 식구들의 온기가 주방 냄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또 묵묵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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