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교토에서 온 편지, 잔업 끝에 마주한 내 아내와 어머니의 시간

by 풍성함 2026. 11. 4.

교토에서 온 편지 영화 공식 포스터

주말 특근으로 열두 시간 동안 머시닝센터 지그 붙잡고 씨름하다가 겨우 집에 들어왔습니다. 신발 벗고 들어오자마자 몸이 천근만근이라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TV를 켰는데, 화면에 낯익은 부산 영도 조선소의 잿빛 바다와 크레인이 떡하니 걸려 있더군요. 공장 바닥에서 쇠 깎는 기계 소음만 하루 종일 귀에 달고 살았는데, 이상하게 그 삭막한 부둣가 풍경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두컴컴한 거실에는 안방에서 색색거리는 애들 숨소리랑 냉장고 도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하루 내내 100분의 1밀리미터 맞추느라 모니터 들여다본 눈이 뻑뻑해서 눈을 감아야 정상인데, 캔맥주 하나 까놓고 멍하니 교토에서 온 편지라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교토에서 온 편지, 녹초로 앉았다가 끝까지 봄

영도 비탈진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세 딸도 보였지만, 제 눈엔 그 자리에서 말없이 터를 지키는 어머니 화자 씨의 모습만 자꾸 밟혔습니다. 가족들 앞에서 큰소리 한번 안 치고 그저 묵묵하게 밥 차리고 빨래 너는 그 젖은 눈빛이 유독 오래 남더군요. 사람 속을 후벼 파는 건 요란한 비명이나 악다구니가 아닙니다.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삭여내는 건조한 침묵이 훨씬 더 아프게 박히는 법입니다. 영화는 낡은 일본어 편지 한 장을 쥐면서 어머니의 옛 시간을 조금씩 들춰냅니다. 그걸 보다가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에게도 애들 엄마나 집안 떠받치는 기둥이 되기 전에, 자기 이름 석 자로 불리며 웃고 설레던 스무 살 시절이 분명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세월이 참 무섭습니다. 먹고사는 현실의 무게라는 게 사람의 고유했던 시절을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립니다. 기름밥 먹으며 20대 버텨온 제 청춘도 공장 기계 소리 속에 묻혀버렸는데, 어머니와 아내의 지나간 날들은 오죽했을까 싶어 목구멍이 턱 막혔습니다.

 

군대 전날 밤, 어머니 손을 본 날

어머니 손을 비추는 장면을 보는데 스무 살 무렵 입대 전날 밤 생각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머리 빡빡 깎고 툇마루에서 방바닥만 긁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야식 챙겨준다고 쟁반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형광등 백색 불빛 아래로 불쑥 들어온 그 손이 꼭 겨울 산의 바싹 마른 고목나무 껍질 같았습니다. 생선 만지고 찬물에 배추 절이느라 마디마디가 다 갈라져 있었습니다. 터진 살갗 틈마다 누렇게 말라붙은 안티푸라민 연고 찌꺼기가 덕지덕지 앉아 있더군요. 제가 그 손을 빤히 쳐다보니까, 어머니는 손이 부끄러우셨는지 앞치마 밑으로 슥 감추며 멋쩍게 웃으셨습니다. 고무장갑 끼고 일하면 손이 굼떠서 주문을 제때 못 친다고 핑계를 대시면서요. 그때는 그 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내 자식 입에 밥 한 숟가락 더 넣겠다고 제 살갗 깎아 먹으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였습니다. 가장이 되고 애 둘 키우면서 날카로운 칩에 손 베이고 굳은살 박여가며 살아보니, 이제야 그 앞치마 밑으로 감추던 손이 무슨 뜻이었는지 뼈저리게 와닿습니다. 자식한테 험한 꼴 보이기 싫어 얼른 숨기던 그 투박한 손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첫째 낳은 날 밤이 마지막 고백이었다

소파에 기대앉아 안방 문을 쳐다보는데 자연스럽게 아내 얼굴이 겹쳤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내한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내뱉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합니다. 첫째 태어나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땀에 젖은 머리칼 넘겨주면서 고맙다고 속삭였던 게 제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그게 벌써 십수 년 전입니다. 그 뒤로는 사는 게 전쟁이었습니다. 매달 빠져나가는 아파트 대출금에 애들 학원비, 가공 치수 하나 삐끗해서 불량 나면 날아가는 일당 걱정까지. 머릿속이 온통 돈과 납기 생각뿐이니 집에만 오면 입을 꾹 닫게 되더군요.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면 내가 무능한 가장이라는 걸 제 입으로 인정하는 꼴이 될까 봐 그게 무서웠습니다. 못난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아내 얼굴 보면서도 그 말을 목구멍 안으로 꿀꺽 삼켰습니다. 몇 년 전 늦게 퇴근해서 현관에 들어섰을 때, 닫힌 방문 너머로 아내가 소리 죽여 훌쩍이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고리를 잡았다가 차마 돌리지 못하고 발을 뺐던 그날 밤의 묵직한 공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저 영도 어머니처럼, 제 이름 다 잃어버리고 그냥 애들 엄마로만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었던 겁니다.

 

그 뒤로 손이 먼저 움직였다

말주변도 없고 원래 살가운 성격이 못 되니 감동적인 편지나 번지르르한 말은 애초에 제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입 대신 손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에 밥상 물리고 나면 숟가락 내려놓자마자 고무장갑부터 집어 들고 싱크대를 지켰습니다. 가장 노릇 제대로 못 하는 놈이 할 수 있는 제일 솔직한 반성이었습니다. 가끔 아내 데리고 마트 갈 때면 카트 밀고 일부러 과일 코너를 어슬렁거립니다. 평소 같으면 비싸다고 쳐다도 안 봤을 샤인머스캣 한 상자를 휙 집어 카트에 던져 넣고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집니다. "애들 요즘 비타민 부족해 보이는데 하나 먹이자." 아내는 제가 왜 그러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피식 웃고 맙니다. 잔업 마치고 늦게 들어가면 아내가 한쪽 팔을 이불 밖으로 내놓은 채 모로 누워 자고 있습니다. 다가가서 거칠어진 제 손으로 차가운 아내 손을 가만히 덮어 쥡니다. 그러면 잠결에도 손을 빼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힘을 주어 제 손을 꼭 맞잡아 줍니다.

 

말은 그저 "잔업 때문에 늦었어" 한마디뿐인데, 맞잡은 온기로 서로가 버텨온 하루를 다 압니다. 요란하게 말하지 않아도 체온 하나로 통하는 것, 그게 우리 부부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또 기름 냄새 맡으며 쇠를 깎으러 가야 합니다. 손바닥에 남은 이 온기 하나 믿고 또 한 주를 묵묵히 버텨내겠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